삼성·SK·롯데에 전통제약사까지 너도나도 ‘CDMO’… 왜?
◇ 롯데 4.6조 투자… SK·한미·대웅도 사업 진출·확장
18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현재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약 4조6000억원을 투자해 연면적 6만1191평(20만2285.2㎡) 규모의 인천 송도 바이오 캠퍼스를 짓고 있다. 이곳에는 총 3개 생산 공장과 부속 건물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완공될 경우 각 공장 당 12만리터, 총 36만리터에 달하는 생산 역량을 갖추게 된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2022년 미국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생산공장을 인수하며 CDMO 사업 출사표를 던진 데 이어, 송도 바이오 캠퍼스를 통해 본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설 전망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미국 공장의 경우 ADC 전문 위탁 생산 서비스 센터로 거듭나기 위한 생산 설비 투자를 진행 중이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할 예정”이라며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CDMO 기업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SK그룹 역시 SK팜테코와 SK바이오사이언스를 앞세워 CDMO 시장을 공략 중이다. 두 그룹사는 최근 글로벌 CDMO 기업을 각각 인수하며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CDMO 전문 기업 SK팜테코는 지난해 세포유전자치료제 CDMO 업계 선두인 미국 CBM(The Center for Breakthrough Medicines)을 인수했고, SK바이오사이언스 또한 지난달 독일 CDMO 기업 IDT 바이오로지카를 인수하며 백신 개발·생산에 이어 항암 바이러스, 세포유전자치료제 등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그동안 신약 개발에 주력해온 전통 제약사들도 CDMO 분야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미약품의 경우 이미 여러 국내외 수주회에 참가해 CDMO 사업 진출을 알리고 파트너를 물색해왔다. 한미약품은 2020년 사노피의 기술 반환으로 인해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던 평택 2공장을 CDMO에 적극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해당 공장은 약 2만리터에 달하는 미생물 배양·정제 시설을 갖추고 있다.
대웅제약도 최근 자회사 대웅바이오를 통해 CMO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지난해 3월 바이오공장 설립에 착수했으며, 오는 8월 준공 후 2027년 식품의약품안전처 GMP(우수의약품제조품질관리기준), 202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목표로 한다. 향후 공장이 설립되면 대웅제약을 비롯한 그룹 관계사 바이오의약품을 해당 공장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 바이오의약품 CDMO, 수익성 좋아… 2026년 37조 규모 전망
CDMO는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큰 시장으로 평가된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전세계 바이오의약품 CDMO 시장 규모는 지난해 191억달러(한화 약 26조원)에서 연평균 12.2%씩 성장해 올해 214억달러(29조원), 2026년 270억달러(37조원)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기본적으로 인구 고령화가 지속·심화되는 상황에서 의약품 수요가 단기간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이 ‘0’에 가깝고, 자체 개발·생산 능력을 갖추지 못한 각국 제약·바이오회사들은 새로운 제형, 기전의 약을 내놓을 때마다 위탁개발·생산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입증된 사실이기도 하다.
기업 입장에서 CDMO는 신약 개발 사업에 비해 위험 부담 또한 적다. CDMO를 위해 공장을 설립하고, 인증을 받고, 고객사를 유치할지언정,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해 10년 이상 임상 연구를 진행하고 그마저도 허가 후 시장 경쟁을 이겨내야 수익을 낼 수 있는 신약 개발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CDMO는 수주만 된다면 마진도 많이 남길 수 있다. 이 역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입증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연결기준 매출 3조6946억원·영업이익 1조1137억원을 기록했으며, 영업이익률(매출액에 대한 영업이익 비율)이 41%에 달했다. 제약산업전략연구원 정윤택 원장은 “바이오의약품 시장이 확대되면서 나타난 변화”라며 “바이오의약품은 기본적으로 고가인 데다, 다품종 소량 생산에 생산 인프라도 까다롭기 때문에 정제, 캡슐과 같은 합성의약품에 비해 마진율이 훨씬 높다”고 말했다.
◇ 성공 장담 못해… “신규 진입 어려울 수도”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CDMO 또한 사업 초기 공장 설립과 설비 도입, 인증 등에 많은 비용과 오랜 시간을 쏟고, 까다로운 인증도 통과해야 한다. 생산능력을 갖춘다고 해도 어느 시점에 대규모 물량을 수주하고 수익을 거둘지 알 수 없다. 결국 그 시간과 비용을 버텨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CDMO 사업에 진출하는 국내 기업들이 대부분 대규모 투자가 가능한 대기업이거나 이미 설비를 갖춘 제약사들인 것도 이 같은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제약바이오와 무관한 이종 산업계 기업이라면 이 같은 사업 구조가 더 낯설 수 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CDMO는 긴 호흡이 필요한 사업”이라며 “짧은 호흡의 사업을 주로 해온 기업들이 오랜 시간 동안 치밀한 전략 하에 끊임없이 투자하고 기다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했다.
시장에 신규 진입하는 기업은 고객사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모든 제약바이오기업은 정보 보안이 생명이다. 직접 개발한 약의 생산을 쉽게 맡길 리 없다. 이 같은 점은 신약 개발과 CDMO를 병행하는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한국바이오협회 이승규 부회장은 “고객사 입장에서는 경쟁 제약사에 CDMO를 맡기는 게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전문 CDMO 기업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생물보안법 역시 호재로만 보기 어렵다. 생물보안법이 통과돼도, 중국 기업이 갖고 있는 CDMO 물량이 얼마나 풀릴지, 그 물량이 국내 CDMO 기업에 얼마나 들어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승규 부회장은 “중국을 제외한 시장이 한국만 있는 건 아니다. 스위스 론자도 있고, 최근엔 일본 후지필름이나 아사히글라스도 적극적으로 CDMO 사업에 나서고 있다”며 “오히려 경쟁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전세계 CDMO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생산설비 투자 외에도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는 데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윤택 원장은 “처음 이 시장에 진출한 회사들은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상태에서 시작하게 된다”며 “기업별로 특화된 사업 모델을 갖고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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