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안보실장이 당신 칼럼에 행복해했습니다"
[안홍기 기자]
▲ 2024년 5월 29일 오후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포럼에서 수미 테리 미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수미 테리 : "기사가 맘에 들었으면 좋겠네요. [기사 링크]"
한국 외교부 관리 3번 : "당신의 열성과 노력에 매우 감사합니다! 물론 그랬지요. 실제로 대사님(조현동)과 안보실장님(당시 조태용)이 당신의 칼럼에 매우 행복해했습니다."
미국 연방검찰이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을 기소하면서 밝힌 공소사실 에 나타난 대화 일부다(관련기사: 국정원 돈받아 미 검찰에 기소된 그녀, 문재인땐 왜 그랬을까 https://omn.kr/29gu7). 한국 정부 측에서 좋아했다는 기사는 미국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2023년 3월 7일 자 '일본과의 화해를 향한 용감한 발걸음을 내디딘 한국'(South Korea Takes a Brave Step Toward Reconciliation with Japan) 제목의 칼럼으로 수미 테리 당시 윌슨센터 아시아국장과 맥스 부트 칼럼니스트가 공동 기고한 것이다.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윤석열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제3자 변제' 방식으로 풀겠다고 발표한 데 대한 논평으로, 윤 대통령이 정치적 위험을 무릅쓰고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서는 용감한 결정을 했으며 한·일 관계에 새 장을 열 것이라는 내용이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기고문이 게재되기 바로 전날인 3월 6일경 외교부 관리가 테리 국장에게 전화를 했고, 테리 국장은 문자로 "내가 칼럼을 쓰려면, 다음의 정보들이 필요하다"라며 한일 관계 관련한 질문 목록을 보냈다. 외교부 관리는 7일경 자세한 답변을 문자로 보냈고, 그날 늦게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문이 실렸다. 기고문 내용은 주로 외교부 관리가 보낸 답변들로 구성됐다.
한국 외교부가 주문한 기고문이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에 실리자, 많은 국내 언론이 이를 인용해 기사를 썼다. 대부분 "화해를 위한 용감한 발걸음" 대목을 제목에 넣었다.
▲ 네이버 뉴스에서 검색되는 기사들. 수미 테리가 미국 <워싱턴포스트> 2023년 3월 7일 자에 기고한 ‘일본과의 화해를 향한 용감한 발걸음을 내디딘 한국’(South Korea Takes a Brave Step Toward Reconciliation with Japan) 기사를 많은 언론이 인용보도했다. |
ⓒ 네이버 뉴스 |
외교부 관리 주문한 기고문이 국내 신문에... 핵협의그룹 여론 작업도
그로부터 한 달여 지난 2023년 4월 10일 '한국 외교부 관리 2번'은 테리 국장에게 한국 신문에 한국 대통령의 미국 방문과 관련한 짧은 기사와 온라인용 긴 기사를 작성해 줄 것을 문자로 요청했다. 외교부 관리는 "이 건에 대해 500달러를 제공할 수 있다"고 했고, 테리 국장은 이를 수락했다.
▲ <한국일보> 2023년 4월 28일 자 25면에 실린 <한미 정상회담, 한층 탄탄해진 ’동맹 70년‘의 앞길> 칼럼 |
ⓒ 한국일보 |
국정원은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 고위 인사 접촉 등을 위해 테리 연구원의 인맥을 활용하고 2019~2021년 사이 명품 가방과 옷 1만 2695달러어치를 사 준 걸로 나타나는데, 이후엔 테리 연구원을 정보 전파 창구로도 적극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2023년 1월 10일 국정원 직원은 테리 연구원을 만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고체연료엔진 시험을 직접 참관했다'는 내용, 윤석열 정부가 바라는 '확장억제 강화' '핵협의그룹 출범 필요성' 등을 설명했고 테리 연구원은 1월 19일 자 <포린어페어스> 기고문과 26일 언론 인터뷰에 이 내용들을 포함했다.
테리 연구원은 이미 한국 정부로부터 금전을 많이 제공받은 상태였다. 미국 연방검찰은 공소장에서 "한국 정부는 테리에게 약 3만 7000달러를 제공하겠다고 했고, 자금 출처를 가리기 위해 테리와 공모했으며, 테리가 통제하는 싱크탱크의 무제한 기부 계좌로 입금했다"라고 적시했다. 돈이 입금된 시기는 2022년 5월에서 2023년 4월 사이다.
테리 연구원이 건수 별로 대가를 받지 않았다 해도 한국 정부의 뜻을 대변하는 기고 및 인터뷰 활동과 금품 제공 사이에 대가 관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유관 부서에 구체적인 내용을 좀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다"는 말 이외에 별다른 언급을 내놓지 않고 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이는 기후위기 희생양 될 것" 아이 낳지 않겠다는 여성들
- 영국 병원 응급실에서 7시간,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 어시장에 학교운동장까지 잠겨, 당진 남원천 제방도 붕괴
- "여행만 가면 사람들이 귀엽다면서 만져요, 무섭습니다"
- 언론인, 예술인, 참사 유족..."이진숙은 재앙, 스스로 돌아봐야"
- 윤석열 정부 교통위반 과태료 역대 최대, 검증해보니
- '02-800-7070'은 대통령경호처... "모든 배경엔 김용현 경호처장"
- "코로나 걸리면 천국" 목사, 대법원에서 패소
- 전국 초중고 '석면학교' 명단 나왔다, 4곳 중 1곳에 석면 존재
- [오마이포토2024] 채상병 묘 찾은 임성근 전 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