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음식 끊기' 실패했지만 이건 남았습니다
기후위기로 앞당겨진 폭염, 일상에서 할 수 있는 환경보호 실천은 무엇일까요. 작더라도 일상에서 실천하는 사례가 있다면 시민기자가 되어 직접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김현진 기자]
친구와 오랜만에 약속이 있는 날. 휴대폰과 지갑만 들어가는 작은 가방을 들었다가 조금 더 큰 가방으로 손을 뻗었다. 물통을 넣어야 하니까. 아이와의 외출에는 어김없이 챙겼지만 혼자 하는 외출에는 굳이 들고 나서지 않았던 물통이다.
날이 더워지면서 쉽게 갈증이 찾아왔다. 생수를 사 먹으면 플라스틱 통으로 쓰레기가 만들어지니 물통을 가지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한 뒤로, 아이와 동행하지 않을 때에도 물통을 들고 나온다.
물통 챙기는 일에 익숙해지고 나니 오히려 편하다. 길을 걷다가도 목이 마르면 언제 어디서든 물을 마실 수 있다. 목 건강이 안 좋아진 후로 차가운 물을 피하는데 내게 알맞은 온도의 물을 먹을 수 있어 좋고. 물론, 가장 좋은 건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 가방에 챙기는 건 손수건이다. 물에 젖은 손을 닦기도 하고 더러운 게 묻었을 때도 쓴다. 쓱쓱 사용하고 집에 돌아와 비누로 세탁한다. 일반 손수건보다 조금 도톰한 자잘한 꽃이 그려진 거즈면 손수건도 마련했다. 금세 젖어버리는 손수건보다 톡톡해서 손을 닦을 때마다 기분이 산뜻하다.
크게 노력하지 않았는데 슬며시 가방 속 필수품이 된 물통과 손수건. 생수를 사 먹고, 공용 화장실에서 손 닦는 휴지를 사용할 때마다 미세하게 껄끄럽던 마음이 사라졌다. 지니고 다닐수록 은근하게 든든하다.
환경을 사랑하는 일, 환경 보호를 실천하는 일은 거창한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내게 쉬운 방법, 잘 어울리는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쉽고 간단하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잘 맞는 방식이어야 오래간다.
▲ 인 마이 백, 물통과 손수건은 외출시 필수품이다. |
ⓒ 김현진 |
올여름에는 더위가 일찍 시작되었다. 예년보다 폭염 시작일이 앞당겨졌는데, 폭우 예보까지 있다. 덥고 습한 습식 사우나 같은 여름일 거라고들 한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 위기 때문이다.
이제는 너무 익숙한 단어가 되어 버린, 기후 위기. 익숙하다 못해 무덤덤해진 건 아닌지 걱정되는 말.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 빙하가 녹고 동식물의 서식지가 사라지고 있단다.
지구 어딘가에서는 극심한 가뭄이, 또 다른 곳에서는 폭우와 폭설, 폭염이 이어진다. 여기저기서 문제가 심각하다고들 말은 하지만, 이걸 바꿔낼 획기적인 대책과 실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기후 위기에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까지 돌던 몇 년 전 여름, 무언가 극단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나는 생활을 한번 확 바꿔보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내가 시도했던 건 '배달 음식 안 먹기'와 집 안의 모든 액체 비누를 고체 비누로 바꾸기, 달걀 안 먹기와 육식 줄이기였다.
다소 강력한 실천이었다. 그런데 일정 기간 이 실천들에 도전했다가는 결국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다. 꾸준한 실행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게 아니라 가족과 함께하는 생활에서, 배달 음식을 완전히 없애거나 달걀과 육류를 먹지 않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음식을 준비하는 피로와 가족의 건강 등 가정의 화목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니까.
집안에 있는 모든 비누를 고체 비누로 바꾸는 일도 그랬다. 고체 주방 세제로는 기름때까지 말끔하게 닦이지가 않았고 비누로 감은 머리는 어떻게 해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홀로 외롭게 실천을 감행하느라 심신이 고달픈 것도 포기의 주된 이유였다. 몸이 고달플수록 마음까지 강퍅해졌다. 존중은 상호적인 것이라, 나의 신념이 중요한 만큼 남편과 아이의 기호와 취향도 존중하고 싶었다.
손비누만 고체로 남기고 나머지는 대용량의 친환경 제품을 찾아 안착했다. 달걀을 완전히 없애는 대신, 가능한 걸 시도한다. '난각 번호 1번'(달걀 껍데기 10자리 번호 중 마지막이 1번인 달걀로, 통상 동물복지 달걀로 칭한다)을 구입하고 육류 소비는 횟수를 줄이는 식으로 균형점을 찾아갔다. 요즘은 필요하면 배달 음식도 먹는다. 쓰레기를 최소화할 수 있는 메뉴를 고민하고 식당에 가서 먹으려 노력하면서.
실천을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내가 깨달은 점은, 완벽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나니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난각 번호 1번이란 걸 새롭게 알게 됐고, <알맹상점> 등 빈 용기를 가져가면 내용물을 채워주는 친환경 상점이 곳곳에 있다는 것도 발견했고. 다른 소비를 줄여서 쓰레기 배출을 덜어내려는 노력도 가능해졌다.
그러니 완벽하려 애쓰다가 포기하는 대신, 불완전하더라도 시도를 계속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금 모자라더라도 하나 둘 작은 걸음이 지속되어 쌓이면 길이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퇴보와 전진을 반복하는 걸음일지라도
▲ 요샌 아침, 점심, 저녁, 수시로 설거지하는 덕에 식기세척기 사용 빈도가 줄었다(자료사진). |
ⓒ 픽사베이 |
이번 여름은 날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싱크대에 잠깐만 음식물이 있어도 기하급수적으로 초파리가 늘었다. 식기세척기를 설치한 뒤로는 하루치 설거지를 모아 저녁에 한꺼번에 하곤 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초파리 때문에 아침, 점심, 저녁 수시로 설거지를 하고 배수구망을 비웠다. 날파리들 때문에 성가시다고, 시간을 뺏긴다고만 생각하다가 문득 이런 깨달음에 닿았다.
"덕분에 내가 친환경적인 생활로 돌아왔구나!"
앞서 식기세척기를 사용하면서, 물로만 헹궈도 충분한 그릇까지 세척기에 넣어 돌리곤 했다. 세척기 한 번 돌리려면 꼬박 1시간 넘게 내내 전기를 쓰고 물을 써야 하는데도 말이다.
요샌 아침, 점심, 저녁, 수시로 설거지하는 덕에 세척기 사용 빈도가 줄었다. 그만큼 전기 소비가 줄고, 세제 쓸 일도 적었다. 편리함에서 퇴보한 대신 환경에는 선해지는 것 같았다.
앞으로도 나의 삶은 이런 방식일 것이다. 어떤 순간엔 심신의 고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친환경적이지 않은 선택을 할 것이다. 어떤 순간엔 운 좋게 내게 맞는 방식을 찾아 기꺼이 친환경적인 삶으로 한 걸음 전진하기도 하겠지.
환경을 위한 실천에서 퇴보도 할 테지. 하지만 그래도, 실패했다고 좌절만 하고 있는 대신 다른 방법을 궁리할 것이다.
무언가를 향해가는 궤적이 반드시 직선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구불구불한 채로 아름답기도 할 테니까. 그런 방식으로 더 오래 이어지는 길도 있을 것이다. 다만 방향을 잃지 않으려 돌아보고 고민하자고 생각한다.
최근에 읽었던 시구절이 떠오른다. '뭘 더 해야 이 푸른 것 옆에 있게 될까'('소매가 긴 푸른 셔츠에 검정 바지', 임승유, 책 <생명력 전개> 중). 나날이 나뭇잎의 색이 짙어져 가는 계절. 이 푸른 지구 옆에 더 오래 머물고 싶다. 그러려면 뭘 더 해야 할까.
어렵지 않으면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호시탐탐 찾아내며 시도하길 지속한다. '반드시'라는 강요보다 '될 수 있는 한'이라는 유연성을 따르면서.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이는 기후위기 희생양 될 것" 아이 낳지 않겠다는 여성들
- 영국 병원 응급실에서 7시간,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 어시장에 학교운동장까지 잠겨, 당진 남원천 제방도 붕괴
- "여행만 가면 사람들이 귀엽다면서 만져요, 무섭습니다"
- 언론인, 예술인, 참사 유족..."이진숙은 재앙, 스스로 돌아봐야"
- 윤석열 정부 교통위반 과태료 역대 최대, 검증해보니
- '02-800-7070'은 대통령경호처... "모든 배경엔 김용현 경호처장"
- "코로나 걸리면 천국" 목사, 대법원에서 패소
- 전국 초중고 '석면학교' 명단 나왔다, 4곳 중 1곳에 석면 존재
- [오마이포토2024] 채상병 묘 찾은 임성근 전 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