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배우자도 건보 피부양자”…대법, 동성부부 권리 첫 인정

김준영, 김하나 2024. 7. 1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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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 배우자에 대해 사실혼 관계의 이성 배우자와 마찬가지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지 않은 한국에서 동성 부부의 사회보장제도상 권리를 인정한 첫 판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대법관 김선수)는 18일 동성 배우자인 소성욱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항소심을 확정했다. 전원합의체는 사회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있을 때 구성되는 재판부다. 대법원장이 재판장이 되고 대법관 3분의 2 이상이 참여한다.

동성 커플 소성욱씨와 김용민씨가 1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취재진에 소감을 밝힌뒤 나서고 있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소성욱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보험료부과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뉴스1


대법원은 “국민건강보험법령에서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에서 배제하는 명시적 규정이 없는데도 동성이란 이유만으로 배제한 것은 사실혼 관계의 이성 배우자와의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이라며 “헌법상 평등 원칙을 위반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 행위이고 그 침해의 정도도 중하다”고 밝혔다.

소씨는 동성인 김용민씨와 6년 연애 끝에 2019년 결혼식을 올린 뒤 이듬해 2월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인 김씨의 피부양자로 등록됐다. 공단에 동성 부부임을 밝혔는데도 피부양자로 등록됐다는 사실이 같은 해 10월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공단은 즉각 소씨의 피부양자 정보를 소급해 삭제하고, 지역 가입자로 전환했다.

공단은 소씨가 피부양자 인정 조건인 직장 가입자의 ‘배우자’ 또는 ‘사실혼 배우자’가 아니며, 피부양자 등록이 됐던 건 “착오 처리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소씨에게 지난 8개월간(2020년 3월~10월)의 지역 가입자 건강보험료 등 명목으로 11만여원을 부과했다. 이에 소씨가 부과 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박경민 기자

2022년 1월 1심 재판부는 “법이 말하는 사실혼은 남녀 결합을 근본으로 하므로, 동성 결합과 남녀 결합을 본질적으로 같다고 볼 수 없다”며 소씨의 패소로 판결했으나, 지난해 2월 항소심 재판부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자의적 차별”이라며 뒤집으면서 주목을 받았다. 동성 간 사실혼을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사법부가 그 법적 권리를 처음 인정했기 때문이다.

대법원도 소씨 커플에 대해 “동거·부양·협조·정조의무를 바탕으로 부부공동생활에 준할 정도의 경제적 생활공동체”라고 봤다. 또 “건강보험 피부양자 제도의 본질에 입각하면 동성 동반자를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과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다만 대법원이 이번 판결로 ‘동성혼’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동성 배우자와 관련) 민법 내지 가족법상 ‘배우자’의 범위를 해석·확정하는 문제는 다른 국면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엔 최소한 사회보장제도에선 동성 부부를 사실혼 부부와 유사하게 볼 수 있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조희대 대법원장(가운데) 등 대법관들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이날 전원합의체에서도 대법관 13명 중 4명(이동원·노태악·오석준·권영준)은 다른 의견을 냈다. 이들은 “배우자는 이성 간의 결합을 본질로 하는 혼인을 전제로 하는데 동성 간의 결합에는 혼인 관계의 실질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합리적 근거 없는 자의적 차별이라고 볼 수 없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행정청에 의한 차별 처우의 위법성이 보다 폭넓게 인정될 수 있다는 기존 법리를 확인했다”며 “그동안 피부양자로 인정될 수 없었던 동성 간 결합관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행복추구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보다 충실하게 보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소씨 커플은 판결 후 기자회견을 통해 “항소심에서 승소한 후 ‘사랑이 또다시 이길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오늘 정말 사랑이 또 이겼다”며 “동성혼을 쟁취하기 위해 계속 싸워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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