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폭력'으로 얻은 우울증, 어떻게 극복했을까
[김신 기자]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7명이 지속적인 우울감을 느낀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 5일 국립정신건강센터는 전국 15세 이상 69세 이하 국민 3,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2024년 국민 정신건강 지식 및 태도 조사>를 발표했다.
이 조사는 2022년 이후 2년 만에 이뤄진 것으로, 주목할 만한 내용은 심각한 스트레스는 2022년 대비 10.3%, 수일간 지속되는 우울감은 10.2%, 기타 중독(인터넷, 스마트폰 등)은 12% 증가했다는 점이다.
또한 정신건강 문제를 겪을 때 도움을 요청한 대상은 '가족 및 친지'가 49.4%로 제일 높았고, 정신과 의사 또는 간호사는 44.2%, 친구 또는 이웃은 41.0%로 나타났다. 나름 이해할 수 있는 조사 결과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 있겠지만, 과연 그럴까.
나는 유치원생 때부터 피가 나도록 맞으면서 공부했다. 영어유치원을 다니던 시절, 'send(보내다)'라는 영단어의 뜻이 모래(sand)라고 말해서 몇 시간 동안 맞았다. 머리채를 잡힌 채, 거실에서 방으로 끌려가 맞았다. 초등학생 때도,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맞았다.
<부끄럽지 않은 우울증 극복기>에 따르면 전이레가 겪은 지옥은 '교육', 더 나아가 '좋은 대학 진학'에서 비롯했다. 실제로 전이레는 재수 끝에 연세대학교 생명공학과에 입학했다. 부모의 폭력은 '사랑'으로 둔갑했는데, 나는 그 논리에 혀를 끌끌 찼다.
"엄마가 나를 사랑할 리가 없어. 사랑한다면 어째서 이렇게 해?" 아빠는 단언했다. "사랑하지 않으면 왜 너를 교육시키고 왜 너에게 밥을 차려주겠어?"
게다가 전이레의 아빠는 딸이 연세대학교에 들어간 게 엄마가 사랑으로 영어를 배우게 시켰기 때문이라고 했단다. 가장 가까운 이에게 폭력을 당하고, 집이 제일 힘들었던 날들을 보내던 전이레는 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 <부끄럽지 않은 우울증 극복기> 표지 |
ⓒ 디아스포라 |
전이레가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처음 찾은 것은 알프레드 아들러의 <삶의 의미>였다. 하긴 고등학교 때 과하게 맞고 도망치듯 집을 나와 도서관에서 J.M.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고 제제에게 동병상련을 느꼈으니 당연한 일이다.
'맞아, 힘든 기억이었지. 하지만 앞으로의 인생은 나대로, 내가 하는 대로 만들어 갈 수 있어! 오늘 바로 여기, 현재의 목적을 위해 나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좀 더 힘을 실어주기로 선택했다.
우울증에 대한 흔한 편견은 우울증에 걸린 이를 정신력이 약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울증은 전두엽의 기능 저하가 원인이다. 전이레는 전두엽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산책하기'와 '글쓰기'를 선택했다.
산책을 하려면 어디로 갈지 경로를 정해야 하고, 글을 쓰려면 손 근육을 사용하고 글씨체를 점검하며 줄에 맞춰 써야 하기 때문이란다. 운동이 가장 좋은 처방이지만 운동을 싫어하는 전이레에게는 안성맞춤의 대안이었다.
저녁에 샤워기를 틀어 물소리를 듣고 내가 좋아하는 라벤더 바디 워시로 나를 씻겼다. 나를 대우해 주고 깨끗하게 해주고, 돌봐주는 행위인 샤워하기를 하면서 청각과 후각에 주의를 돌리기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현재 샤워에 더 집중하게 된다.
전이레의 우울증 증상은 말더듬기도 있었다. 오히려 말을 더 많이 하고, 친구에게 "아 요즘 내가 말을 더듬어!"라고 말했단다. 즉, 증상에 직면해 맞서 싸우는 게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나에게 꽃을 선물하거나 연애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지난 6월 26일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 정책 혁신위원회' 첫 회의를 주재하고 "임기 내에 정신건강 정책 대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신질환도 일반질환과 같이 치료할 수 있고, 치료하면 위험하지 않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려야 한다며,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도 강조했다.
거부권을 남발하는 대통령의 발언이라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울증을 부끄럽지 않게 여기는 사회의 첫걸음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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