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 "과거 양육비 청구권 자녀 성년된 뒤 10년 지나면 소멸"

최석진 2024. 7. 18.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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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자녀를 양육한 배우자가 상대 배우자를 상대로 사후에 청구할 수 있는 미성년 자녀의 양육비지급 청구권은 자녀가 성년이 된 때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완성돼 소멸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결정이 나왔다.

그동안 대법원은 자녀가 성년이 된 이후에도 당사자의 협의나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해 구체적인 청구권으로 양육비청구권이 성립하기 전에는 과거 양육비에 관한 권리의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해왔는데, 이날 결정을 통해 견해를 변경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1984년 남편과 이혼한 A씨(87)가 전 남편 B씨(85)를 상대로 아들(51)이 성년이 된 1993년 11월부터 약 23년이 지나 과거의 양육비를 청구한 사건의 재항고심에서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A씨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결정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주문에서 "재항고를 기각한다. 재항고 비용은 청구인이 부담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당사자의 협의 또는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해 구체적인 청구권으로 확정되지 않은 이상, 과거 양육비에 관한 권리의 소멸시효는 자녀의 복리를 위해 실현되어야 하는 과거 양육비에 관한 권리의 성질상 자녀가 미성년이어서 양육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진행하지 않고 자녀가 성년이 돼 양육의무가 종료된 때부터 진행한다고 봐야 한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자녀가 미성년인 동안 이혼한 부부 사이에서 자녀에 대한 과거 양육비의 지급을 구할 권리는 그 권리의 성질상 소멸시효가 진행되는 않는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봐야 한다"라며 "구체적인 내용과 범위가 정해지기 전에는 그 권리의 내용이 확정되지 않아 친족법상 신분으로부터 독립해 처분이 가능한 완전한 재산권이라고 보기 어렵고, 단순히 금전지급의무의 이행을 구하는 것보다 미성년 자녀에 대한 친족법상 신분에 기한 양육의무의 이행을 구하는 권리의 성질을 주로 가지므로 그 권리의 성질상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자녀가 성년이 된 이후의 과거 양육비 청구권에 대해 재판부는 "그러나 자녀가 성년이 돼 양육의무가 종료되면, 당사자의 협의 또는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해 구체적인 자녀에 대한 과거 양육비의 지급을 구할 권리의 소멸시효는 자녀가 성년이 된 때부터 진행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자녀가 성년에 이르게 되면 이혼한 부부가 공동으로 부담하는 자녀양육의무는 종료하고, 더 이상 자녀에 대한 장래 양육비를 결정하거나 분담하는 문제가 생기지 않으며, 그 부부 사이에는 어느 일방이 과거에 자녀양육을 위해 지출한 비용을 서로 정산하여야 하는 관계만이 남게 된다"라며 "과거 양육비에 관한 권리는 자녀가 성년이 돼 양육의무가 종료된 때부터는 아직 당사자의 협의나 가정법원의 심판으로 구체적인 금액이 확정되지 않더라도 친족법상 신분으로부터 독립해 처분이 가능한 완전한 재산권이 된다고 할 수 있고, 더 이상 친족법상 신분에 기한 양육의무의 이행을 구할 권리의 성질이 드러난다고 볼 수 없으므로 그 권리의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자녀가 성년이 된 후에도 당사자의 협의 또는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해 확정되지 않은 과거 양육비에 관한 권리에 대해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하면, 과거 양육비에 관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사람이 적극적인 권리행사를 한 사람보다 훨씬 유리한 지위에 서게 되는 부조리한 결과가 생긴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자녀가 성년이 돼 양육의무가 종료된 후에도 당사자의 협의 또는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해 구체적인 청구권으로서 성립하기 전에는 과거 양육비에 관한 권리에 대해 소멸시효가 진행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 2011년 대법원 결정이나 판결 등은 이 결정의 견해와 배치되는 범위에서 모두 변경한다"고 밝혔다.

A씨와 B씨는 1971년 혼인하고 1973년에 아들을 낳았다. 부부는 이듬해부터 별거했고 1984년에 정식으로 이혼했다. 아들의 양육은 A씨가 1974년부터 19년간 전담했다.

A씨는 아들이 성인이 된 때로부터 23년이 흐른 2016년 B씨를 상대로 과거 양육비 약 1억200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종래 대법원 판례에 따라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보고 600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A씨의 항고로 진행된 항고심에서 2심 법원은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보고 1심 결정을 뒤집고 A씨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대법원은 이날 이처럼 과거 양육비 청구권의 소멸시효에 관한 기존 견해를 변경하면서, 이번 사건의 청구인의 전 배우자 상대 양육비 청구에 대해 이미 10년의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한 원심의 결정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A씨의 재항고를 기각했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김선수·이동원·이흥구·오석준·서경환·엄상필 대법관이 다수 의견에 동의했다.

노정희·김상환·노태악·오경미·신숙희 대법관은 다수 의견과 달리 "이혼한 부부 사이에서 과거 양육비의 지급을 구할 권리는 협의 또는 심판에 의해 구체적인 청구권으로 성립하기 전에는 친족관계에 따라 인정되는 추상적 청구권 내지 법적 지위의 성질을 가지므로 소멸시효가 진행할 여지가 없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권영준 대법관은 다수의견의 결론에는 동의하면서도 "소멸시효는 원칙적으로 양육자가 미성년 자녀 부양, 즉 양육에 따른 비용을 지출한 때부터 진행된다"는 별개 의견을 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자녀의 복리와 법적 안정성이라는 소멸시효 제도의 취지 및 구체적 타당성을 적절히 조화시켰다는 의의가 있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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