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 취소 청탁' 역풍에 고개 숙인 한동훈 "조건 없이 사과한다"
[곽우신 기자]
▲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1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국민의힘 서울시의원들과의 간담회를 하며 인사말을 하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조건 없이 사과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자가 나경원 후보의 '패스트트랙 공소 취소' 청탁 논란과 관련해 사과했다.
한동훈 후보는 18일 오후, 국민의힘 서울시의회 시의원 간담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일단 제가 사과의 말을 올림으로써, 토씨를 더 달거나 하는 건 아니다"라며 "말한 것처럼 그 말이 나경원 후보가 저한테 법무부장관이 왜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를 구속 못 했느냐고 해서 설명 드리는 과정에서 예시로서 든 건데, 저도 말하고 '아차'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 이야기를 '괜히 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점에 대해 신중하지 못한 점 죄송하다는 말씀드린다"라고 재차 고개를 숙였다. 다른 후보들의 파상공세에 대해서도 "그 말을 한 것은 신중하지 못했다. 거기에 덧붙이진 않겠다"라며 "꼬리를 붙이면 사과한 의미 자체가 퇴색될 수 있으니, 제가 제 발언이 신중하지 못했고. 그 점에 대해서 사과한다. 제 입장은 그거 하나"라고 낮은 자세를 보였다.
"사전에 준비되지 않은 말... 신중하지 못했다"
앞서 한동훈 후보는 지난 17일, CBS라디오가 주관한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 대표 후보자 방송토론회에서 "나 의원께서 저에게 '본인의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 취소해달라' 부탁하신 적 있지?"라고 폭로했다. 그는 "저는 거기에 대해서 제가 그럴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런 식으로 저희가 구체적 사안에 개입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법무부 장관 시절 야권 관련 수사에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취지의 공격을 나경원 후보가 이어가자, 이에 대한 반박 차원에서 나온 이야기였다(관련 기사: "나경원 공소 취하 부탁? 공소권 거래이자 국정농단" https://omn.kr/29gn6).
하지만 야권은 물론이고 여당 내에서도 해당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거세게 일자, 한 후보는 뒤늦게 공개적으로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는 18일 낮 본인의 페이스북에 "신중하지 못했던 점 죄송하게 생각한다"라고 글을 올렸다.
그는 이 게시물에서 "어제 '공소 취소 부탁 거절 발언'은 '왜 법무부장관이 이재명 대표를 구속 못했느냐'는 반복된 질문에 아무리 법무부장관이지만 개별사건에 개입할 수 없다는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예시로 나온 사전에 준비되지 않은 말이었다"라고 설명했다.
한 후보는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은 공수처법 등 악법을 막는 과정에서 우리 당을 위해 나서다가 생긴 일이었다"라며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으로 고생하는 분들을 폄훼하려는 생각이 아니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당 대표가 되면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재판에 대한 법률적 지원을 강화하고, 여야의 대승적 재발방지 약속 및 상호 처벌불원 방안도 검토, 추진하겠다"라며 "당을 위해 헌신했던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함께, 용기 내어 싸웠던 분들의 피해가 없도록 노력하겠다"라고도 약속했다.
▲ "기회주의자 한동훈 사퇴하라!' 국힘 서울시의원 맞닥뜨린 한동훈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18일 오후 국민의힘 서울시의원들과 간담회를 하기 위해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본관에 도착한 가운데, 국민의힘 소속 이희원 서울시의원이 ‘패스트트랙 투쟁 폄훼 한동훈 후보 당대표 자격 없다’ ’동료 패트투쟁엔 기소강행? 보수 신념없는 기회주의자 한동훈 사퇴하라’가 적힌 종이를 들고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한 후보는 서울시의회에 몰려든 취재진 앞에서 "우리 당이 드루킹 문제(특검)를 관철하는 과정에서 몇몇 위원회를 저쪽에 넘겼다"라며 "공수처법 등 악법들을 막아내기 어려웠다. 그런 악법을 막기 위해 당시 당원들, 보좌진, 의원들을 포함해서 처벌될 것을 감수하고 몸으로 막았던 충돌 사건"이라고 본인의 관점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런데 제가 의아했던 건, 국민의힘만 기소된 게 아니다. 우리보다 숫자는 적지만 민주당 관계자들도 기소가 됐다"라며 "처벌불원 의사가 서로간에 나오게 되면 원만한 처리가 될 수 있음에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저는 당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여야가 대승적으로 논의하고, 이 부분에 대해 재발 방지 약속을 드리면서 서로 간에 처벌 불원을 해서 재판부에 제출하는 방법으로 훨씬 더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이야기했다.
그는 "제가 대표가 되면 당을 위해서, 시민 권익을 위해서 나서서 재판 받고 계신 분들이 피해받지 않도록 실질적인 노력을 다 할 것이다는 말씀 드린다"라고도 덧붙였다. 법무부장관으로서 공소를 취소할 게 아니라 국회와 정치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맥락으로 풀이된다.
특히 나 후보의 지적에 대해 "오해가 있는 건데, 법무부장관은 공소 취소할 권한이 없다"라며 "당사자가 법무부장관에게 '공소 취소 해달라' 요청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무리 법무부장관이어도 구체적인 사건의 수사와 재판에 관여할 수 없다는 걸 반복 설명하는 과정에서 드린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부글부글 끓어오른 국민의힘 단톡방
한동훈 후보가 논란이 불거지고 하루가 지나서 적극적으로 진화에 나선 것은 당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을 골자로 한 검찰개혁 법안과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도입 여부를 두고 여야가 극한 대립을 이어가던 당시,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해당 법안의 신속처리 안건 지정을 막기 위해 국회 선진화법을 어겨가며 물리적 충돌을 감행했다.
이로 인해 재판이 진행 중인 여권 인사들은 원외만이 아니라 현재 원내에도 다수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여 있는 단체 채팅방에서 윤한홍·김정재·이철규 등 친윤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다수 의원들이 동조하며 분위기가 끓어 올랐다.
권성동 의원은 SNS에 "우리 당 의원 개개인의 아픔이자 당 전체의 아픔을 당내 선거에서 후벼 파야 되겠느냐? 당을 위해 지금도 희생하고 있는 사람을 내부 투쟁의 도구로 쓰면 되겠느냐?"라며 "경쟁은 하더라도 부디 선은 지켜라"라고 공개 저격했다.
계파색이 옅은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에 대한 공감대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한동훈 후보가 제가 보기에는 전략상 실점하는 것"이라며 "많은 분들이 (재판을) 받고 계시기 때문에 그게 감정선을 건드린 것"이라고 평했다.
여기에 나경원 후보뿐만 아니라 원희룡 후보와 윤상현 후보까지 가세해 관련 발언을 두고 한 후보를 연신 압박하고 있다. 이날 늦은 오후 예정되어 있는 TV토론회에서도 관련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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