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명당 점령한 '알박기 캠핑카'…과태료 매기고 주차비 걷는다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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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 차지한 캠핑카…‘CCTV 녹화중’ 경고
지난 15일 오후 경남 창원시 성산구 귀곡동 해안도로. 마산 앞바다를 배경으로 ‘귀산 카페거리’로 알려진 이곳에는 연중 많은 사람이 찾는다. 하지만 이 도로변에 잠시 차를 세우고 바다 풍경을 즐기는 게 쉽지 않다. 시민 누구나 편하게 주정차할 수 있도록 갓길에 흰색 실선이 그어져 있지만, 캠핑카가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명 ‘알박기 캠핑카’다.
특히 마창대교가 보이는 ‘명당’ 자리는 차 한 대 들어갈 빈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곳 840m 구간(귀곡동 560-11부터 귀곡동 754) 도로변을 따라 주차된 캠핑카와 카라반 트레일러 등은 30대에 달했다. 하지만 정작 캠핑카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짙은 선탠이나 햇빛 가리개로 차창을 가린 캠핑카 내부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주인 없이 자리만 차지한 몇몇 캠핑카에는 ‘CCTV 녹화중’이란 경고 문구도 적혀 있었다.
귀산 해안도로가 알박기 캠핑카로 몸살을 앓은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네이버 지도 거리뷰’ 서비스를 보면, 2020년을 전후해 캠핑카가 점차 해안도로를 점령한 것을 알 수 있다. 원래 한산한 횟집 거리였던 곳이 2016년부터 대형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하나둘 대형 카페가 들어서면서 ‘핫플레이스’가 된 시기다. 하지만 주정차 단속 구간도 아니어서 지자체가 손쓸 방법이 없었다. 강모(35·창원시)씨는 “누구나 편히 즐길 공간을 빼앗긴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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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빼든 지자체…과태료 물린다
이처럼 전국에서 ‘알박기 캠핑카’ 문제가 끊이질 않자, 지자체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경남 창원시 성산구는 장기 주차 중인 캠핑카를 단속할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성산구는 귀산 카페거리 중 이 명당 구간(840m)을 조만간 ‘주정차 금지구역’으로 설정한다. 이곳에서 주정차를 하다 적발되면 과태료 4만원(사전통보 기간 내 납부 시 3만2000원)을 내야 한다.
불법 주정차 과태료는 여러 번 부과할 수 있다. 구청 관계자는 “하루에 한 번 부과할 수 있기 때문에 다음 날 지자체 단속이나 안전신문고로 신고가 접수되면 또다시 과태료를 물릴 수 있다”며 “주정차 금지구역은 표지판· 도색 등 시설물을 설치하는 대로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른 방문객이 불편하지 않도록 주중 오전 10시~오후 10시까지, 주말에는 시간대 상관없이 주차할 수 있는 등 탄력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며 “나머지 시간대는 주정차가 불가능해 장기 주차 단속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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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주차장 알박기’ 주차 요금도 부과
특히 ‘무료 공영주차장 캠핑가 알박기’ 문제가 기승을 부리자, 장기 주차 차에 요금을 부과하기로 한 지자체도 있다. 충북 청주시는 내년부터 48시간 이상 장기 주차하는 차에 요금을 부과할 방침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청주시 주차장 조례 일부 개정안’이 오는 25일까지 입법 예고 절차를 밟고 있다. 시는 무료 공영주차장 진출입구에 차단기를 설치해 주차 기간을 확인할 예정이다. 차단기를 설치하기 어려운 노상주차장에는 관리 인력을 투입한다.
인천시도 경인아라뱃길 공영 무료주차장 유료화 전환을 추진 중이다. 알박기 자동차로 수년째 골머리를 앓아서다. 실제 2021년 인천시 홈페이지 ‘열린시장실’에 “아라뱃길 주차장에 장기불법주차 강력단속 해주셔서 시민 품으로 돌려주세요”라는 제목의 민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시 관계자는 “20개 무료주차장(노상·노외) 중 우선 시가 관리하는 노상주차장 8곳에 주차 관제 시설을 설치, 내년 상반기까지 단계적으로 유료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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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견인’ 법적근거 생겼지만…
지자체가 장기 주차 자동차를 견인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주차장법 시행령·시행규칙’을 개정했다. 개정안에는 지자체장이 무료 공영주차장에 정당한 사유 없이 1개월(자동차가 분해·파손돼 운행이 불가능한 경우는 15일) 이상 주차한 차를 다른 장소로 이동하도록 차주에게 명령하거나 견인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일선 지자체에서는 국토부 견인 대책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남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30일 기준이 너무 길다. 한 달 내내 주차했는지 확인해 입증하는 게 사실상 어렵다”면서 “모든 무료 주차장에 관제기를 설치할 예산도 없다”고 호소했다. 이 관계자는 “견인했다가 다시 주차할 수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도 아니다”며 “게다가 1억원이 넘는 캠핑카를 견인하다 사고라도 나면 지자체 부담이 너무 크다”고 했다.
이 때문에 과태료 신설 등 실질적인 단속 규정을 마련해달라고 국토부에 건의한 지자체도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단순 견인은 1차적인 효과일 뿐이고, 장기적으로 캠핑카 차주에게 벌금·과태료 등 재산상 불이익이 있어야 더는 주차를 하지 않을 것 같다”며 “1·2·3차 적발 시 과태료 금액을 가중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창원=안대훈 기자 an.dae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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