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 테리와 친밀"…돌연 사임한 '정 박' 美부차관보에 불똥 튀나
미국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출신의 한국계 미국인 안보 전문가 수미 테리(52)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체포됐다가 이날 보석금 50만 달러(약 6억9000만원)를 내고 풀려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미 연방검찰은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을 어기고 불법으로 한국 정부를 대리한 혐의로 테리 연구원을 기소했었다.
17일 미 국무부가 “법무부의 법 집행은 적절하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미 정부가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설상가상 미 검찰의 공소장에 정 박 전 국무부 대북고위관리 겸 부차관보를 연상케 하는 인물이 연루돼 있다는 내용이 있어 파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 법무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테리 연구원이 뉴욕에서 체포된 사실을 공식 발표하며 이번 사건이 뉴욕 남부 연방지방법원의 로나 게일 스코필드 판사에게 배당됐다고 밝혔다. 다만 법원 기록에 따르면 테리 연구원은 체포돼 법원에 출두한 직후 보석금 50만 달러를 내고 풀려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기소와 관련, 데이미언 윌리엄스 뉴욕 남부지검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공공 정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전문 지식을 외국 정부에 팔고자 할 때 두 번 생각하고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FARA 위반을 모의하고, FARA에 따른 신고를 하지 않은 해당 혐의는 최대 징역 5년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미 외교 갈등으로까지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미 정부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이날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진행 중인 법 집행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면서도 “FARA가 존재하는 이유는 정부에 있는 우리뿐만 아니라 대중도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이 누구를 대표하는지 알기 위해서”라며 “법무부가 이를 철저히 집행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사안을 한국 정부와 논의했느냐'는 질문엔 답변하지 않았다.
최근 갑자기 사임한 정 박 전 부차관보와 이번 사태와 연관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공소장엔 테리 연구원이 2021년 4월 16일쯤 워싱턴DC에서 국정원 파견관(주미 한국대사관 소속) 저녁 식사를 하며 “과거에 CIA와 국가정보위원회(NIC) 고위급을 역임했으며 한국 업무도 담당하는 국무부 고위 당국자와 테리 연구원 간 친밀한 관계”에 대해 논의했다고 적혀 있다. 박 전 부차관보가 직접 언급되진 않았지만 ‘고위당국자’에 대한 설명과 박 전 부차관보의 이력이 유사하다.
국무부에서 북한 업무를 전담하는 최고위 인사였던 박 전 부차관보는 취임 6개월여만인 지난 5일 사임했다. 당시에도 외교가에선 후임이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런 사임으로 미 대북정책 컨트롤타워가 공석이 됐다는 우려가 나왔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소장 내용까지 퍼지며 박 전 차관보의 사임을 둘러싼 의혹을 키우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국정원 파견관들의 허술한 첩보 활동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소장에는 파견관들이 테리 연구원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고가의 명품을 선물하고 고급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은 물론 외교 차량에 동승하는 등 비정상적인 로비 정황이 사진과 함께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18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국정원 요원이 노출된 부분에 대해 정부 차원의 감찰이나 문책이 진행 중인가’라는 질문에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원이 전문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요원은 내보내고 아마추어 같은 요원만 남기면서 생긴 일”이라며 “문 정부를 감찰·문책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가 된 행위가 지난 정부 시절 이뤄졌다는 것을 강조하면서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국정원에 대한 감찰·문책은) 좋은 지적이고,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테리 연구원이 공동 제작자로 참여한 다큐멘터리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가 이날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 평소 북한 인권 문제에 큰 관심을 보여온 테리 연구원은 탈북 과정을 그린 이 영화의 제작을 지원하고 지난 1월 영화 개봉 이후 홍보에도 적극 참여했었다. 비욘드 유토피아는 올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고 부산국제영화제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도 초대된 작품이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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