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넘어 스님된 이 사람... "고통 이해하고 싶었다"

신예진 2024. 7. 1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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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하다 출가, 인도 맥그로드 간즈서 만난 티베트 승려 호르캉

지난해, 21살 신예진은 '희망'이라는 꽃말의 데이지를 품고 2023년 2월 26일부터 2024년 2월 25일까지, 365일동안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했습니다. 여행하며 만난 '삶의 이유를 찾는 여정'을 <너의 데이지>를 통해 풀어나갑니다. '데이지(신예진)'가 지난 1년 동안 여행하며 만난 사람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연재기사입니다. <기자말>

[신예진 기자]

여름에도 녹지않는 히말라야 설산 너머 인도 다람살라(맥그로드 간즈)에 종소리가 울린다. 은은하게 퍼지는 소리가 티베트 불교의 평화를 알리는 듯하다. 나는 네팔에서 인도로 넘어와, 다람살라에 도착했다. 온종일 경적을 울리는 수도 델리와 달리 평화로운 물소리가 이곳을 가득 채운다.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 봉기를 강압적으로 통치한 뒤, 달라이라마는 인도 다람살라로 망명해 티베트 망명정부를 세웠다. 곳곳에 보이는 티베트 국기는 인도와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다람살라가 인도 속의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 티베트 수트라 깃발이 살랑거리며 티베트 망명정부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 티베트 깃발은 파란색, 빨간색, 녹색, 노란색, 흰색으로 이루어지며 자연의 원소, 우주의 에너지, 영적 성장을 상징한다. 티베트인의 염원을 적어 바람에 날려 보내는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 신예진
 
달라이라마(현재 14대)가 수행한다는 남걀 사원은 이른 아침부터 수행을 올리는 스님으로 가득하다. 티베트 불교도에게 얼마 남지 않은 성지 중 하나인 남걀 사원은 평화로운 새소리로 가득하다.

평온한 마음으로 조용히 사원을 둘러본 뒤 티베트 박물관으로 향했다. 지도와 다른 길이 등장하기에, 지나가는 승려에게 길을 물으니 그가 답하며 자신도 같은 방향이라 답했다. 호르캉이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승려와 나는 발맞춰 걷기 시작했다(당연하겠지만, 그의 발언 내용은 티베트 망명정부의 공식 방침과는 다를 수 있다).

"군인일 땐 살상을 배웠는데, 이젠 자비를 배웠어요"
 
▲ 다람살라에 위치한 티베트 망명 정부의 모습 일부.  중국에서 넘어온 티베트 난민들의 망명 정부가 들어서 있다. 망명 정부 외에도 학교와 박물관도 위치한다. 한국인에게는 '다람살라'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히마찰 프라데시주의 다람살라는 맥그로드 간즈보다 지역 단위가 더 크다.
ⓒ 신예진
 
"자비는 가장 중요한 가치예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선행을 베푸는 것이 중요하죠. 군인이었을 때는 어떻게 사람을 죽이고 때리는지를 배웠는데, 그 뒤 달라이라마를 만나 자비가 무엇인지를 배웠어요." 

스님 이전, 직업 군인이었던 호르캉은 달라이라마를 만난 뒤 새 삶을 시작했다고 한다. 사람을 포용하고, 손길을 나누는 방법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면서 진정으로 사람을 돕고 싶다면 내 안의 부정적 감정을 지워야 하며 무지를 깨달으라고 말한다.

자비와 인내를 전하는 그의 얼굴에서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떠올릴 수 없었다. 휘둥그레 놀란 눈으로 그를 봤다. 그는 길 위에 살랑이는 티베트 국기를 지나쳐 이야기를 이어갔다.
  
▲ 호르캉 지그메(Horkhang jigme)과 티베트 박물관에서 호르캉은 티베트 박물관에서 독립을 외치는 티베트인의 애환과 투쟁을 내게 설명해주었다.
ⓒ 신예진
1980년에 태어난 호르캉 승려는 태어날 때부터 시민권이 없었다고 한다. 태어나기 전부터 티베트는 중국 공산당에 의해 시짱(西藏) 자치구였기 때문이다. 그는 다섯살일 때 가족과 함께 네팔을 거쳐 인도 다람살라로 넘어왔다고. 졸업 후 그는 국경을 지키는 인도의 군인이 되었다.

그는 당시 다른 군인과 마찬가지로 즐기며 삶을 보냈단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달라이라마 사무실에서 잠시 일하게 되었고, 이후 달라이라마의 가르침을 통해 출가를 다짐하게 된다.

호르캉은 즐겨먹던 고기도 끊으면서, 티베트 불교 교리에 따라 자신을 훈련했다. '적도 우리의 스승'이라는 가르침 아래 자신의 말과 행동에 규율을 넣었다. 그렇게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고, 마침내 지난 2021년 승려가 되었단다. 그가 40을 넘었을 나이였다. 왜였을까. 

"내가 승려가 된 이유는 간단해요.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이죠. 나의 고통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은 어떻게 고통받는지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 티베트 박물관에 전시된 한 문구 "Practice compassion" 티베트 박물관에 14대 달라이라마의 격언이 적혀있다."다른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자비를 실천하세요. 만약 당신이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자비를 실천하세요."
ⓒ 신예진
 
발걸음은 망명정부를 지나 티베트 박물관에 다다른다.

티베트 독립운동의 투쟁을 바라보며 그는 중국이 자비를 갖고 티베트와 함께 평화로워졌으면 한다는 소망을 꺼냈다. 티베트 독립의 투쟁이 아니어도,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평화를 이루기를 희망했다.

태어날 때부터 국가가 없다는 건 어떤 걸까.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국가 없이 태어난 그가 겪어온 허망함을 그저 상상해볼 뿐이다. 

그런 공허함 속에서 대가 없는 나눔을 외치는 자비 정신을 존경할 뿐이다. 망명 정부 아래에서 자비를 외치며 살아가는 호르캉, 그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 삶의 이유는 책임감 때문이에요. 21세기에 태어난 우리는 이전 세대가 물려준 것들을 받으며 살아왔어요. 저는 21세기 티베트인으로 태어났죠. 그 상황에서 전 평화로운 티베트를 되찾아야 할 책임을 졌어요. 중국과 평화로워지기 위해 기도하고 싶어요."

망명 초기, 티베트는 중국으로의 독립을 요구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티베트의 실질적 자유와 자치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훗날 달라이라마와 함께 평화로워진 티베트로 돌아가기를 꿈꾸는 호르캉. 그는 사랑이란 '다른 이의 고통을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하며, 기도하는 것'이라 덧붙인다.

사랑과 자비를 통해 평화로워진 티베트를 꿈꾸며 그는 오늘도 기도한다. 우린 박물관을 나와 티베트 절로 들어간다. 스님은 나직이 푸자(신에게 기도를 바치거나 행사를 축하하려 수행하는 예배 의식)를 읊으며 기도를 시작한다.

작은 티베트에 울리는 푸자 소리가 티베트 승려의 인내와 사랑을 알리는 듯했다. 매일 울리는 이 푸자 소리가 히말라야 넘어 티베트에도 닿기를 기도했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의 원본 이야기는 기사 발행 후 기자의 블로그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daisy_path 이 기사의 각색 이야기는 아래 기자의 브런치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daisyp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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