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들어찬 물 빼는데 100만원"…매년 '물폭탄 악몽' 겪는 이들
18일 오전 인천 계양구 계산동 반지하 빌라에 사는 김종칠(81)씨는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집 방바닥은 장판 밑에 물이 가득 차 마치 물침대처럼 출렁거렸다. 집 밖엔 양수기 펌프와 커다란 삽이 놓여있었다. 전날 아침 7시부터 화장실 하수도가 역류하면서 성인 발이 잠길 만큼 물이 들어찼다. 김씨는 “빗자루로 퍼내고 걸레질하고 앞집 사는 젊은 친구랑 밤늦게까지 고생했다”며 “기계로 물 빼는데 100만원이나 들었는데 또 비가 많이 와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주변엔 반지하 세대가 있는 주택이 10여 곳 있었지만 어느 곳에도 물막이판이나 모래주머니 등 수해 대비 시설·장비가 마련된 곳은 없었다. 한 반지하 주택에선 지하로 연신 물줄기가 흘러들었고, 집 입구에 물이 고였다. 인근 편의점 주인 김모(57)씨는 “나이 드신 분들이나 대학생,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데, 침수 피해가 자주 일어나지만 별 대책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연이어 ‘폭탄 비’가 내리며 침수 취약 지역 주민들이 울상이다. 쪽방촌과 판자촌, 반지하 주택 등은 매년 집중 호우 때마다 물난리를 겪지만, 경제적 이유 등으로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
집 현관과 길 사이 높이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영등포 쪽방촌도 상황이 비슷했다. 비가 올 때마다 빗물이 집 안쪽 복도로 들어차곤 한다. 이날 오전 한 건물에선 빗물이 지붕을 타고 집 안으로 연신 흘러들었다. 주민들은 복도에 들어찬 빗물을 빗자루로 쓸어냈다. 주민 송지영(68)씨는 “아침부터 빗자루로 물을 싹싹 밀어서 하수구로 흘려보냈다”며 “비가 많이 내릴 때면 물이 차기 전에 주기적으로 쓸어야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20년간 쪽방촌에 거주했다는 박모(68)씨도 “지붕이 약해서 그런지 부서진 지붕을 타고 빗물이 집 안으로 내려온다”고 했다.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으로 불리는 강남구 구룡마을 주민들은 2년 전 홍수 악몽이 재현될까봐 새벽부터 발을 동동 굴렀다. 이날 오전 7시쯤 우산도 없이 집 지붕을 살피던 주민 김모(68)씨는 “2년전 폭우 때 물이 산을 타고 내려오면서 판잣집이 다 무너지고 마을은 쑥대밭이 됐다”며 “비만 오면 그때 악몽이 떠오른다”고 했다.
구룡마을은 2022년 8월 집중호우 당시 100여 명이 피해를 봤다. 이후 강남구청이 마을 입구를 가로지르는 하천 등을 정비했지만, 구룡산·대모산을 타고 물줄기가 모이는 마을 위치상 수해 대비 시설을 설치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김모(65)씨도 “모래주머니 같은 걸 준비한다고 들었는데 주변을 보니 없는 것 같다”며 “이 동네 주민들이 모두 나이가 많아서 스스로 수해에 대비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오는 19일까지 수도권에 강수량 150㎜ 이상의 집중호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18일 중부지방에는 늦은 오후까지 시간당 30~70㎜의 비가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19일 새벽에는 장마전선이 잠시 남부지방 쪽으로 내려가지만 20일 다시 장마전선이 북상해 많은 비를 뿌릴 전망이다.
이보람·이영근·이찬규·박종서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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