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천사의 몫, 악마의 몫

김필수 2024. 7. 1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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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 유행을 탄다.

'천사의 몫(Angel's Share)'이 있고, '악마의 몫(Devil's Cut)'이 있다는 거다.

천사의 몫은 위스키 원액을 오크통에 담아 숙성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증발해 줄어드는 원액의 양이다(첫해 2%·10년 뒤 18%·50년 뒤 64%로 알려져 있다). 위스키의 맛과 풍미를 위해 천사에게 바친다는 그럴싸한 해석이 더해진다.

은행들 역시 그동안 천사의 몫에 인색하고, 악마의 몫에 관대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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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 유행을 탄다. 와인이 한시대를 풍미했다. ‘신의 물방울’이라는 일본 만화가 한국에서 덩달아 인기였다. 그러더니 막걸리 열풍이 불었다. 전국 막걸리 양조장 투어 지도까지 나왔다. 젊은이들은 막걸리를 흔들지 않고, 윗부분의 맑은 술만 마시는 신박한 주법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지금은 위스키의 시대다. 정통 스코틀랜드산뿐 아니라 일본산까지 품절 사태를 빚을 정도다.

장관급 관료를 지낸 모(某) 인사는 한때 와인 전도사였다. ‘신의 물방울’ 전집을 대량 구매해 지인들에게 수시로 선물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가 지금은 위스키에 빠져 있다. 모임에 위스키를 꼭 가져오고, 특히 고급스러운 계량잔(jigger)도 별도로 챙겨온다. 그에게서 들은, 위스키 관련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천사의 몫(Angel’s Share)’이 있고, ‘악마의 몫(Devil’s Cut)’이 있다는 거다.

천사의 몫은 위스키 원액을 오크통에 담아 숙성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증발해 줄어드는 원액의 양이다(첫해 2%·10년 뒤 18%·50년 뒤 64%로 알려져 있다). 위스키의 맛과 풍미를 위해 천사에게 바친다는 그럴싸한 해석이 더해진다. 악마의 몫은 숙성 과정에서 오크통 나무에 흡수돼 소실되는 양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에선 양조장 직원들이 조금씩 빼돌리는 양, 또는 바텐더들이 지거(jigger)로 손님 잔에 따를 때 조금 남겨 빼돌리는 양 등으로 얘기가 부풀려졌는데, 천사의 몫과 대비하기엔 이게 더 와닿는다.

최근 은행권 금융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비유하자면 악마의 몫인데, 소량의 위스키 빼먹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말 그대로 ‘억’ 소리가 난다. 2019~2023년 5년간 5대 시중은행 횡령액(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우리은행 735억원, 하나은행 45억원, NH농협은행 30억원, 신한은행 11억원, 국민은행 5억원 등이다. 경남은행은 지난해 무려 2900억원 규모의 횡령사고가 발생했다. 횡령 외에 배임까지 합한 금융사고 건수는 2021년 48건, 2022년 40건, 2023년 34건, 올들어 현재까지 11건으로 감소 추세다. 하지만 100억원 이상 대형 금융사고는 같은 기간 총 6건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4건이 올해 일어났다. 바늘도둑보다 소도둑이 늘었다는, 심히 걱정되는 얘기다.

금융사고의 반대편에 취약계층을 위한 이자환급 등 상생금융이 있다. 비유하자면 천사의 몫인데, 위스키 증발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의 경영활동이어야 한다. 그래야 밸류업(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 4대 금융지주는 지난해 각각 수천억 원대의 상생금융을 실행했다. ‘돈잔치(과도한 성과급)’ ‘이자 장사(과도한 이자수취)’ ‘공공재(지배구조 개선 필요성)’ 등 대통령의 거친 압박이 트리거가 됐다. 울며 겨자를 먹었다는 얘기다.

대통령과 금융당국의 상생금융 압박은 ‘또다른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게 은행에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은행들 역시 그동안 천사의 몫에 인색하고, 악마의 몫에 관대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 악마의 몫에 관대하면 거덜 나는 건 순식간이다. 실리는 물론이고, 명예와 자부심까지.

김필수 경제금융매니징에디터 pils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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