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혼다 日 유턴, 현대차는 해외로…길 잃은 '리쇼어링' [엑시트 코리아]
현대차는 지난해 12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현지 업체에 매각했다. 비슷한 시기 중국 충칭 공장도 팔았다. 앞서 지난 2021년엔 베이징 1공장도 매각했다. 올해 안에 창저우 공장도 팔 계획이다. 대신 현대차는 지난해 8월 인도에서 제너럴모터스(GM)의 연간 13만대 생산 규모 자동차 공장을 인수했다. 인도네시아에선 전기차 증산을 위한 공장 설비 공사를 진행 중이다. 미국에선 올해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조지아주 서배너에 연간 30만대 생산 규모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짓고 있다. 국제 정세 불확실성이 큰 러시아·중국 투자를 줄이는 대신 동남아·미국 등으로 생산 거점의 새판을 짜는 모양새다. 한국은 선택지에서 빠졌다.
이와 달리 일본 자동차 업계는 수년 전부터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 바람이 불었다. 혼다는 23년간 운영하던 멕시코 공장을 2016년 일본 사이타마 현으로 옮겼다. 토요타는 2017년 미국 인디애나주 공장에서 만들던 베스트셀러 중형 세단 ‘캠리’ 연간 10만 대 생산분을 아이치 현 공장으로 옮겼다. 닛산은 2017년 북미에서 만들던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물량 일부를 일본 공장으로 돌렸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자동차 기업의 국내 복귀에 대해 “저렴한 인건비를 찾아 해외로 떠난 일본 기업이 엔저(엔화가치 하락) 효과, 공급망 불안, 경제 안보 의식 강화, ‘메이드 인 재팬’에 대한 소비자 신뢰에 따라 국내로 돌아오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엔저만 ‘원저(원화가치 하락)’로 바꾸면 일본과 한국은 조건이 비슷한데도 이처럼 양국 기업의 선택은 엇갈렸다. 한국 기업이 외국으로 떠나는 일명 ‘엑시트 코리아(Exit Korea)’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외로 나갔다가 갈 길을 잃은 한국 기업을 국내로 유치하는 것도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산업본부장은 “대기업이 한국으로 복귀할 경우 직접 일자리 창출 효과뿐 아니라 협력업체 등 중소·중견기업으로 경제 파급력이 크다”고 설명했다. 항공모함이 뱃머리를 틀면 함대가 따라 움직이는 식이다.
세계 각국이 해외진출 기업의 해외 생산시설을 국내로 옮기는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을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다. 미국이 반도체·전기차 등 글로벌 첨단 산업의 블랙홀이 된 것도 국내 투자에 대한 막대한 기업 보조금과 인센티브 때문이다. 유럽이 내건 핵심원자재법(CRMA)도 비슷한 내용이다. 일본은 해외 진출 기업이 본국으로 유턴할 경우, 일본 정부가 이전 비용의 3분의 2까지 파격 지원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은 리쇼어링 기업이 2014년 340곳에서 2021년 1844곳으로 급증했다. 유럽은 2016~2018년 193곳, 일본은 2006~2018년 7633곳이 본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은 2014년부터 시행한 ‘해외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일명 유턴기업지원법)’의 효과가 작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로 유턴한 기업은 2020년 23개→2021년 26개→2022년 23개→2023년 22개로 제자리 걸음이다. 그나마 대부분 중소·중견기업이다. 한국 투자 여건이 나아졌다기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중국 시장 부진 등 여파로 철수한 기업 일부가 돌아온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기업의 국내 복귀가 지지부진한 건 인건비가 여전히 해외 생산 기지보다 높은 측면이 크다. 여기에 정부 지원마저 부족하고, 규제 걸림돌은 굳건하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최근 발표한 ‘2024년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 성과는 67개국 중 역대 최고인 20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세부 지표를 보면 ‘기업 여건’은 47위, ‘정부 효율성’은 39위에 그쳤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선진국보다 과도한 법인세 부담과 수도권 입지 규제, 최저임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나빠지는 노사 여건, 까다로운 유턴 기업 인정기준 등 유턴 매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인센티브를 늘리는 것만으로 역부족”이라며 “유턴 기업 인허가 등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고 해외에 없는 ‘갈라파고스 규제’ 등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부터 개선해야 리쇼어링 정책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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