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정부 대리” 美, 수미 테리 기소… 테리 “중대한 실수” 반박
명품백·연구지원비 등 수수 혐의”
美 정가 한반도 전문가 위축 우려
외교가선 “허술한 국정원의 실책”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 대북 전문가 수미 테리(한국명 김수미)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이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한국 정부를 대리한 혐의로 현지에서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이번 일로 워싱턴 정가에서 한반도 전문가들의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뉴욕 남부지검이 16일(현지시간) 공개한 공소장에 따르면 테리 연구원은 2013년부터 최근까지 10년간 외교관 신분으로 미국에 파견된 국가정보원 요원들을 만나 요구를 들어주면서 명품 의류·잡화나 연구지원비를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미국은 외국대리인등록법에 따라 다른 국가 정부·기관을 대리하는 자국민에게 법무부에 자진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테리 연구원은 서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이주한 미국 국적자다.
미 연방검찰은 CCTV 화면과 국정원 간부의 신용카드 결제 내역을 근거로 테리 연구원이 2019년 11월 13일 국정원에서 파견한 워싱턴DC 주재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으로부터 2845달러(약 393만원)짜리 돌체앤가바나 코트와 2950달러 상당의 보테가베네타 핸드백을, 2021년 4월 16일에는 3450달러 상당의 루이비통 핸드백을 받은 것으로 파악했다.
테리 연구원이 미슐랭 스타 인증 업소를 포함한 고급 식당에서 국정원 간부를 만난 사실도 포착됐다. 검찰은 2020년 8월 12일 국정원 파견 공사참사관 전·후임자가 인수인계 차원에서 테리 연구원과 식사하기 위해 뉴욕 맨해튼의 한 그리스 식당에 둘러앉은 사진을 공소장에 첨부했다.
검찰은 국정원이 테리 연구원 소속 싱크탱크에 2022년 전달한 연구자금 3만7000달러를 한국 정부 대리인 역할의 대가라고 지적했다. 테리 연구원은 같은 해 6월 16일 미 국무부에서 열린 대북 전문가 초청 비공개 간담회 내용을 국정원 간부에게 흘린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회의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고위 간부, 한국 정책 전문가 5명만 참석했고 내용 유출은 금지됐다. 검찰은 “국정원 요원이 회의 종료 직후 한국대사관 번호판 부착 차량에 테리 연구원을 태웠고, 그가 작성한 두 장의 메모를 촬영했다”고 밝혔다.
테리 연구원은 지난해 방송 인터뷰와 언론 기고문에서 북한의 고체연료 엔진 테스트를 ‘게임 체인저’라고 평가했는데, 검찰은 이를 국정원의 요구로 봤다. 국정원 요원이 지난해 1월 10일 테리 연구원과 워싱턴의 고급 일식집에서 식사하며 그 내용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테리 연구원은 ‘핵 탑재가 가능한 미국 무기체계의 한국 순환 배치’ ‘확장억제력 강화’ ‘핵협의그룹 신설’을 주장해 왔는데, 이런 견해도 국정원의 개입 결과라고 검찰은 판단했다. 또 국정원 요원이 지난해 4월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글을 써 달라고 테리 연구원에게 요구하면서 “동맹에 많은 의미가 있고, 한국에 좋다”는 내용을 담도록 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미 수사 당국이 공소장에서 동맹국인 한국 정보 당국의 연계 증거를 상세하게 묘사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외교가에선 국정원의 실책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명품 매장 CCTV에 포착되거나 한국대사관 차량 번호판을 노출한 정보 활동이 국정원 요원으로 보기에 어설프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국정원은 “한·미 정보 당국은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는 짤막한 입장만 냈다.
테리 연구원은 2001~2008년 CIA 동아시아 분석가로 근무한 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국·일본·오세아니아 담당 국장과 국가정보위원회(NIC) 동아시아 담당 분석관, 워싱턴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테리 연구원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법률대리인인 리 월로스키 변호사는 공소장에 대해 “근거가 없다. 독립적으로 수년간 미국에 봉사한 학자이자 뉴스 분석가인 테리 연구원의 업적이 왜곡됐다”고 밝혔다. 또 “테리 연구원은 한국 정부 대리인으로 지목받은 시기에 한국 정부를 혹독하게 비판했다”며 “사실이 밝혀지면 미국 정부의 중대한 실수가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테리 연구원이 현직을 떠난 지 10년이 넘어 정부 기밀을 상시 접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김철오 이택현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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