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호우, 극한호우

고승욱 수석논설위원

비는 이름이 많다. 대기 중 수분이 뭉쳐 액체 상태로 떨어지는 기상현상인 건 매한가지인데 계절에 따라, 사는 모습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부지런히 농사를 시작하는 봄에는 일비가, 농한기 겨울에는 한잔 걸치라며 술비가 내린다. 여름철 소나기는 낮잠 자고 가라고 잠비, 가을비는 추수한 쌀로 떡을 해먹으라고 떡비라 불렀다. 해가 떴는데 내리는 여우비, 몇 방울 먼저 떨어지는 꽃비, 내리는지 안 내리는지 헷갈리는 안개비, 아무도 모르게 밤에 살짝 내린 도둑비도 있다.

그중 강수량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잎새에 맺힐만큼 가볍게 내리면 이슬비, 그보다는 많지만 우산 쓰는 게 귀찮으면 가랑비라 한다. 이슬비는 시간당 3㎜ 이하, 가랑비는 시간당 5㎜ 정도의 약한 비(light rain)다. ‘비가 온다’고 할 때의, 우산 없이 밖에 나가기 곤란한만큼은 시간당 10㎜ 안팎의 보통비(moderate rain)를 말한다. 창 밖으로 빗소리가 들리고 마당에 빗물이 흐르는 정도다. 이보다 많으면 폭우(heavy rain)다. 장대처럼 굵고 세찬 장대비, 물을 퍼붓듯 쏟아지는 억수비다.

우리 기상청은 장대비와 억수비를 호우라고 부른다. 시간당 20㎜의 비가 3시간 이상 내릴 것으로 예상되면 호우주의보를, 시간당 30㎜의 비가 3시간 이상 내릴 것으로 보이면 호우경보를 내린다. 이런 비가 좁은 지역에 짧은 시간동안 쏟아지는 게 집중호우다. 한때 일본 기상청이 군사용어를 섞어 만든 ‘게릴라성 호우’ ‘폭탄 저기압’ 같은 말은 더는 쓰지 않는다. 우리 기상청은 지난해부터 시간당 50㎜가 넘으면서 3시간 누적 강수량이 90㎜를 넘는 경우, 1시간 누적 강수량이 72㎜이상인 경우를 극한호우라고 부르기로 했다. 극한호우가 예상되면 기상청은 독자적으로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한다.

전국 곳곳에 극한호우가 쏟아졌다. 그제 전남 해남에 시간당 78.1㎜ 억수비가 내려 200년에 한번 꼴이라는 분석이 나왔는데, 이 비가 하루 만에 서울로 치고 올라왔다. 한동안 이런 비가 계속된다니 단단히 대비할 일이다.

고승욱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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