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영원한 고민거리, 부조금

2024. 7. 18.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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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계좌번호 적힌 모바일 청첩장 단체 문자로 들어오는 부고장
인맥 관리·주변 평판 때문에 감당하기 어려워도 무시 못해
축하·위로하는 만큼 낼 수 있게 부조 문화 다시 돌이켜봤으면

최근 아시아 최고 부호인 인도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의 막내아들 결혼식에 인도 전통의상을 입고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사진이 화제가 됐다. 나흘 동안 열린 화려한 행사에 전 세계 유명인이 대거 참석해 ‘다보스포럼급’ 결혼식이 열렸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만약 이 회장의 자녀 결혼식이 이렇게 호화롭게 치러진다면 삼성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경영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접한 이 회장은 중고로 구입한 국산 SUV를 손수 운전하며 개인 일정을 소화하고, 10만원대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덜 가진 이들을 위한 배려 또는 몸에 밴 소박한 생활의 단면일 수도 있지만 세상의 시선을 의식한 행동으로 볼 수도 있다.

반대로 이 회장만큼 가지지 못한 이들은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며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결혼과 장례 문화도 그렇다. 식장의 화환 수와 화환을 보낸 이들의 사회적 영향력, 그리고 축하객과 조문객의 숫자로 혼주와 상주의 삶을 평가하는 시선을 의식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다 보니 명함을 주고받으며 한두 번 인사를 나눈 사이임에도 청첩장이나 부고를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일생에 한 번이라는 이유로 분에 넘치게 예식을 치르면서 감당하기 힘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경우도 있고, 지금껏 지출한 경조사비를 회수하기 위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심리학자 로빈 던바는 인간이 상대의 얼굴을 알아보고 이름을 외울 수 있는 대상은 500명 정도지만, 유의미한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대상은 150명을 넘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지금은 물리적인 만남이 허락되는 제한적 관계 속에서 직접적 상호작용을 통해 삶을 영위했던 시대와는 달리 모바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확장된 관계 속에 간접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삶의 많은 부분을 영위한다. 그러니 보다 많은 상대와 유의미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가 파편화되면서 관계 수는 늘었지만 결혼식이나 장례식과 같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순간을 함께 나누고 싶을 만큼 깊이 있는 관계는 오히려 줄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모바일 청첩장과 부고가 생겨나고 모바일 뱅킹이 대중화되면서 챙겨야 할 경조사가 늘어났다. 특히 장례식의 경우 경황이 없는 탓에 전화기에 저장된 모든 전화번호로 단체 문자를 통해 부고를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아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운 이들로부터 부고를 받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 청첩장과 부고에는 계좌번호가 적혀 있다. 일정 때문에 참석이 어렵다는 핑계로 부조금을 내지 않기도 어렵다.

또 이전과 달리 여권이 신장돼 처가·시가 상까지 부고를 받다 보니 경조사비가 경제적으로 부담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인맥 관리나 주변 평판 때문에 감당하기 어려운 부조금을 내는 경우도 많다. 경조사를 치른 혼주와 상주들은 받은 부조금 액수를 기준으로 본인의 인간관계를 다시 돌아보기도 하고, 기대에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부조금을 보낸 이들을 두고두고 주변에 고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경조사를 한몫 챙기는 수단으로도 인식하지 말고, 평소 깊고 의미 있는 관계를 이어가는 친지들과 소박하게 경조사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었으면 한다. 최근 SNS를 통해 알려진 젊은이들의 호화로운 청혼 문화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허세 문화가 젊은이들이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원하지 않는 사회적 현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 기르고 결혼시키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허세를 부릴 생각을 하면 결혼도 출산도 감당이 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대대로 한 마을에서 친지들과 어울려 살아가던 시절에 노동력과 음식 등 현물로 품앗이하던 부조 문화는 이제 현금을 주고받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비혼주의자들은 비혼 선언식을 하고 결혼식 축의금을 회수하는 경우도 생겨나는 실정이다. 기술 발전으로 삶의 형태도 터전도 다양해진 지금, 부조 문화를 다시 한번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고인의 삶을 함께 추억할 수 있는 이들과 장례식을 치르고, 자식들과 함께 성장하고 그들의 성장을 함께 지켜본 이들과 결혼식을 치렀으면 한다. 그리고 부조금은 돌려받는다는 생각을 접고 그저 축하하고 위로하고 싶은 만큼 냈으면 한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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