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트럼프 피습, 남의 일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공화당 대선후보의 총기 피습은 불행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놀란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뿐이기 때문이다.
어디 트럼프뿐이겠는가. 전 세계 민주주의가 일제히 뒷걸음질 쳐왔던 지난 10여년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치 테러와 폭력은 난무해왔다. ‘브라질의 트럼프’라고도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2018년 대선 유세 도중 복부에 칼을 맞고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오히려 대권을 움켜쥐었다. 2022년 대선에서 룰라 전 대통령에게 패배하자 그의 지지자들은 선거를 도둑맞았다며 폭동을 일으키고 군이 나서서 대선에서 승리한 룰라를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선 패배 직후 지지자들이 의회에 난입하고 트럼프는 오히려 짐짓 묵인했던 장면이 겹쳐지며 큰 파문을 일으켰다. 평소 트럼프야말로 세계 최고의 지도자라고 말해왔던 보우소나루는 이번 일이 터지자 자신의 피습 사건과 즉시 연결지으며 자기들 두 사람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건 하늘의 뜻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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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서 정치 테러와 폭력 난무
포퓰리즘과 극단주의 필연적 결과
현재 한국에도 만연한 정치적 태도
대선주자 재판 지연도 위험 요인
」
폭력은 아메리카 대륙에 그치지 않는다. 올해 EU 선거가 진행된 유럽은 난장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5월 15일에는 슬로바키아의 포퓰리스트 총리인 로베르트 피초가 암살당할 뻔했고, 폴란드 총리 도날드 투스크는 자신도 암살 위협을 받아왔다고 공개했다. 한때 유럽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처럼 여겨졌던 독일도 예외가 아니다. 2019년 그다인스크 시장 파베우 아다모비치가 암살당했고, 같은 해 카셀 시장 발터 뤼브케도 저격당해 숨졌다. 의회 선거가 진행 중인 프랑스에서는 50명이 넘는 후보와 운동원들이 물리적인 폭력을 당했다.
아시아로 넘어오면 이웃 나라 일본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연설 도중 저격당해 숨진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이라고 예외일 리 없다. 올해 초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목 부위를 칼에 찔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고,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도 머리를 가격당해 입원해야 했다. 엊그제 국민의힘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장에서 의자가 날아다닌 사건은 차라리 애교라고 할 수준이다.
정치 테러는 포퓰리즘의 필연적 결과이고, 극단주의는 포퓰리즘과 쌍생아이다. 펜 스테이트 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제임스 피아자는 포퓰리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포퓰리즘이란 세상을 두 개의 적대하는 정치사회적 세력으로 구분하는 태도이다. ‘국민’은 애국적이고, 순수하고, 선하다. ‘엘리트’는 매국노이고, 부패하고, 거만하며, 국민의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어려움에 신경 쓰지 않고, 국가의 문화적 전통을 무시한다. 정당성을 가진 정부란 ‘국민의 뜻’을 따르는 정부인데, ‘엘리트’들은 이러한 뜻을 훼손하고 조작한다.
어쩐지 익숙하다고 느끼는 독자들이 많을 터인데, 바로 지금 한국에 만연한 정치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은 종종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태도를 강요한다. 다수의 연구는 포퓰리스트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정치적 폭력을 묵인하거나 심지어 지지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물리적 폭력만 폭력이 아니다. 정치에 있어서 최소한의 신사적 관행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리고 국민의 뜻이라는 핑계로 힘을 과시하는 행위도 폭력이다. 가장 명예로워야 할 현역 군인을 국회에 출석시켜 국회법이라는 핑계로 얼차려를 주다시피 모욕하는 것도 명백한 폭력이다. 그들의 행위는 상대 후보를 향해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는 행위와 정확한 연장선에 있다. 상대는 매국노이고 나는 국민의 뜻을 따라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적나라하게 힘을 과시하고 언어폭력을 휘두를 때, 그들의 극단적 지지자와 비판자들은 골방에서 조용히 물리적 폭력의 도구를 준비할 것이다.
차기 대선을 생각하면 아득하다. 누가 당선되고 집권하느냐를 따지기에 앞서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제도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가장 강력한 포퓰리스트 성향의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에 대한 재판이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는 것은 제도의 안정성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대선이 코앞인데 유죄판결이 나온다면 그의 지지자들은 선거를 도둑맞았다고 여길 것이다. 반대로 지금처럼 결론이 없는 상태에서 대선이 치러지고 혹시 그가 당선되기라도 한다면 이번에는 그의 반대자들이 선거를 도둑맞았다고 여길 것이다. 미국 의회와 브라질리아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여의도와 용산에서 재현될 것이다. 오래전 죽은 줄 알았던 용팔이는 슬그머니 돌아와 어둠 속에서 각목을 휘두를 것이다.
재판부의 판단과 용기가 나라의 명운을 바꿀 수도 있는 특별한 상황이다. 최종적인 판결의 내용이 무엇이든, 예측 가능한 일정과 원칙 하에 신속하게 결론을 내려야 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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