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100년 산책] 만일 내가 교육부 장관이 된다면

2024. 7. 18.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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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몇 언론사의 기자들과 대화시간을 가졌다. 이야기가 우리 교육 문제로 옮겨갔을 때였다. 한 기자가 “만일 선생님이 교육부 장관이 된다면 무슨 일을 하겠는가”라고 물었다. 나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로 지금 계속하고 있는 대학입시 수능시험제도를 폐지하겠다”라고 했다. 질문에 서슴지 않고 꺼내는 내 대답에 약간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건국 초창기 ‘새 교육’ 이념 변질돼
대한민국 초창기에 ‘새 교육’이라는 이념이 생겼고 모두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미국 교육사절단과 우리 교육계가 부산 피란 정부 때 창안해 낸 세 가지 교육개혁 과제가 있었다.

「 공교육을 입시의 제물로 만들고
서열화 조장하는 수능 폐지해야
동남아 학생 적극 유치하고 싶어
개인도 나라도 베풀면서 완성돼

김지윤 기자

첫째는 미래를 위한 교육은 부모 중심의 교육에서 자녀를 위한 교육으로, 스승의 뒤를 따르는 교육에서 제자의 인격을 키워주는 교육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조선 시대부터 그때까지의 교육 방향을 개혁하는 과제였다. 둘째는 교육의 주체는 정부나 관(官)이 아니고 교육전문가들이 되어야 한다. 대학 교육은 정부가 협조해 주는 데 그치고 대학 자체의 자율과 선택에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 셋째는 교육 전반에 걸친 평가의 기준은 지식 위주가 아니고 인격 수양을 위한 학습이어야 한다. 국민교육을 위해서는 ‘하지 말라’, ‘벌을 받을 수도 있다’라는 부정적 평가를 버리고 ‘스스로 알아서 해보라’, ‘잘할 수 있다’, ‘더 새로운 것을 찾도록 하라’는 긍정적 평가로 개선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런 민주적인 ‘새 교육’의 방향을 찾아 진행되었으나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 노력이 퇴색되기 시작했다. 정권 말기에는 충·효 사상이 등장했는가 하면 심지어 대학에까지 ‘국민윤리’ 과목을 강요하기도 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 때는 컴퓨터가 개발되면서 대학입시제도까지 교육부가 관장했다. 컴퓨터를 이용하면 수십만 명의 성적도 단시일 내에 채점할 수 있고, 어떤 방법보다도 공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장점을 교육 평가에 활용했다. 수십만 명 학생을 성적 서열로 세워 놓으면서 최고의 방법인 듯이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사회 문제가 된 수능의 폐해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학생들의 일생을 통해 가장 소중한 기간을 입시의 제물로 만들었고, 고등학교까지 국민교육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입시 공부로 희생시켰다. 그것은 마치 한국 교육이 가는 고속도로 위에 수능시험이라는 불필요한 언덕을 만들어 놓고 이 언덕을 넘는 절차와 결과에 따라 대학교육과 인생의 먼 길을 가게 된다는 부작용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의 공교육은 본질을 상실하고 사설 입시학원이 국민교육을 대신했다.

학생 성장도 그렇다. 고등학교 초반까지는 기억력이 왕성하고 그 후 4, 5년간에는 이해력과 변별력이 폭넓게 풍부해진다. 가장 소중한 사고력은 대학 후반기부터 자라서 평생에 걸쳐 성장하는 것이 인생이다. 수능시험의 성적은 기억력 측정은 될 수 있으나 이해력과 사고력은 평가할 수 없다. 하물며 정해진 몇 항목의 문제 풀이를 가지고 수십만 명의 지적성장을 획일적으로 대학입시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구상 자체가 잘못이다.

입시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학생들보다는 B+정도의 학생이 대학에 와서는 더 높은 성적을 차지하는 것이 보통이고, 인간성의 평가에는 입시가 역효과를 내기도 했다. 그래서 주관식 문제로 개선하기도 하고, 논술고사를 병행하는 사태로 바뀌었다. 지금의 제도를 개선한다는 의도였지만 불필요한 언덕을 높은 산(山)으로까지 만든 상황이 되었다. 대학의 자율성, 다양성, 창조성을 위한 목적과는 상반되는 결과가 되었다. 인문학, 예능 분야, 운동 재능에는 필요 없는 낭비를 강요하는 부작용까지 만들었다. 그 결과는 사회문제로 확장됐다. 1년에 한 차례 치르는 입시가 국가적 행사로 변질하였다. 교육의 본질을 해치고 국가적 낭비를 조장했다. 사교육비가 공교육비를 초과하는 모순을 정부가 책임져야 할 단계가 되었다. 수능성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낙오자가 된 학생들의 진로와 인생을 선도하는 책임자가 없다. 인간교육은 설 자리가 좁아졌고 지적 고하가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폐습을 조장했다.

늦기는 했으나 지금의 대학입시 수능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부작용이 걱정이지만 인간교육의 정도를 교육부가 막아서는 안 된다. 대학입시는 책임자인 대학으로 환원시키고 국민교육은 사랑이 있는 사제관계로 열매를 거두도록 방향을 개선하기를 바란다.

교육 혜택 나누는 건 번영의 기반
내가 하고 싶은 두 번째 과제는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우수한 젊은 학생들에게 국가가 장학금을 주어 받아들이는 제도이다. 베트남은 한국이 전쟁에 참여한 과거도 있고, 동남아시아에는 우리 젊은 세대 못지않은 미래 인재가 많다. 그들에게 지금 교육적 혜택을 나누어 주는 결과는 서로를 위해 번영의 최대 기반이 된다. 도움을 받은 국가의 성장은 교육을 베푸는 국가의 번영과 지도력을 높여 준다. 그것은 우리 국격과 문화를 일본이나 중국보다 더 세계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늦기 전에 실현되었으면 좋겠다.

경제 원조를 받다가 도움을 주는 선진 국가가 되었다면 인류 사회에 정신 문화적 기여를 담당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젊은 세대들의 성장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과제다. 인간은 받으면서 자라고 베풀면서 완성된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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