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금 계좌? 잠시만요…매물 빼는 서울 집주인
2년반 만에 매도우위 시장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정모씨는 “최근 집을 판 집주인들을 달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계약 당시만 해도 매도인과 매수인이 만족할 수 있는 적정 가격에 합의가 이뤄졌는데, 1~2주 만에 수천만 원씩 오른 가격에 새롭게 거래가 이뤄지다 보니 한두 달 전 집을 판 집주인들이 크게 아쉬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아파트 집값이 16주 연속(한국부동산원 주간 조사) 오르는 등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아파트 거래 시장이 매도인(집주인) 우위로 재편하는 분위기다. 가격, 거래 조건 등에 대한 협상 테이블에서 주도권이 매도인으로 넘어갔다는 의미다.
17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지난주 100.4를 기록하면서, 2021년 11월 둘째 주 이후 2년 8개월 만에 기준선인 100을 넘었다. 매매수급지수 100을 넘으면 집을 팔려는 사람보다 사려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이를 보통 ‘매도인 우위’라고 일컫는다. 지난주 조사에선 강남(100.3), 강북(100.6) 모두 기준선을 넘었다.
수요가 몰리는 입지 좋은 지역에서는 ‘매도인 우위’ 경향이 더 강하다. 일선 중개업소 관계자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거래가 본격적으로 늘어난 5월 이후 매도 호가가 평균 1억~2억원씩 껑충 뛰었다. 9510가구 규모의 국내 최대 단지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의 경우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전용면적 84㎡ 매물 최저 호가가 18억원이었는데, 최근에는 20억원(저층)~20억5000만원(중층)이 최저가다.
3100가구인 양천구 신정동 목동신시가지 14단지 27평(전용면적 71~74㎡)의 경우에도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14억원 초반대에 거래가 이뤄졌는데, 이달 들어 1억원가량 올라 거래되더니 지금은 15억 원대 매물을 찾기 어려워졌다.
실제 시장에 나오는 매물도 줄고 있다. 집주인들이 집값이 더 오를 것을 기대하면서 매물을 거둬들여서다. 부동산 거래정보 플랫폼 리치고에 따르면 지난 5월까지만 해도 8만5000건에 달하던 서울 아파트 매도 매물은 지난 15일 7만8804건(17일 기준 8만39건)까지 줄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입지가 좋은 지역에선 매도인 우위 시장이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2022~2023년 집값 급락과 거래절벽으로 집 매수를 포기한 수요층이 잠재해 있는데, 최근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3%대로 내리면서 이들의 움직임이 시작됐다”며 “서울에서 시작한 상승세가 수도권, 지방 광역시 등으로 퍼질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런 분위기가 확산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는 분위기다. 집주인들이 호가를 올리는 속도를 과연 추격 매수세가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경험적으로 매도인이 원하는 가격이 과도하다고 느껴지는 시점이 오면 추격 매수세가 한풀 꺾일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는 최근 집값과 전셋값 상승세가 이어지자 18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정부가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는 것은 지난해 9월 이후 10개월 만이다.
이번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통해서는 주택 공급 물량 자체를 대폭 확대하기보다는, 기존에 발표한 공급 활성화 대책을 빠르게 이행하겠다는 내용을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 등을 차질 없이 시행할 것이라는 점도 밝힐 예정이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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