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꿈꿨던 ‘K-콘텐츠 성지’…결국 백지화

나건웅 매경이코노미 기자(wasabi@mk.co.kr) 2024. 7. 17.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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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민들의 기대는 어디로

경기 고양시에 세계 최대 규모 K팝 공연장 등을 조성하는 ‘K-컬처밸리’ 사업이 전면 백지화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최근 경기도는 해당 사업 시행을 맡았던 CJ라이브시티에 일방적인 사업 협약 해제를 통보하며 ‘공영 개발’ 방식으로 사업을 재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CJ ENM 자회사인 CJ라이브시티는 “허망하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해당 사업만을 위해 설립된 기업으로, 한순간에 존폐 기로에 놓였다. 2016년 사업 시작 이후 8년 동안 쓴 돈 약 7000억원도 허공에 날리게 될 판이다.

경기도와 CJ라이브시티 사이 진실 공방도 격화되는 중이다. 경기도는 CJ라이브시티가 완공 기한을 맞추지 못했고 배상금 감면 등 수용할 수 없는 요구를 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CJ라이브시티는 불가항력적인 외부 환경 변화가 감안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최근 국토교통부 조정위원회에서 나온 사업 중재안 역시 경기도가 무시했다는 입장이다.

경기도와 CJ라이브시티가 추진했던 ‘K-컬처밸리’ 사업이 무산됐다. 세계 최초 K팝 전문 아레나 공연장 등을 비롯해 약 10만평 규모로 조성, K콘텐츠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 바 있다. 아레나 조감도. (CJ라이브시티 제공)
지난해 말 공사가 중단돼 있는 K-컬처밸리 전경. (CJ라이브시티 제공)
“K-콘텐츠 성지 만들겠다”

고양시와 CJ그룹의 숙원 사업

K-컬처밸리는 CJ그룹 숙원 사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 한류팬 관광객을 흡수할 ‘K-콘텐츠 성지’를 꿈꾸며 야심 차게 출발한 프로젝트다. 실내 2만석·야외 4만석 수용이 가능한 ‘세계 최초 K팝 공연 전문 아레나’를 비롯해, 영화·드라마 등 K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약 10만평(32만6400㎡) 규모 문화 복합 단지로 조성할 예정이었다. 부지는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일대로, 총 사업비는 2조원에 달한다.

2016년 경기도 K-컬처밸리 공모 사업에 CJ라이브시티가 선정되며 시동을 걸었다. K-콘텐츠 육성 발전에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CJ그룹 계열사야말로 최적임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개장이 될 경우 약 10년 동안 30조원 규모 경제 파급 효과와 약 20만개 일자리 창출이 예상된 덕분에 고양시민을 넘어 전 국민적인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경기도 등 지자체와 의견 차이로 총 4차례 인허가가 지연되며 사업 개시 후 약 5년이 지난 2021년이 돼서야 착공할 수 있었다. 당초 2020년 완공 예정이었으나 그사이 3차례 사업계획이 변경되면서 양측은 올해 6월 완공하기로 합의했다.

이후로도 악재가 계속됐다. 그사이 달라진 외부 환경이 발목을 잡았다.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고 금리도 크게 올랐다. 2023년에는 한국전력공사가 돌연 ‘대규모 전력 공급 불가 통보’를 내렸다. 경기 남부 반도체 클러스터가 패스트트랙으로 최우선 추진되는 탓에, K-컬처밸리 공연장에 사용할 전력 수급이 원활하지 못하게 됐다. 2029년에야 전력 공급이 가능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단지 내 수변 공원으로 조성될 일산 한류천 수질 개선 공공 사업이 지연되는 등 암초가 잇달아 등장했다.

전력 공급이 안 되는 상황에서 CJ라이브시티는 전에 마련한 청사진을 엎고 공사 계획을 새로 짜야 할 처지에 놓였다. CJ라이브시티는 결국 지난해 4월 공사를 중단했다. 현재 아레나 공정률은 17% 정도다.

현재 ‘CJ라이브시티 관련 상세한 소명과 재검토’를 요청하는 청원이 경기도청원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고 있다. 참여인이 1만명을 넘겼기 때문에 경기도에서는 공식 답변을 내놔야 한다. (경기도청원 홈페이지 갈무리)
경기도-CJ라이브시티 ‘진실 공방’

CJ “정부 권고 조정안, 경기도 무시”

공사는 멈췄지만 CJ도 두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CJ라이브시티는 국토부 민관합동 프로젝트파이낸싱(PF) 조정위원회에 사업 조정을 신청했다. 조정위는 PF 사업 추진 여건이 악화된 상황에서 민관합동 PF 사업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정부 판단 아래 가동된 조직이다. 국토부 조정위는 지난해 12월 양측에 완공 기한 재설정과 배상금 감면을 권고했다. CJ라이브시티는 이 밖에도 글로벌 1위 스포츠·엔터테인먼트사인 AEG와 아레나 운영 합작법인을 세우기로 하고 올해 2월 별도로 2000억원 규모 기업어음(CP)을 발행하는 등 사업 정상화에 나섰다.

하지만 경기도 입장은 완강했다. 기존 완공 기한인 6월 30일부터 하루가 지난 7월 1일, 경기도는 K-컬처밸리 협약 해제를 통보하며 사업을 전면 백지화했다. 또 앞으로는 민간이 아닌 공공 주도의 ‘공영 개발’ 방식으로 사업을 재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김현곤 경기도 경제부지사는 “CJ라이브시티 측이 자금난 등을 이유로 기한을 맞추지 못했는데, 사업 기간 종료가 임박한 시점에서 지체상금 감면 등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지체상금 감면은 특혜·배임 문제가 있어 수용이 어렵다”며 “더 이상 합의가 어렵다고 판단해 불가피하게 협약 해제를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CJ라이브시티는 경기도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CJ라이브시티 관계자는 “자금난 등 공사 지연에 따른 약 1000억원 규모 배상금은 납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감면을 부탁한 건 전력 공급 차질이라는 변수 이후 앞으로 계속 부과될 ‘상한 없는 지체상금’에 한했던 것”이라며 “객관적인 전문위원이 참여한 중앙 정부 조정위에서 ‘지체상금 감면이 괜찮다’는 중재안을 냈는데 경기도는 왜 계속 배임·특혜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CJ그룹에 미칠 영향은

‘2조원 사업비 리스크 해소’ 평가도

경기도와 CJ라이브시티 사이 진실 공방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와 별개로 사업은 종료 수순을 밟게 됐다.

CJ 손해는 막심하다. CJ라이브시티는 K-컬처밸리 사업에 이미 7000억원을 투자한 상황이다. 토지 매입 비용 약 1940억원을 비롯해 지난 8년간 법인 운영비, 인건비, 투자 유치에 들어간 금융 비용 등을 포함한 금액이다. 토지 매각 대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최악의 경우 지금껏 투자한 7000억원을 허공에 날리게 된다. CJ라이브시티 측이 매몰비용 보전을 요구하고는 있지만 경기도는 “공공과 경기도민, 고양시민 개발이익과 부가가치 매몰이 CJ라이브시티 개발비용보다 더 크다”며 맞서고 있다.

CJ라이브시티는 애초에 K-컬처밸리 사업을 위해 설립한 기업인 만큼 폐업 수순을 밟을 확률이 높다. 자체 상환 여력이 없어 청산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CJ ENM이 보유 중이었던 2500억원 규모 넷마블 지분을 처분한 배경도, CJ라이브시티 청산에 대비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K-컬처밸리 백지화가 CJ그룹 전체에 미칠 여파가 어느 정도일지는 ‘계산기를 두드려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당장 손실은 크겠지만 전체 2조원에 달했던 사업비 지출 리스크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금전적 손실과 별개로, 오랜 시간 CJ그룹과 이재현 회장이 강조해온 ‘문화보국’ 철학에 상처를 입었다는 점에서 타격이 크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한 재계 관계자는 “K-컬처밸리는 CJ그룹 문화보국 투자에 방점을 찍는 주요 사업이었다. 이를 대체할 만한 상징적인 새 사업이나 파급력이 큰 프로젝트를 다시 발굴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지 모른다”며 “그룹 차원에서도 이번 사업 백지화는 아쉬운 결과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CJ라이브시티 관계자는 “법적 소송은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최근 경기도 통보 직전까지도 어떻게든 사업을 계속해나가려는 고민만 해왔던 탓에, 사후 어떤 식으로 사업을 마무리할지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8호 (2024.07.10~2024.07.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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