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총 3위마저 …엔씨 히든카드는 없나
‘탈리니지’를 표방하며 변화를 주던 엔씨소프트가 표류한다. 야심 차게 내놓은 신작 게임이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2분기 엔씨소프트가 영업손실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져 나온다. 실적 부진은 주가 하락으로 이어진다. 7월 주가는 연초 대비 20%가량 줄었다. 7월 11일 한때 상장한 후발 주자 시프트업에 게임업계 시가총액 3위 자리를 잠시 넘겨주기도했다. 위기가 계속되자 내부에서는 다시 ‘리니지 IP’에 기대려는 움직임까지 나온다. 게임업계와 시장에서는 “변화를 포기하고 과거로 돌아가면 엔씨소프트에 미래는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상당하다.
배틀크러쉬도 성과는 글쎄…
지난해부터 엔씨소프트가 내놓은 신작들은 시장에서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내놓은 퍼즐 게임 ‘퍼즈업 아미토이’는 1년 만에 시장에서 사라졌다. 7월 10일 엔씨소프트는 ‘퍼즈업 아미토이’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밝혔다. 퍼즈업 아미토이는 엔씨소프트가 ‘체질 변환’의 일환으로 내놓은 게임이다. 리니지를 비롯한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에 치중된 포트폴리오에 변화를 주는 게 목적이었다. 당시 야구단 NC다이노스와 협업한 유니폼까지 내놓을 정도로 회사 차원에서 적극 밀었던 작품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매출 부진이 계속되자 결국 엔씨소프트 측은 서비스 종료를 택했다.
2023년 12월 선보인 게임 쓰론 앤 리버티(이하 TL)는 부진을 이어간다. 국내에서는 게임 이용자로부터 외면받으며 매출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반응도 미지근하다. 강석오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말 서비스를 시작한 TL은 여러 차례 업데이트에도 반등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4월 글로벌 CBT(사전 테스트)에서도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평가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6월 27일 얼리 액세스로 공개한 게임 ‘배틀크러쉬’의 성과도 아쉽다. 얼리 액세스란 ‘앞서 해보기’라는 뜻으로 체험형 게임을 먼저 내놓는 방식이다. 이때 평가가 좋은 게임은 바로 정식 공개로 이어간다. 현재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기록 중이다. 게임 플랫폼 사이트 ‘스팀’에서 긍정 평가 비율이 44%에 그친다. 반응이 저조한 탓에 정식 공개까지 이어지려면 다소 험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난투형 액션 게임’을 표방한 배틀크러쉬는 올해 상반기 엔씨소프트 최대 기대작 중 하나였다. 엔씨소프트가 처음 내놓는 닌텐도 스위치용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예측 못한 기대작의 부진에 엔씨소프트 고민도 깊어져 가고 있다.
신작 흥행 실패는 곧 실적 감소로 이어졌다. 2023년, 11년 만에 최악의 실적을 거둔 엔씨소프트는 올해 1분기 역시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1분기 기준 매출 3979억원, 영업이익은 25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6.9%, 68.5% 줄어든 수치다. 그나마 1분기는 양호한 수준이다. 시장은 올해 2분기 실적이 더 안 좋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증권가는 엔씨소프트가 2분기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SK증권은 엔씨소프트가 지난 2분기에 연결 기준 매출 3920억원, 영업손실 63억원으로 약 10년 만에 분기 영업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KB증권은 엔씨소프트의 2분기 실적이 매출 3804억원, 영업손실 60억원을 기록할 것이라 계산했다. 대신증권은 매출 3609억원, 영업손실 114억원을 예상했고 2일에는 한화투자증권이 매출 3822억원, 영업손실 72억원을 거둘 것으로 분석했다. 현대차증권 정도만 흑자를 예측했다.
‘탈리니지’를 표방한 작품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회사 실적이 부진하자 엔씨소프트 내부에선 다시 리니지 IP를 내세우려는 움직임까지 나온다. 실제로 현재 방치형 게임 ‘리니지 키우기’를 제작 중이다. 방치형 게임은 이용자가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캐릭터가 자동으로 움직이며 재화를 수집하는 장르다. 상대적으로 개발 난도가 낮아 중소 규모 게임사들이 도전하는 장르다. 넷마블의 ‘세븐나이츠 키우기’와 중국 게임 ‘버섯커 키우기’가 인기를 끌자, 엔씨소프트도 개발에 뛰어들었다.
다시 리니지 IP를 앞세우는 엔씨소프트를 두고 시장에선 우려의 시선이 팽배하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가 관계자는 “방치형 게임은 일반적으로 귀여운 캐릭터를 앞세운다. 대중에게 인기가 많았던 도구리 캐릭터 사업은 철수하고, 굳이 ‘리니지 IP’를 앞세워 방치형 게임에 도전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리니지 IP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져서는 곤란하다”고 전했다.
임원진 개혁 없인 ‘힘들다’는 지적도
시장과 게임업계 일각에서는 엔씨소프트의 구조조정 작업에 대해서도 ‘더 큰 변화’를 줘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단순한 인원 감축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아예 회사의 방향성을 총괄하는 임원진의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현재 고강도의 체질 개선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사업부 물적 분할과 인원 감축을 통해 방만한 조직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엔씨소프트 품질보증 서비스 사업부문 전문 기업 ‘엔씨큐에이’와 응용 소프트웨어 개발 공급 사업부문 전문 기업 ‘엔씨아이디에스’ 두 곳을 물적으로 나눈다. 동시에 인력 감축에도 나선다. 연내 임직원 수를 4000명 중반대로 줄여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1분기 기준 임직원 수는 약 4802명이다. 500명 가까이는 내보내는 셈이다. 엔씨소프트는 구조조정을 통해 재무 개선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이가 적잖다. 결국에는 엔씨소프트 고위층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 엔씨소프트는 과거부터 임원진이 ‘단기 수익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탓에 디자인, 개발, 기획 등 전 분야에서 꿀리지 않는 능력을 가진 인재들이 역량을 펼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실력 있는 개발자나 아트 디렉터가 회사 정책에 반발해 나간 경우가 상당수다. 엔씨소프트에서 나간 인재들은 시프트업, 크래프톤 등 주요 회사의 창업 주역이 됐다. 이들 인재만 잘 품었어도 엔씨소프트가 현재까지 위기를 겪지는 않았을 것이란 설명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대표가 외부에서 와도, 주요 임원진이 여전히 단기 수익성과 리니지 IP만 바라본다면 변화는 요원하다. 자금 여유도 충분한 기업 아닌가. 실패하더라도 회사 인재들의 새로운 게임 개발을 더욱 독려할 때”라고 강조했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8호 (2024.07.10~2024.07.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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