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신작로 옆에 죽여놨드만"... 전두환에게 묻는다
[황광우 작가]
2024년 6월도 다 가는 날 30일, 전남일보 245빌딩 9층 강당에서 이색적인 행사가 벌어졌다. 영화와 책이 만났고, 감독과 작가가 만났다. 같은 사건을 놓고 다르게 이야기했다.
같은 사건이라 함은 1980년 5월 24일, 광주의 한 변두리 마을 송암동에서 벌어진 주민 학살 사건을 말한다. 영화 <송암동>을 제작한 이조훈 감독과 책 <시민군>을 편집한 필자는 동일한 사건을 두고 영화 <송암동>과 책 <시민군>이 어디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지, 그날의 진실은 무엇이었는지, 44년이 세월이 지나고도 다 밝히지 못한 오월의 진실을 논의했다.
시민 100여 명은 영화 <송암동>을 봤고, 이어지는 감독과 작가의 토크를 들었다. 나는 송암동 사건에 관한 별도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 이렇게 보고했다.
▲ 5.18민주화운동 중인 1980년 5월 24일 광주 송암동 일대에서 숨진 권근립의 묘. |
ⓒ 소중한 |
"우리 집에서만도 세 명이나 죽었어. 아조 난리가 나부렀당께. 그때 일만 생각허믄 오장이 뒤집힐라 해."
데모를 한 것도 아니다. 시민군으로 활약한 것도 아니다. 총기를 휴대한 것도 아니다. 그냥 집에 있는 청년을 잡아다 죽여버린 것이다.
"온 집안을 다 살피고 밖으로 나가 아들을 찾아 헤매는디, 우리 아들을 신작로 옆 도랑에다 죽여놨드만..."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국군은 국민의 군대다. 결코 선량한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눌 일은 없다. 국군은 자위(自衛) 목적이 아닌 한 총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훈련받는다."(<전두환 회고록>, 382쪽) 권근립은 전두환에게 묻고 있다. 대한민국 국군은 국민의 군대인가?
김승후, 그는 1961년생이니까 19세의 청년이었다. 선반 기술을 익히던 승후에겐 꿈이 있었다. 전국 기능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꿈, 그리하여 어머니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드리는 꿈이었다. 승후는 쉬지 않고 기능을 갈고닦아 능력을 발휘할 전국대회만을 기다렸다. 항쟁의 열기가 더해가고 다니던 공장은 문을 닫았다.
김승후는 전두환에게 묻는다. "국군은 선량한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지 않는가? " 망월동에 있는 김승후의 묘비엔 이렇게 적혀 있다. "눈부신 햇살 아래 붉게 빛나는 사루비아 꽃잎처럼"
▲ 5.18민주화운동 중인 1980년 5월 24일 광주 송암동 일대에서 숨진 임병철의 묘. |
ⓒ 소중한 |
임병철, 그는 1956년 출생이니까, 당시 24세의 청년이었다. 임병철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초등학교만 마치고 광주에서 연탄공장 기사로 일했다. 그는 송암동 주택가 권근립의 집에서 자취를 하며 살고 있었다. 한 집에서 세 명이 학살당한 바로 그 집이었다. 임병철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순박한 청년이었다. 임병철은 그냥 집에 있다가 당했다.
임병철은 전두환에게 묻는다. "연탄공장 기사는 대한민국의 선량한 시민이 아닌가요?", 망월동에 있는 임병철의 묘비엔 이렇게 적혀 있다. "폭군의 피바람을 헤치고 역사에 바쳤다. 오월이 뿌린 피는 사람 사는 세상에 밑거름이..."
▲ 5.18민주화운동 중인 1980년 5월 24일 광주 송암동 일대에서 숨진 박연옥의 묘. |
ⓒ 소중한 |
박연옥, 1930년 출생이니까 오월 당시 50세의 중년 여성이었다. 1980년 5월 24일, 공수부대원들은 '폭도들 때문에 동료들이 죽었다'며 주택과 야산을 수색하며 주민들에게 분풀이를 했다. 그 무렵 한 여인이 도로변을 지나가고 있었다. 송암동에서 농사를 지으며 막내아들을 공부시키는 재미로 사는 어머니 박연옥씨였다.
박연옥은 전두환에게 묻는다. "광주사태에서 국군은 최대한 총기 사용을 억제했나요?" 망월동에 있는 박연옥의 묘비엔 이렇게 적혀 있다. "살아생전 고생만 하시다 이제는 편히 사실 수 있는 시기에 80년 오월에 한 민족인 우리 군인에게 처참하게 생을 마치신 어머님."
▲ 1980년 5월 24일 송암동 일대에서 숨진 고 방광범의 묘. |
ⓒ 소중한 |
방광범, 오월 당시 13세, 전남중 1학년생이었다. 그날 광범이는 저수지에서 동네 아이들과 함께 목욕하고 있었다. 무슨 적의를 품었는지 몰라도 공수부대원들은 멱을 감는 아이들을 향해 집중사격을 가했다.
방광범은 전두환에게 묻는다. "대한민국 국군은 국민의 군대인가요?" 망월동에 있는 방광범의 묘비엔 이렇게 적혀 있다. "꽃잎처럼 지는 것을 슬퍼하다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 있지 않다. 좋은 세상, 통일된 조국에서 만나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11공수여단의 총격으로 숨진 고 전재수(당시 11세)군의 묘. |
ⓒ 소중한 |
전재수는 묻는다. "국군은 자위(自衛) 목적이 아닌 한 총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훈련받는가요?" 망월동에 있는 전재수의 묘비엔 이렇게 적혀 있다. "고이 잠들어라."
이외에도 송암동에서 사망한 희생자가 더 있다. 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 중이던 송정교, 그는 광주에 살고 있는 딸을 피신시키기 위해 이날 딸과 함께 송암동 도로를 지나가던 중, 총격을 당했다. 김평용, 사레시오 고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이날 자전거를 타고 영암을 향해 달리던 중 송암동에서 공수부대의 대검에 찔려 죽었다. 망월동에 있는 김평용의 묘비엔 이렇게 적혀 있다. "우리가 헤어진 지 어느덧 17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억울한 원망 섞인 눈길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고 서성거리는구나!"
▲ 영화 <송암동>을 제작한 이조훈 감독(사진 맨 오른쪽)과 책 <시민군>을 편집한 필자(황광우, 사진 가운데). |
ⓒ 황광우 |
영화 <송암동>은 책 <시민군>과 달랐다. 책 <시민군>은 송암동의 희생자가 총 8명이라고 기록했다.
그런데 영화 <송암동>은 송암동의 희생자가 총 29명인 것으로 제작했다. 이날 도청에서 활동하던 시민군 6인은 사망자의 관을 운반해주기 위해 송암동 인근으로 트럭을 몰고 있었다.
갑자기 군인들의 총격이 시작됐고, 시민군 6인은 송암동 마을 주택가로 들어가 피신했으나, 마침내 공수부대에게 손을 들고 항복했다. 이때 맨 앞에 나선 시민군을 공수대원이 총격을 가했다. 그 시민군의 본명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김군'으로 부르게 됐다. 송암동 최초의 희생자다.
영화는 책 <시민군>과 달리, 주민들을 잡아다 동네 후미진 곳으로 끌고 가 도열을 시켜놓고 총살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공수부대 지휘관이 부하에게 '찔러 총'을 하고, 죽이라고 명령하는데 부하 대원이 명령대로 행동하지 않자, 본인이 직접 나서서 한 명씩 차례로 사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 발, 두 발... 총소리는 스무 번 울렸다.
시네마 토크에서 이조훈 감독은 이후 수차례 헬리콥터가 시신을 싣고 어디론가 갔다고 말했다. 나는 문제를 제기했다.
"오월 광주에서 신고된 행방불명자가 400여 명이고, 그 중 80여 명이 행방불명자로 인정됐다. 그렇다면 나머지 확인되지 않은 320여 명의 행방불명자는 어떻게 된 것이냐? 세상에 어느 부모가 죽지도 않은 자식이 항쟁 기간에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며 허위 신고하겠는가?
확인되지 않는 행방불명자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규명해야 할 중대한 광주의 진실이다. 전두환은 '광주사태 사망자 수는 165명이다. 10만 명의 인파가 몰려 있는 장소에서 무차별 총기 공격을 했다면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광주사태에서 국군은 최대한 총기 사용을 억제했다'(<전두환 회고록>, 380쪽)고 했다.
전두환은 보안사의 수사를 지휘한 경력이 있는 수사관이었다. 모든 범죄 행위를 실행하기 전에 치밀하게 범행의 알리바이를 만든 자다. 시체를 거리에 방치하지 말 것과 시체를 수거해 매장할 것과 이후 머리카락 한 올도 남기지 않고 시신을 처리할 것을 명령했다고 봐야 한다. 미확인 행방불명자는 전두환이 벌인 완전범죄극의 희생자들이자, 그 완전범죄의 증인들이다. 오월 광주의 진실규명의 핵심고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 지난 6월 30일 전남일보 245빌딩 9층 강당에서 영화 <송암동> 시네토크, 책 <시민군> 북토크가 열렸다. |
ⓒ 황광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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