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외국인이라며 시간 끌고... 강제퇴거 대상자였다고 협박"
[김성욱 기자]
▲ 아리셀 참사 유가족들 "사측, 시간 끌어" 아리셀 참사로 가족을 잃은 한 유가족이 17일 경기도 화성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며 울먹이고 있다. ⓒ 김성욱 |
"저는 여기 올 때마다 저희 동생 영정사진을 만지면서, '이 아까운 것아, 그 찬 곳에서 고생이 많지, 그래도 엄마랑 지금 억지로 버티고 있으니까, 참어, 춥겠지만 끝까지 버텨줘'라고 인사합니다.
여기 있는 유가족들은 하나뿐인 자녀를 잃었습니다. 그 아리셀 대표라는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입장 바꿔놓고, 당신 자식이 이렇게 됐다면, 당신들은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거예요. 제발 올바른 사람이라면, 유가족들 앞에 와서 진실된 참회를 바랍니다.
대한민국. 우리는 대한민국에 와서 일하면서 세금이란 세금은 따박따박 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법을 올바로 지키면서 일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너희는 중국사람이니까 중국에 가서 보상받으라'는 소리를 합니까? 여기 있는 분들도 생각해보면 그게 맞는 말입니까?"
검은 티셔츠에 검은 모자를 눌러쓴 한 중국인 여성이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한마디 한마디 꾹꾹 말을 이어가자, 뒤에 앉은 이들은 삐뚤삐뚤 손글씨로 적은 종이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종이에는 '억울하게 죽은 내 딸을 돌려줘!', '죽음의 이유를 밝혀라!', '진실을 알고 싶다, 데려다 쓸 땐 언제고 죽이냐', '아리셀은 책임져라', '박순관 아리셀 대표는 교섭에 임하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지난달 24일 경기도 화성시 아리셀 리튬배터리 공장 화재 참사로 가족을 잃은 이들이었다. 참사후 23일이 지났지만, 사측이 교섭에 응하지 않으면서 사망자 23명 중 15명은 아직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상태다. 이번 참사로 사망한 노동자 중 18명이 외국인이었다.
▲ 아리셀 참사 유가족들이 17일 경기도 화성시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사측이 외국인 유가족들의 체류 기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이용해 시간을 끌고 있다고 토로했다. |
ⓒ 김성욱 |
아리셀 참사 유가족들은 17일 경기도 화성시 모두누림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이 정식 교섭에 나오지 않고 시간을 끌고 있다고 토로했다. 부고를 듣고 중국 등에서 건너온 유가족들의 체류 기간이 길지 않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가족들에 따르면, 지난 5일 형식적인 첫 교섭이 이뤄진 뒤 사측은 열흘 넘게 가족들의 교섭 요구에 묵묵부답하고 있다.
김태윤 유가족협의회 공동대표는 "아리셀 측은 참사를 은폐하고 축소시키기 위해 가족들의 공식 교섭에는 나오지 않고 개별적으로 연락해 가족들에게 합의를 종용하며 갈라 치고 있다"라며 "2주가 되도록 교섭을 위한 실무 창구조차 정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아리셀 측이 유가족들에게 개별적으로 접촉해 전달한 내용 자체도 문제가 되고 있다. 가족들에 따르면, 아리셀 측은 재외동포 비자(F-4)를 가졌던 중국동포(조선족) 노동자들이 해당 비자로 자신들의 공장에서 일한 건 법 위반이며, 강제퇴거 대상이 된다고 압박했다고 한다. 출입국관리법에 의하면 F-4 비자로는 단순노무행위를 할 수 없는데, 사망한 노동자들이 리튬배터리 포장 업무를 했고 이것이 단순노무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대책위원회 법률지원단장을 맡은 신하나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는 "비자 종류에 맞는 채용과 업무를 배정해야 하는 건 회사의 의무인데, 아리셀 스스로 불법 고용을 자백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라며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며 유족들을 협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변호사는 "'금반언의 원칙(자신의 선행행위와 모순되는 후행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원칙)'에도 위반된다"라며 "이와 별개로, 실제 피해자들이 했던 노동이 단순노무행위에 국한되는지에 대해서도 아직 입증이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법무부 역시 <오마이뉴스> 질의에 "(아리셀 참사) 사망자들이 해당 공장에서 제한되는 단순노무 등의 활동을 하였는지에 대해선 조사를 통해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번 참사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 가운데 12명이 F-4비자 소지자였다.
유가족들 "외국인도 같은 인간"... '이달말까지만 체류지원' 예고한 화성시
"저는 이번엔 일이 잘 될 줄 알았습니다. 대통령께서 화환을 보냈고, 국민의힘이 화환을 보냈고, 국회의장님 등 모두 화환을 보내와서요. 아, 이번에는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겠구나. 그리고 산재로 일하다 죽는 젊은 사람들이 앞으로는 없겠구나. 근데 현재까지 아무런 진척이 없습니다. 정말 미치겠습니다. 제발, 이 미친 사람이 제정신으로 살아가도록 여러분이 도와주십시오." (아들을 잃은 아버지)
유가족들은 이같은 사측의 대응이 이주민에 대한 차별이라고 했다. 화성시와 경기도, 중앙정부 역시 유가족들에게 참사와 관련된 조사 정보를 제때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딸을 잃은 한 중국인 유가족은 "외국인, 내국인 따지지 말고 다 같은 인간"이라며 "차별 없이, 공평하고 평등하게 봐달라"고 했다. 또 다른 유가족은 "화성시장에게 여러 차례 면담을 요청했지만 얼굴 한 번 볼 수 없었다"라며 "딱 한번 본 게 한 분의 장례식장에서였는데, 조문한답시고 온 화성시장이 아리셀 대표와 같이 들어오고 있더라"고 했다.
▲ 아리셀 참사 유가족들 "외국인도 다 같은 인간" 아리셀 참사 유가족들이 17일 경기도 화성시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사측이 교섭에 나올 것을 촉구했다. ⓒ 김성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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