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 한동훈·MT 간 나경원…"인기 많았죠?" 묻자 "연애 하느라"

채혜선 2024. 7. 17.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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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윤상현, 원희룡, 한동훈 후보(시계방향으로). 사진 CBS 유튜브 캡처

국민의힘 당권 주자들이 스무살 안팎이던 젊은 시절 사진을 17일 공개했다. CBS 주관으로 열린 4차 방송 토론회에서다.

이날 사회자인 김현정 CBS 앵커는 “2030 청년층 마음을 얻는 게 (당 대표에게) 큰 숙제”라며 “청년 마음을 이해하자는 취지로 후보자 네분에게 스무살 사진을 달라고 (사전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나경원 당 대표 후보와 대학 후배들. 사진 CBS 유튜브 캡처

처음 공개된 건 나경원 후보의 서울대 법대 4학년 시절 사진이다. 나 후보는 “국제법학회 회원이던 당시 단체로 엠티(MT)를 갔다”고 말했다. 사진엔 나 후보 포함 13명 정도 되는 인원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선 “국회의원 하셨던 분도 있고 비례대표 공천관리위원장을 하신 분도 있다”라며 “(본인) 오른쪽 여자 후배는 당시 1학년이던 전주혜 전 국민의힘 의원”이라고 설명했다.

“청년 나경원의 고민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나 후보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라며 “법대를 다니고 있었지만 사법시험을봐야 하나 안 봐야 하냐, 내가 대한민국을 위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느냐 (고민했다).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받은 것을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인기가 많았을 것 같다”는 청취자 의견엔 “남편이랑 연애를 너무 일찍 해서…”라며 웃어넘겼다.

윤상현 대표 후보와 군 복무 동료들. 사진 CBS 유튜브 캡처

윤상현 후보는 경기도 연천 28사단에서 군 복무할 당시인 24∼25세쯤의 사진을 공개했다. 그는 “사진을 골라온 특별한 이유는 없다”라며 “사무실에서 20대 사진을 찾으라고 하니까 저게 나와서 가져왔다”고 말했다. “군인 윤상현, 청년 윤상현의 고민은 무엇이었냐”고 묻자, 윤 후보는 “석사를 마친 다음이었는데 앞으로 뭘 해야 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답했다. 이어 “진로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던 시기”라고 덧붙였다.

한동훈 대표 후보. 사진 CBS 유튜브 캡처

한동훈 후보는 대학교 1학년생인 만 19세이던 1992년 여름에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바다가 보이는 배경에서 청바지와 흰색 티셔츠를 입은 채 머리를 길게 길러 로커를 연상시키는 차림이다. 한 후보는 “저 당시에 (록밴드) 도어즈를 좋아했는데 저런 스타일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무렵이 우리나라가 국외 여행이 처음 자유화됐을 무렵이다. 미필자가 허가받으면 배낭여행을 갈 수 있었던 거의 초창기”라며 “저희 세대가 그걸 처음으로 했던 세대 같은데 그래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이 있었고, 그 전 세대와는 조금 다른 포용력이라든가 유연함이 생길 수 있었던 세대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당시 고민에 대해선 “특별히 되고 싶은 건 없었고 뭔가 세상에 도움 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라며 “지금도 비슷하다. 저 때나 지금이나 철 안 든 건 비슷한 것 같다”고 웃었다.

원희룡 대표 후보. 사진 CBS 유튜브 캡처

원희룡 후보는 고등학교 시절 사진을 공개했다. 방에서 파란색 선풍기를 뒤에 두고 러닝셔츠 차림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원 후보와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인 나 후보는 원 후보의 앳된 얼굴이 담긴 사진을 보고 “여태까지 본 것(후보들 사진) 중에 제일 예쁘다”고 말했고, 한 후보는 “중학생 때쯤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물었다.

그는 “고등학교 자취하던 때”라고 설명했다. 이어 “저희 집은 전깃불도 안 들어오는 시골 농사 집안이기 때문에 고등학교 가면서 제주시로, 그리고 대학 오면서 서울로 와서 결혼할 때까지 자취 생활을 쭉 했었다”라며 “그래서 사진 찍어줄 사람이 잘 없으니까, 유일한 사진이어서 갖고 왔다”고 말했다.

그 시절 꿈을 묻는 말에는 “공무원이나 학자 한 명 하나 없는 평범한 서민 집안에서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응원받아 대학에 왔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먼저 기반을 잡아야 되느냐, 아니면 당시 군부 독재의 민주화 그리고 저희 집보다 더 어려워 보이는 많은 서민과 빈민들, 공적인 정의를 위해 살아야 하느냐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며 “결국 민주화 운동, 노동 운동으로 가게 됐다. 그게 검사와 정치 인생까지 이어진 마음의 등뼈가 됐다”고 답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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