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명품백 선물' 사진도 공개…美 "수미 테리는 韓요원" 기소

이승호, 장윤서 2024. 7. 1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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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포럼에서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출신의 한반도 안보 전문가 수미 테리(52)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미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한국 정부를 대리한 혐의로 15일(현지시간) 연방법원 재판에 넘겨졌다. 테리를 기소한 연방 검찰 측은 그가 약 10년간 고가의 가방과 의류, 고액의 현금 등을 받은 대가로 한국 정부에 미국의 비공개 정보 등을 넘겨온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31쪽 공소장에 명품백·고급식사 사진도


지난 2021년 4월 16일 미국 워싱턴DC의 한 매장에서 국가정보원 요원이 수미 테리 연구원에게 3450달러 가격의 루이뷔통 핸드백을 사주기 위해 결제하고 있다. 사진 미국 연방검찰 공소장 캡처
이날 중앙일보가 입수한 뉴욕 맨해튼 연방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테리는 지난 2013년부터 약 10년간 주미 한국대사관 소속 국가정보원 파견관들과 만나 비공개 정보 등을 제공했다. 검찰은 이런 활동의 대가로 테리가 루이비통 핸드백, 3000달러(약 410만원) 상당의 돌체앤가바나 코트, 3만7000 달러(약 5100만원) 상당의 금전 등을 수수했다고 밝혔다. 총 31쪽의 공소장에는 국정원 파견관들이 테리와 접촉해 이 같은 물품을 사주는 장면, 테리와 요원들이 뉴욕 맨해튼의 한 고급식당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모습 등이 담긴 사진 총 4장도 담겼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테리가 한국 정부를 위해 활동한 행위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사실상 대변하는 언론 기고나 발표를 하거나 접근이 쉽지 않은 인사들과의 만남을 주선한 것 등을 지적했다. 미 정부 관료와의 비공개 모임 등에서 획득한 정보를 테리가 한국 정부에 넘겼다고도 했다.


美당국, 2013년 접촉 초기부터 테리 추적


지난 2020년 8월 수미 테리 연구원(왼쪽)이 미국 뉴욕 맨해튼의 고급 그리스 레스토랑에서 국가정보원 관계자 2명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 미국 연방검찰 공소장 캡처
미국은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에 따라 외국 정부나 정당, 회사 등의 정책 및 이익을 대변하거나 홍보하는 사람은 법무부에 신고해 활동을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검찰은 테리가 고의로 신고를 누락했다고 보고 있다. 테리는 2016~2022년 사이 최소 세 차례의 의회 증언을 위해 선서하는 과정에서 FARA에 따른 신고 대상’인지 묻는 말에 아니라고 대답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해당 기간 동안 피고인은 FARA에 등록하지 않은 채 사실상 한국의 요원(an agent of the ROK)으로 활동했다”고 규정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테리와 국정원 측의 첫 만남은 그가 CIA를 떠난 지 5년 뒤인 2013년 시작됐다. 주뉴욕 유엔 한국대표부 외교관(공사) 신분의 국정원 파견관과 만난 테리는 2016년까지 지속해서 교류해왔다. 미 수사 당국은 접촉 초기부터 테리가 국정원 파견관들과 만난 동선 및 통화·e메일 및 실제 대화 내용 등을 파악해왔다.

대표적인 게 2019년 11월 13일이다. 국정원 파견관은 이날 메릴랜드주 셰비 체이스에서 2845달러짜리 돌체앤가바나 코트를 테리에게 사줬다. 파견관의 신용카드로 계산했고 외교관 지위를 활용해 면세 혜택도 받았지만, 구매 실적은 테리의 계정에 등록됐다. 테리는 이틀 뒤 돌체앤가바나 코트를 반납하고 4100달러 짜리 크리스챤 디올 코트를 구매했다. 차액은 본인이 부담했다. 돌체앤가바나 코트를 산 날엔 두 사람은 워싱턴 DC의 다른 가게에서도 2950달러짜리 보테가베네타 가방을 샀다.

2020년 8월에도 테리와 만나온 국정원 파견관의 후임자가 테리가 미 정부 인사들도 참여한 화상 워크숍을 주선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3450달러 짜리 핸드백을 사줬다. 이 파견관은 2021년 4월에도 워싱턴 DC의 루이비통 매장에서 3450달러짜리 핸드백을 테리에게 사줬다.


테리 “근거없이 업적 왜곡, 美정부 중대 실수”


지난 2021년 4월 미국 워싱턴DC 주미대사관 외교관 신분인 국가정보원 요원이 루이뷔통 핸드백을 구매한 뒤 수미 테리 연구원(왼쪽)과 상점에서 나와 걸어가고 있다. 사진 미국 연방검찰 공소장 캡처
테리 측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테리의 변호사인 리 울로스키는 “(검찰의) 주장 근거가 없으며, 수년간 헌신해온 학자이자 분석가의 업적을 왜곡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또 “검찰이 테리가 한국 정부를 대리해 활동했다고 주장하는 시절 테리는 되레 한국 정부를 강하게 비판해왔다”며 “사실이 밝혀지면 미국 정부가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019년 11월 13일 미국 워싱턴DC의 상점에서 국가정보원 요원이 수미 테리 연구원에게 2950달러의 보테가 베네타 핸드백을 결제해준 뒤 나오는 모습. 사진 미국 연방검찰 공소장 캡처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난 테리는 12살에 미국으로 이주해 하와이와 버지니아에서 자랐다. 뉴욕대에서 정치학으로 학사 학위를, 보스턴 터프츠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1년부터 CIA에서 동아시아 분석가로 근무했다. 2008~2009년에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한국·일본 및 오세아니아 과장을 지냈으며, 동아시아 국가정보 담당 부차관보까지 역임했다. 이후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연구원, 윌슨센터 아시아프로그램국장 등 다양한 싱크탱크에서 활동했다.

이승호·장윤서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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