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지마" "잘하려하지마" 세계적 성악가들 의외의 조언

김호정 2024. 7. 1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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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홍혜경, 베이스 연광철의 공개레슨 현장
소프라노 홍혜경(오른쪽)이 9일 서울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소프라노 김혜영을 지도하고 있다. 사진 예술의전당

“좋은 고기를 사 왔다고 생각해봐.”
16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베이스 연광철(56)이 20대 성악가의 노래를 멈추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대에서는 베이스 노승우(29)가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 중 ‘찢어질 것처럼 아픈 영혼’을 부르고 있었다. 연광철은 ‘고기 요리’ 이야기를 문득 꺼냈다.

“좋은 안심을 사오면 소금ㆍ후추 뿌리고 정성스럽게 요리를 하겠지, 그럼 아름다워지잖아.” 연광철은 “지금 노래는 너의 본래 소리가 좋다는 것밖에는 안 들린다”고 지적했다.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을수록 그것만 보여주려고 하는 함정에 빠진다는 이야기였다.

연광철의 성악 워크숍의 한 장면이다. 예술의전당은 세계적 경력을 쌓은 성악가를 초청해 공연을 열고, 이들이 한국의 젊은 성악가들을 지도하는 공개 레슨도 함께 주최하고 있다. 9일 소프라노 홍혜경(65)에 이어 이날 연광철이 성악 학도 각 4명을 지도했다. 다음 달 9일에는 베이스 바리톤인 사무엘 윤(52)이 공개 레슨을 한다.

젊은 성악가들에게 전설적인 선배들이다. 홍혜경은 1984년부터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400여회 공연한 소프라노다. 런던ㆍ파리ㆍ빈ㆍ뮌헨 등의 오페라 무대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연광철은 1993년 파리에서 도밍고 국제 콩쿠르를 우승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1994년부터 10년 동안 베를린 국립 오페라의 솔리스트로 노래하며 명성을 쌓았다. 특히 독일의 자존심 센 축제인 바이로이트에서 150번 넘게 노래한 성악가다.


"노래하지 마세요"


소프라노 홍혜경(오른쪽)이 9일 서울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소프라노 이해연을 지도하고 있다. 사진 예술의전당
두 번의 공개 레슨에서 홍혜경과 연광철은 후배 성악가들에게 예상 밖의 것을 강조했다. 홍혜경은 “노래하려 하지 마라”, 연광철은 “소리를 잘 내려고 하지 마라”는 말을 반복했다.

9일 홍혜경은 소프라노 김혜영(36)이 ‘돈 파스콸레’ 중 ‘기사의 뜨거운 눈길’을 부를 때 “노래한다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이 노래를 부르는 극 중의 노리나는 독서를 하며 책 속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비웃는다. “노래하지 말고 책을 읽는다 생각하세요”라며 홍혜경은 “소리를 붙잡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신 “하품하기 시작할 때처럼 목 뒤를 열어줘야 소리가 자연스럽게 풀려난다”며 여러 번 시범을 보였다.

소프라노 이해연(32)에게도 비슷한 주문을 했다. 피아노 앞에 서서 노래한 이해연에게 홍혜경은 “피아노 뒤로 와서 악기에 기대어 노래를 시작해보라”고 했다. 몸의 힘을 빼게 하기 위해서다. “높은 소리, 큰 소리가 중요한 게 아니야. 감정을 쌓아가는 게 중요하지.” “특히 한국 성악가들이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목을 꽉 붙잡고 노래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 홍혜경은 다시 한번 강조했다. “노래하는 것 같지 않게 하는 것, 그게 가장 아름다운 소리야.”


"소리를 잘 내려고 하지 마세요"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영상스튜디오 실감에서 열린 베이스 연광철의 공개 레슨. 사진 예술의전당
잘하려고 하지 말고, 메시지를 전달하라는 주문은 연광철의 워크숍에서도 이어졌다. “그렇게 무게를 자꾸 주면 안 돼. 악보에는 4분의 2박자인데 자꾸 8분의 4박자로 노래하고 있잖아.” 연광철은 베이스 강정훈(25)에게 말했다. “소리를 잘 내려고 하다 보니까 그런 거예요.” 강정훈은 모차르트 ‘마술피리’ 중 ‘이 성스러운 전당에서’를 불렀다. 연광철은 “그렇게 심각하고 무겁게 할 노래가 아니다”라며 “훨씬 더 따뜻한 소리와 마음으로 노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극 중 인물이 되어 노래하는 것도 중요했다. 연광철은 ‘시몬 보카네그라’를 노래한 노승우에게 “딸을 잃게 된 분노는 있지만,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은 안 보인다”며 “딸을 잃었는데 그렇게 웅장한 소리로 노래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좋은 소리만 보여주는 대신 아름다운 ‘요리’가 필요하다는 충고였다.

홍혜경 또한 “노래한다 생각하지 말고 주인공의 마음만 떠올리라”고 했다. 샤르팡티에의 오페라 ‘루이즈’의 주인공 루이즈가 첫날 밤을 보내고 부르는 노래였다. “이른 아침에 잠옷 입고, 아직 에너지가 전혀 없는 상태잖아. 너무 황홀한 마음이지만 큰소리로 노래할 필요는 없지.” 홍혜경은 연기가 필요한 대목마다 직접 나서 극 중 인물을 감쪽같이 표현했다. 이들의 지도를 받은 성악가들의 노래는 그 자리에서 눈에 띄게 변화했다. 홍혜경이 청중에게 몸을 돌리고 물었다. “훨씬 아름답죠?”

예술의전당이 마련한 성악 워크숍은 ‘보컬 마스터 시리즈’ 중의 일부다. 홍혜경은 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한 후 9일 공개 레슨을 했다. 16일 공개 레슨을 한 연광철은 26일 무대에서 노래한다. 사무엘 윤도 공개 레슨과 공연(11월 16일)을 병행한다. 예술의전당은 또 이탈리아의 게오르그 솔티 아카데미와 함께 한국의 재능 있는 젊은 성악가도 발굴한다. 닷새 동안 오페라 지휘자 카를로 리치, 소프라노 바바라 프리톨리, 박혜상 등에게 지도를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예술의전당 유연경 공연기획부장은 “성악가의 독창회와 공개 레슨을 함께 진행하는 사업은 뉴욕의 카네기홀도 선보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세계적 아티스트의 음악적 유산이 젊은 예술가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사업”이라고 소개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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