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도 액션도 아니다, 이경규가 수입해온 다큐
[김형욱 기자]
▲ 다큐멘터리 영화 <이소룡-들> 포스터. |
ⓒ 에이디지컴퍼니 |
이소룡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그 영향력은 사그라들 줄 모른다. 고작 4편의 영화만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남기고 세상을 떠났는데, 어떻게 그토록 엄청난 명성을 쌓을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그의 생전에도 그는 지금과 같은 아이콘으로서의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을까?
이소룡, 즉 브루스 리(Bruce Lee)는 일찍이 어린 시절부터 영화계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던 1971년 <당산대형>으로 크게 성공한 후 1972년 <정무문>, <맹룡과강>을 연이어 내놓는다. 그리고 1973년 대망의 <용쟁호투>로 글로벌 스타에 등극한다. 4편 모두 흥행 기록을 경신했다. 하지만 그는 <용쟁호투> 개봉을 보지 못하고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홍콩은 물론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한창 글로벌 스타로 발돋움하던 와중이라 세간의 관심이 더 했다. 죽음은 허망했고 사람들의 마음은 허했다, 더 이상 이소룡의 영화를 볼 수 없으니까. 영화 제작사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돈줄이 사라졌으니까. 그러자 홍콩의 영화 제작사들은 앞다퉈 '포스트 이소룡'을 찾았다.
유명한 '이소룡 키드' 이경규가 들여와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 영화 <이소룡-들>이 그때 그 시절을 회고한다. 이소룡의 황망한 죽음 이후 그 자리를 대체하려는 움직임, '포스트 이소룡'을 찾으려 했으나 당연히 이소룡을 대체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포스트 이소룡'이 아니라 '유사 이소룡', '짝퉁 이소룡', '이소룡 아류'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 다큐멘터리 영화 <이소룡-들>의 한 장면. |
ⓒ 에이디지컴퍼니 |
'익스플로이테이션 필름'이라는 영화 장르가 있다. 1960~1970년대 유행했던 B급 영화의 성공작들을 베끼다시피 한 아류작들을 총칭한다. 워낙 저예산으로 빠르게 제작되면서 별다른 이야기도 없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것들이 쓸데없이 난무하니 대부분 '쓰레기' 취급을 받지만 그중엔 컬트적 인기를 끈 작품들도 있다. 와중에 이소룡 사후 '브루스플로이테이션' 사례가 있다.
<이소룡-들>이 들여다보는 핵심 소재가 바로 브루스플로이테이션으로 100여 편에 이르는 작품들과 수많은 유사 이소룡들을 파헤친다.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유명한 유사 이소룡들을 직접 인터뷰했다. 아울러 수많은 영화 전문가들이 당시를 재조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소룡은 어떤 의미였는가, 죽음 이전에 이미 신화적인 존재였는가 아니면 죽음으로 비로소 신화적인 존재가 됐는가. 영화는 유사 이소룡들이 이소룡을 진정으로 전설의 자리에 올려놓았다고 본다.
이소룡 사후 이소룡과 이소룡의 영화를 두고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파헤치는 영화들이 속출한다. 1970년대 내내 그런 영화들이 우후죽순 나왔고 크게 히트를 쳤다. 유사 이소룡은 홍콩(브루스 량)은 물론 대만(브루스 라이), 한국(거룡), 버마(브루스 레), 미국(흑룡)까지 뻗어나갔다. 이밖에도 무수히 많은 '브루스' 또는 '룡'들이 있었다. 그 유명한 성룡까지 나아갔다.
브루스 라이, 브루스 레, 브루스 량, 거룡까지 당시 동양인들의 얼굴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서양인들에겐 이소룡과 다를 바가 없었다. 브루스플로이테이션 영화들이 그야말로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다. 영화 제작사 입장에선 엄연히 거대한 산업의 일환이었던 것. 하지만 유사 이소룡들의 입장은 달랐다. 그들에게 이소룡은 단순한 1차원적인 대상이 아니었다.
▲ 다큐멘터리 영화 <이소룡-들>의 한 장면. |
ⓒ 에이디지컴퍼니 |
이 작품의 유니크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브루스플로이테이션을 영화 역사의 한 지점이자 영화 산업으로서만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이소룡을 진정 존경하고 이소룡에 미쳐 있던 이들의 활동에서 진심을 들여다보려 한 것이다. 그들의 진심이 이소룡의 신화를 완성시켰고 나아가 브루스플로이테이션을 영화 산업으로 발전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이소룡과 브루스플로이테이션 모두 영화 역사에 길이 남게 했다. 그들이야말로 정녕 큰일을 해낸 것.
한편 유사 이소룡들은 철저하게 '착취'당했는데 브루스플로이테이션이라는 단어에 착취를 뜻하는 '플로이테이션'이 있다는 게 소름 끼칠 정도다. 당시 그들 중 태반은 영화의 영 자도 모른 채 그저 무술 좀 하고 이소룡과 닮았으며 이소룡을 존경하는 청년일 뿐이었다. 무슨 영화인지도 모른 채 촬영에 임했다. 한편 훨씬 더 크게 성공할 수 있을 잠재력이 있었으나 '유사 이소룡'에 머물렀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기에 굉장히 안타까운 지점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은 하나같이 '유사 이소룡'에 만족한다, 아니 '유사 이소룡'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 덕분에 성공한 인생이었다고 한다. 진정으로 이소룡을 존경하는 진심이 묻어난다. 그동안에는 그들을 그저 짝퉁이라고만 보고 말았는데, 솔직히 아무런 생각도 없었는데, 이젠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한 명 한 명의 '브루스'들이, '룡'들이 따로따로 보인다.
브루스플로이테이션은 오로지 돈을 벌고자 고인을 처참하게 파헤친 행위에서 시작됐다. 그 일환으로 고인을 존경하고 고인을 따라 하려는 이들을 끌어모았다.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시너지가 터져 나왔고 세상은 열광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이 작품 <이소룡-들>이 그때 그 시절을 되짚으며 당시의 주인공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사후 50년이 지났음에도 이소룡은 살아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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