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 안 연인의 드잡이질, 과학이 보내는 경고
[김성호 기자]
단순하지만 명징하다. 18분짜리 단편이 오로지 여와 남, 단 두 인물의 좌충우돌 소동으로 꾸려진다. 코스티아가 애인 다샤의 실험실에 방문했을 때, 실험이 효과를 발하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장치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급격한 반응을 보이고, 마침내 복잡한 기계장치가 폭발하고 만다. 그로부터 다샤의 실험실 안엔 다른 어느 차원으로 가는 포털이 열린다. 그 안에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이글이글 타오른다.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단편모음인 엑스라지11 섹션에 포함된 <코스티아, 지금은 안돼!>는 요상한 작품이다. 전 세계적으로 일반적이지 않은 이상한 영화만 모아오는 것이 이 영화제의 정체성이라고들 하니, 이 영화가 공식 초청된 이유를 알 만도 하다.
▲ '코스티아, 지금은 안돼!' 스틸컷 |
ⓒ BIFAN |
과학을 대하는 인류의 두 가지 자세
포털 속 이글대던 힘이 코스티아에게 넘어와 그의 손 한쪽을 점령하며 영화는 급속 전진한다. 점령된 손이 그 자신을 해치려 들고 이를 막아내기 위해 둘이 용을 쓰는 과정이 그려진다. 그러면서도 하나는 힘을 어떻게든 억누르려 하고, 다른 하나는 힘의 비밀에 다가서려 하니 그건 그대로 과학을 대하는 인류의 두 가지 태도를 엿보게 한다.
연인인 다샤와 코스티아는 서로 더없이 가까운 사이지만, 미지의 힘을 두고서 대하는 태도는 영 딴판이다. 그 입장차는 서로에 대한 마음까지 갈라서게 할 만큼 커다란 것이어서 다샤와 코스티아는 옛 연인이 되고 서로를 붙들고 드잡이질하는 상황에 이르고 만다. 말 그대로 온몸을 부딪치며 서로가 서로를 막아내는 과정이 마치 액션영화를 보는 듯 긴박하게 그려진다. 열려 있는 포털은 닫힐 줄 모르고 실험실은 물론 도시와 나라, 어쩌면 온 세상을 구할 수도, 파탄에 이르게 할 수도 있을 힘이 승자를 기다린다.
▲ '코스티아, 지금은 안돼!' 스틸컷 |
ⓒ BIFAN |
과학이 인간을 구원하리란 믿음은 유효할까
LED의 발명이 LED 집어등을 등장시켜 해양생태계를 파탄의 지경으로 몰아가듯, 석유시추 기술이 어마어마한 기름유출과 환경파괴를 일으키듯, 의학의 발전이 인간 아닌 생명의 비윤리적 소모를 당연시하듯, 생물학과 가축학의 발전이 공장식 축산업의 비극을 열었듯이 과학은 인간을 더 윤리적으로 만들지도, 항구적 발전의 길로 이끌지도 못하였다.
공장식 축산업이 원인이 된 인수공통 전염병이 수많은 생명을 해하고, 멈출 수 없게 된 산업과 그를 지탱하는 기술이 탄소배출을 갈수록 더하게 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는 지구의 불과 수십 년 뒤를 기약할 수 없도록 하는데, 인간은 여전히 그 심각한 사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 '코스티아, 지금은 안돼!' 스틸컷 |
ⓒ BIFAN |
옛 연인의 사투 속 인간의 오늘을 읽다
이 같은 논의의 근간은 결국 감당할 수 없는 힘에 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가질 때, 그것이 어떤 참극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인간은 수차례에 걸쳐 깨달았다. 오펜하이머의 과학자들이 개발한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터진 것이 그러했고, 그보다는 못하다 해도 수많은 살상무기가 전장과 전장으로 오인된 민간인 거주지역에서 사람들의 삶을 해치고 있는 것이 그러하다.
일각에선 AI 기술 또한 인류를 위협하리라고 경고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인간이 그 쓰임이며 혹여 있을 수 있는 해악을 온전히 파악하고 통제할 수 없는 가운데, AI 기술이 진보를 거듭해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막대한 자본과 결합한 현대 과학은 AI 기술의 발전을 멈출 수 없게 하였고, 그로부터 <코스티아, 지금은 안돼!> 속 다샤가 그러하듯 무작정 힘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형국이다.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 |
ⓒ BIFAN |
기발한 상상과 유쾌한 표현의 어우러짐
인간의 합리성은 기술을 진보시켜야 한다는 지적 욕구와 그를 자제하고 묶어내야 한다는 윤리와 안전에의 추구로 갈라선 지 오래다. 둘의 대립은 처음엔 지적인 대화처럼 보이지만 이내 힘과 힘의 맞닿음으로, 순발력과 근력, 정신력의 대립으로 이어진다. 그 상황에서 누군가는 실제적 피해를 입지만, 상대에겐 그것이 얼마 중요하지 않다.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공식 초청작답게 기발한 상상과 유쾌한 표현력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장편보다 제한적일 밖에 없는 분량과 자원에도 불구하고 두 배우의 열연과 감독의 패기 넘치는 연출로 제약을 정면으로 극복하려 든 시도가 인상적이다. 그저 한 바탕 뛰어노는 수준을 넘어 줄거리 아래 깔린 상징을 효과적으로 드러낸 기획도 평가할 만하다.
2010년대 후반부터 젊은 영화인들의 주목할 만한 작품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 러시아다. 어쩌면 근 몇 년 안에 라이토프가 만든 꽤 멋진 영화를 볼 수도 있겠다고, 나는 이 짧은 영화로부터 기대를 품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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