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엔 추상 조각·벽면엔 추상화… 미술작품에 녹아있는 지구의 위기

손영옥 2024. 7. 17.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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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는 매끈한 대리석으로 만든 것 같은 기하학적 추상 조각이 서 있고 벽면에는 단색화를 연상시키는 분홍색 모노크롬 추상화가 걸려있다.

이처럼 슈퍼플렉스는 전 지구적 기후 위기의 결과 지표면이 물에 잠기는 미래를 상상하고 해양생물의 대안적 터전으로 기능할 수 있는 조각과 회화를 선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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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작가그룹 ‘슈퍼플렉스’ 28일까지 국제갤러리서 전시회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하는 슈퍼플렉스와 이들의 작품 설치 전경. 국제갤러리 제공


바닥에는 매끈한 대리석으로 만든 것 같은 기하학적 추상 조각이 서 있고 벽면에는 단색화를 연상시키는 분홍색 모노크롬 추상화가 걸려있다.

다른 작가라면 몰라도 덴마크 출신 작가 그룹 슈퍼플렉스(SUPERFLEX)의 전시에서라면 극히 황당해 보이는 전시 전경이다. 추상 조각과 추상 회화는 근대 자본주의의 등장과 함께 발전해 온 미술 형식이기 때문이다.

1993년 야콥 펭거, 브외른스테르네 크리스티안센, 라스무스 닐슨이 함께 설립한 이 3인조 작가 그룹은 자본의 불균형, 이주 문제, 저작권 문제 등 자본주의가 초래한 위기를 고발하고 저항하는 작품세계를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게다가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갖는 이번 전시 제목도 ‘피시 앤드 칩스(Fish & Chips)’ 아닌가. 피시(물고기를 뜻하는 영어)는 기후 위기를, 칩스(도박판에서 돈 대신 쓰는 플라스틱)는 경제를 상징한다.

얼핏 오해를 살 수 있는 작품 형식도 역시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자신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지난달 개인전 개막에 맞춰 방한한 슈퍼플렉스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돌은 바다 생물의 터전이며 이 돌조각이야말로 실제 바다에서 물고기를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돌조각은 현무암으로 만들어져 구멍 숭숭 나 있고 크랙(금)이 가 있거나 인위적인 요철이 있기도 했다. 이들은 “현무암 그 자체가 해양 환경에 빨리 통합되는 석재이며 십자가 형태로 기둥을 덧댄 것은 그 기둥 아래서 물고기들이 뭔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벽면의 분홍색 회화 역시 물고기 서식지인 산호초와 관련이 있다. 산호초 씨앗은 분홍색 안료를 만드는 천연 재료로 쓰이기 때문이다. 산호초가 굳어 생긴 분홍 코랄 대리석을 연상시키는 재료지만 이번 전시에는 재활용 가능한 알루미늄을 사용했다. 여기에도 물고기가 알을 낳고 살기 좋은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다.

이처럼 슈퍼플렉스는 전 지구적 기후 위기의 결과 지표면이 물에 잠기는 미래를 상상하고 해양생물의 대안적 터전으로 기능할 수 있는 조각과 회화를 선보인 것이다. 그러면서 그 형태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형식인 모더니즘 조각과 모더니즘 회화의 외피를 둘렀다는 점에서 작품에 위트가 있다. 전시는 7월 28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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