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서 3인치 격자 그림 그리던… ‘그’의 금의환향
마침내 홍익대 미대에 들어갔지만 강익중(64)은 의욕을 잃었다. 사진보다 더 진짜처럼 그리는 동기들의 실력에 주눅이 들어서였다. 1984년 뉴욕으로 건너가 프랫인스티튜트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학교에 적이라도 두고 사업을 해보자는 생각이 컸다. 그래도 미련은 남아 휴대하기 편하게끔 큰 캔버스를 3인치 정사각형 크기로 잘라서 들고 다니며 지하철 등에서 틈틈이 그렸다.
고육지책으로 창안한 3인치 격자 회화가 훗날 강익중을 세계적인 작가로 키운 아이콘이 됐다. 강익중은 3인치 회화 1000개를 완성하면서 1985년 뉴욕에서 첫 개인전을 했다. 96년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열 수 있었고 97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대표작가로 참여해 특별상을 받으면서 국내외 미술계의 조명을 받게 됐다.
그가 금의환향하듯 고향 청주에서 ‘청주 가는 길: 강익중’전을 한다. 통합 청주시 10주년을 기념해 청주시립미술관이 마련한 전시의 주인공으로 초대된 것이다.
그는 지금 공공미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파주 통일동산에 제작한 ‘10만의 꿈’(1999), 유엔본부에 설치한 ‘놀라운 세상’(2001), 146개국 어린이의 그림 12만6000점을 모아 일산 호수공원에 세운 ‘꿈의 달’(2004), 순천 국제정원박람회장에 영구 전시 중인 ‘꿈의 다리’(2013), 실향민이 그린 그림 500장으로 런던 템스강에 설치한 ‘떠도는 꿈’(2016) 등이 그러한 예다.
3인치 캔버스는 하나만 놓고 보면 손바닥 크기지만 수백, 수천, 수만 개가 군집을 이루면 그 자체가 거대한 벽화가 된다.
‘사는 곳은 뉴욕 하지만 갈 곳은 떠나온 곳입니다. 저 맑은 곳.’
전시장에 써 붙인 시를 통해 고향에 대한 수구초심을 고백한 작가가 이번 전시에 펼쳐 놓은 작품도 격자 회화를 기반으로 한 것들이다. 40년 작업 세계를 정리하는 전시인 만큼 그를 유명하게 만든 한글 프로젝트 ‘내가 아는 것’이 높이 10m 전시장에 압도적인 규모로 설치됐다. 자음과 모음의 색을 달리한 한글로 적은 문장은 작가가 2001년부터 써온 것들이다. 일상에서 얻은 경험과 깨우침을 담은 문장을 찾아 읽는 재미가 있다.
작은 격자에 그림을 그리거나 장난감 등 일상의 물건을 오브제로 붙여서 굴곡진 벽면에 파노라마처럼 펼친 ‘삼라만상’에는 추억의 오브제가 그득해 일상의 고고학 자료실 같다. 짝퉁 롤렉스시계가 붙은 격자 앞에서 작가는 “뉴욕 시절 짝퉁 시계를 9달러에 떼어와 12달러에 (불법으로) 파는 장사를 했다. 내 옆에서는 전수천(1947∼2018) 작가가 짝퉁 선글라스를 팔며 서로 경찰이 오나 망을 봐주곤 했다”고 회상했다. 전수천 역시 한국관 건물이 처음 생긴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 중 한 명으로 뽑혀 특별상을 받았다.
달항아리 연작도 볼 수 있다. 달항아리는 그에게 남북화합의 상징이자 목이 짧고 배가 불룩한 사람을 연상시키는 물건이기도 하다. 2004년 호수공원에서 거대한 애드벌룬을 띄우는 프로젝트를 했는데, 바람이 빠져 한쪽이 이지러지는 걸 보고 조선시대 달항아리를 떠올리게 됐다고 한다.
고향 청주에서 하는 전시인 만큼 청주의 상징인 무심천과 우암산을 형상화한 격자 회화도 설치미술처럼 선보이고 있다. 특히 무심천의 물줄기를 형상화한 설치 작품이 더위를 날리듯 시원하다. 서예가 김정희의 추사체 같은 붓질로 그림을 그려 넣은 그은 직사각형 격자를 계단에 경사지게 배치해 마치 물이 흐르는 것 같다.
강익중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이집트의 기자 피라미드 앞에서 10월 24일~11월 16일 열리는 국제미술전시 ‘포에버 이즈 나우(FIN)’에 초대 작가 10명 중 1명으로 초청받았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이다. 이 국제전시는 올해 4회째로 이집트의 예술 단체인 아트 이집트가 주관하고 이집트 관광유물부와 외교부, 기자 주 정부 등이 후원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아리랑’ 가사를 한글과 영어 등으로 쓴 설치미술 ‘네 개의 신전(Four Temples)’을 선보인다. 9월29일까지.
청주=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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