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안녕'한 퇴근을 위해
[배여진]
▲ 책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
ⓒ 한겨레출판 |
포항제철소에서 일을 하셨던 고모부는 내가 어릴 때부터 한 손 엄지와 검지손가락이 다른 손가락보다 유독 짧았다. 어렸던 마음에 유독 뭉뚝한 손가락이 궁금해, 그래도 눈치는 있었는지 고모부께 여쭤보지는 않고 부모님께 여쭤보니 일을 하시다가 다치셨을 거란 답을 주셨던 기억이 난다.
최근 노동자들의 죽음이 뉴스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전주의 한 제지 공장에서 19세의 노동자가 하고 싶은 일들을 빼곡이 남긴 노트를 남기고 일을 하던 중 죽었다. 그리고 한 리튬전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23명의 노동자가 죽었고,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 택배 배송 업무를 하던 한 노동자가 실종되었다가 결국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이들이 하루하루 만들어가던 미래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순간이었다. 책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의 저자는 이런 순간들을 두고 프롤로그에서 "일을 하다 삶을 빼앗긴다"고 표현하였다.
책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는 산재에 대한 기록이다. 한 일간지 기자인 저자는 자신의 직업적 능력을 이 책을 통해 한껏 발산한다. 단순히 산재에 대한 기록을 뛰어넘어 산재 사망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파악하고자 한다. 또 연간 800여 명에 달하는 산재 사고 사망자의 조사자료가 왜 공개되지 않으며 이를 드러내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알아본다. 산재 사망사고 피해자의 가족, 직장 동료 그리고 그들 죽음의 진상을 밝히려고 함께하는 조력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더 간절하게 들을 수 있다.
이 책을 읽기 위해 커피숍에 앉아 첫 장을 읽자마자 난관에 부딪혔다. 2021년 4월 평택항에서 하역노동을 하다 300킬로그램 무게의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진 이선호씨 부친의 인터뷰를 봤기 때문이다. 눈물이 펑펑 쏟아지려던 것을 겨우 참으며 책을 덮고 숨을 골랐다.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기록을 마주하는 것은 언제나 무겁고 힘들다. 동방. 이선호씨가 일했던 회사의 이름이다. 익숙한 이 회사의 이름을 어디서 들었을까 한참을 생각했다. 아! 2021년 코로나로 택배 배송이 늘면서 쿠팡의 수혜주로 한창 주식시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회사다.
집에서 온갖 뉴스들과 인터넷 사이트들을 보며 지내고 있던 시절이었기에 당시 '동방의 한 노동자의 죽음이 동방 주가에 얼마나 영향을 주겠냐, 주가가 많이 떨어질까요??'라는 몇몇 네티즌이 쓴 글을 보고 오랜만에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꼈더랬다.
떨어진 주가야 나중에 오르면 그만이지만, 세상을 떠나버린 사람은 다시 돌아올 수가 없는데, 최소한의 동정마저 인간에게 빼앗아 간 돈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 몇 날 며칠을 혼자 고민했다.
'정말로 안전을 생산보다 우선순위에 놓고자 한다면 기업 조직 전체가 그 목표에 투자하고 도달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 안전은 노동자나 안전관리자 한두 사람의 의식 변화로 이룰 수 있는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전은 개인이 아니라 조직의 목표여야 한다.'(p69)
저자는 '구조'란 노동자 개개인의 성향을 넘어서는 견고한 체계라고 하며, 이제는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을 넘어 어떤 구조가 죽음을 만들었는지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은 구조적 원인을 찾아 분석하고 보완하려는 것보다 회피하고 도망가기 바쁘다.
기업은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사고의 원인을 노동자에게 돌리고, 현장을 훼손하며,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위급한 상황에서도 119를 부르지 않고 자동차로 병원을 전전한다. 기업에게 산재사망사고를 줄이려는 노력은 있는 것일까?
1988년의 당시 만 15세의 나이에 수은 및 유기용제 중독으로 사망한 청소년 노동자 문송면의 죽음은 2024년이 되었는데도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2010년 20대 청년 노동자가 용광로에 빠져 숨졌고,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던 한 노동자가 가방에 컵라면을 남기고 죽었다. 2018년 화력발전소에서 노동자 김용균 님이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그리고 지금의 2024년까지 여러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사람들은 국화꽃 추모 행렬을 만들어냈고, 추모하고 기억했다.
언론에 드러나지 않는 산재사망사고는 더 많다. 늘 그렇듯 우리가 보는 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산재 사망사고에 대해 언제까지 국화꽃 한 송이를 두고만 갈 것인가. 추모와 기억을 국화꽃 한 송이에서 끝내면 안 된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한 사람의 죽음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는 당신의 연대가 일터의 안전을 조금씩 나아지게 했다'고 말한다.
연대의 시작은 국화꽃 한 송이에서부터겠지만 우리의 연대가 거기에 머물러 있다면 산재 사망사고로 이름 없이 죽어간 노동자들은 계속 늘어나고, 노동의 환경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근면히 일하는 자'라는 의미로 '근로자'라는 표현 대신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노동자'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했다. 노동은 누군가의 평가와 무관하게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노동자들의 생명이 더없이 존중받는 사회를 기다린다.(p9프롤로그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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