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끽해야 벌금"…물처벌이 키운 사이버 레커, 작년 구속 9명뿐

김정민 2024. 7. 1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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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쯔양(박정원)을 협박한 혐의로 고발당한 유튜버 구제역(이준희)이 지난 15일 서울중앙지검에 기습 출석한 모습. 뉴스1

" 고소당해봤자 끽해야 벌금 몇백만 원 나오고 끝나겠지 (유튜버 구제역) " 1000만 유튜버 쯔양의 과거를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돈을 뜯어냈다는 의혹에 휩싸인 유튜버 구제역(이준희)과 주작감별사(전국진)가 지난해 2월 나눈 대화는 이랬다. 논란이 커지자 지난 15일 이원석 검찰총장이 ‘사이버 레커(Cyber wrecker)’ 범죄에 엄정 대응을 지시했지만, 그간 ‘솜방망이 처벌’도 레커 생태계를 키우는데 일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이버 레커는 최근 연거푸 사회적 논란을 불렀다. 유튜버 나락보관소는 20년 전 밀양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로 추정되는 인물들을 피해자 동의 없이 공개해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유튜버 탈덕수용소는 장원영·강다니엘 등 인기 K팝 아이돌에 대한 악의적인 비방 영상으로 2억원대 수익을 올려 불구속 기소됐다. 유튜버 엄태웅씨는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 가해자 신모씨의 지인을 영상에 언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3억원을 뜯어냈다가 구속됐다. 모두 지난 6개월 새 벌어진 일들이다.

유튜버 쯔양 협박 논란과 관련해 지난 10일 유튜버 가로세로연구소가 공개한 유튜버 구제역과 유튜버 전국진(주작감별사)의 대화 일부. 사진 가로세로연구소 캡처


진화하는 레커 범죄…현실은 “피해자가 가해자 특정해야”


최근 사이버 레커 범죄는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허위 사실이 섞인 자극적 콘텐트를 제작·유포하는 ‘선전형’이 기본형에 가깝다. 여기에 “나쁜 놈을 엄단하겠다”며 무분별하게 신상을 공개하는 ‘사적 제재형’, 돈을 주지 않으면 사생활을 폭로하겠다는 ‘협박형’ 등이 나타났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과거 명예훼손·협박 범죄의 주된 동기는 개인적인 비방이나 보복에 그쳤지만 최근엔 수익 창출이 주 목적”이라며 “범죄수익 환수가 무엇보다 중요해진 신종 범죄”라고 진단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이 지난달 13일 서울 마포구 밀양 성폭력 사건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협박형’으로 분류되는 쯔양 사건은 전통적인 공갈·협박 범죄에 가까워 비교적 강한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 검찰 내부의 판단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이버 레커 범죄는 수사 개시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들의 주무대인 유튜브와 소셜 네트워크(SNS)가 대부분 해외 플랫폼인 탓에 수사 공조가 쉽지 않고,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지 않고 활동하는 레커가 늘어남에 따라 피의자의 신상을 특정할 수 없다는 벽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원영의 소속사 스타쉽엔터테인먼트는 탈덕수용소를 상대로 국내 민·형사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을 통해 구글(유튜브)에 정보공개청구부터 진행해야 했다. 장원영을 대리했던 정경석 변호사는 “결국 피해자가 시간과 비용을 쏟아 피의자를 특정해 가야 수사가 시작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유튜버 탈덕수용소를 상대로 민·형사소송을 진행 중인 걸그룹 아이브의 장원영. 뉴스1


검찰 문턱도 못 넘는다…구속기소 0.1%뿐


수사에 착수해도 처벌이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통상 사이버 레커에 적용되는 혐의는 사이버 명예훼손(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해당 혐의로 구속기소된 피의자는 9명이었다. 전체 접수된 사건(8712명)의 0.1%다. 불구속 기소(271명), 약식 기소(1609명) 등 재판에 넘겨진 경우를 다 더해도 무혐의(2031명) 처분된 경우가 더 많았다. 기소유예·무죄·공소권 없음·각하 등은 제외된 수치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이버 명예훼손 피의자가 검찰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경향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유지됐다.
김영희 디자이너


어렵게 재판을 받게 돼도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 자체가 벌금형·집행유예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1심에서 징역형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101건으로, 집행유예(219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2022년도 마찬가지로 집행유예(212건)가 실형(109건)의 2배 이상이었다. 범죄 혐의자나 전·현직 판사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로 화제가 됐던 ‘디지털 교도소’ 1기 운영자는 사이버 명예훼손·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2021년 드물게 징역 4년이 확정됐는데, 이는 운영자의 마약·도박 혐의가 포함된 결과였다. 당시 원심 재판부는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 (무고한)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 점을 양형에 참작했다”고 밝혔다.

김영희 디자이너

장희진 변호사는 “최근 사이버 레커 범죄는 온라인 스토킹 양상까지 보이는 데 반해 현행법은 엄벌은커녕 기소조차 어려운 구조”라며 “전면적인 법 개정이나 새로운 입법이 필요하다. 유튜브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운영사·정부의 선제적인 수익 중지 등 범죄유인 제거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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