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주차 낙태? 사실상 출산" 커지는 논란…살인죄 처벌될까
‘임신 36주차에 낙태 수술을 받았다’고 주장한 한 유튜버의 브이로그를 둘러싼 사회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2일 해당 유튜버 등에 대해 살인이 의심된다며 수사를 의뢰한 데 따라 경찰이 16일 사건을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에 배당해 수사에 착수하면서다. 조지호 서울경찰청장도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36주면 자궁 밖에서 생존이 가능한 정도로 다른 낙태와 다르다, 무게감 있게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살인죄로 수사를 의뢰한 건 정부로서는 일종의 궁여지책이다. 하지만 낙태죄가 사라진 상황에서 ‘36주차 낙태’를 한 게 사실이어도 어머니 배 속의 태아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 현행 판례상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임신부의 자기낙태죄와 의사 등 업무상촉탁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국회가 5년 동안 대체 입법을 하지 않은 탓이다. 그래서 “입법 공백 상황에서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①의료계 “36주 낙태는 거의 출산…불가능하진 않아”
의학적으로 ‘임신 36주 낙태’는 매우 드물고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36주차 태아는 그냥 둘 경우 정상적으로 출생해 생존할 수 있다. 복수의 의사들도 “36주차에 ‘낙태하겠다’고 오면 못한다고 할 것” “36주차 낙태는 사실상 출산과 같다” 등 반응을 보였다. 특히 36주 동안 뱃속에서 건강하게 자란 상태라면 약물 정도로는 사망을 유도하기도 어려운 데다 시술 자체가 모체에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30주만 넘어도 낙태하려다가 ‘응애’ 하며 울며 태어나서 보육원에 보내는 경우가 숱하다”고도 말했다.
다만 극히 드물게 다태아의 경우 기형‧질병 등으로 산모‧쌍둥이의 건강을 위해 일부 태아를 포기해야 할 상황에서 약물을 주입해 혈관을 막는 경우가 있다. 이론적으로는 36주 태아를 배 속에 있는 상태에서 사망을 유도하려면 이 방법 정도를 써볼 수 있다는 게 의료계의 설명이다.
②낙태≠살인…출산 후부터 ‘사람’, ‘살인죄’ 적용 가능
법적으로 ‘낙태’와 ‘살인’을 가르는 기준은 ‘출산’ 시점이다. 형법 250조는 살인죄를 ‘사람을 살해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살인죄를 적용하려면 ‘사람’을 살해해야 하는데 판례는 태아가 어느 시기에 사람이 되는가에 관해 ‘분만이 시작된 시점부터’를 사람으로 본다. 대법원이 1982년 조산 과정에서 아기를 사망하게 한 사건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를 인정하면서 “규칙적인 진통을 동반하면서 태아가 태반으로부터 이탈되기 시작한 때, 다시 말해 분만이 개시된 때 사람으로 본다”고 한 이후 굳어진 해석이다.
36주차 태아를 실제 배 속에서 사망을 유도한 게 맞다면 살인죄 처벌은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 해석이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사람’의 정의를 태아 시기까지 앞당겨 살인죄 적용 시점을 바꾸겠다는 건데, 시도는 해볼 수 있겠으나 지금까지의 해석으로는 유죄 판결을 받긴 어렵다”고 말했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도 “대법원 판례 변경이 있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라며 “입법 공백을 메우려고 살인죄를 억지로 갖다 대는 식으로 법을 적용하는 건 법질서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③태어난 아기 죽게 한 건 “살인”
살아있는 채 태어난 아이를 출생 직후 사망하게 했다면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데에는 법조계도 이견이 없다. 분만 직후 영아를 사망하게 한 경우 영아살해죄로 죄를 묻던 과거 판례도 확고하다. 수사기관에선 형법 개정으로 올해 2월부터 영아살해죄가 사라진 뒤 분만 직후 영아를 살해한 경우엔 더 무거운 아동학대살해죄를 적용해왔다. 살인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고, 아동학대살해죄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다.
36주차 태아 낙태 논란을 계기로 법조계에선 “입법 공백을 넘어서 입법 유기 수준”이란 비판이 나온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당시 형법의 낙태죄에 대해 “출생 후 독자 생존이 어려운 22주 이전 낙태는 처벌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2020년 12월 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국회에 요구했다. 그런데 국회가 이 시한을 넘기고, 또 3년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보완 입법을 하지 않으면서 낙태죄가 사라져 이론적으로는 40주 태아를 낙태하더라도 처벌할 방법이 없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국회가 외면하고 시간만 보내도 방법이 없었는데 이제야 도마 위에 오른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수도권의 한 고등법원 판사는 “국민 삶과 직접 관계된 법에 대해 헌재에서 개정을 요구했음에도 5년씩 방치한 건 너무 심한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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