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운 칼럼] 트럼프 피격 부른 증오 정치, 남의 일 아니다
이어진다는 영화 ‘내전’에
많은 미국인들이 공감
대선 불복하고 의사당 폭동
선동한 트럼프가 정치 테러
희생자로 부각된 것은 모순
한국 정치도 분노와 증오 유발
자제 않으면 나라 분열될 것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정치가
치유와 통합으로 나아가도록
설득하고 기도하길 희망한다
‘미국 현직 대통령이 3선을 금지한 헌법을 무시하고 임기 연장을 강행한다. 반발한 19개 주가 분리 독립을 선언하자 대통령은 연방 정부군을 동원해 진압에 나선다. 반격에 나선 서부군은 워싱턴DC로 진격해 시가전을 벌인다. 링컨기념관이 파괴되고 백악관이 포위되는 격렬한 전투 끝에 대통령은 사살된다’
지난 4월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 ‘내전(Civil War)’의 줄거리다. 오락영화치고는 꽤 충격적인 스토리다. 같은 미국인들에게 총기를 겨누는 군인들에게 종군 기자들이 항의하자 영화 속 군인은 이렇게 되묻는다. “당신은 어느 쪽 미국인이냐?”
영화는 개봉되자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할 만큼 흥행에 성공했다. 미국이 남북전쟁(1861~1865년) 이후 처음으로 내전을 벌인다는 설정에 공감하는 미국인들이 많았다. 영화가 개봉된 지 한 달 후 미국 뉴욕 마리스트 대학의 설문조사에 응한 미국인 중 47%가 ‘내 인생에 또 다른 내전이 일어날 것 같다’고 응답했다.
가장 끔찍한 전쟁이 내전이란 말이 있다. 남북전쟁도 예외가 아니다. 제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치른 모든 대외 전쟁의 전사자와 맞먹는 규모의 희생자가 남북전쟁에서 나왔다. 당시 미국의 총인구(약 3100만명)의 10%가 넘는 320만명이 전쟁에 동원됐는데 이중 60만명 이상의 군인이 사망했다. 민간인을 포함하면 100만명 이상이 숨졌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 정치지도자들 사이에 국가 분열을 조장하는 언행은 금기시됐다. 전당대회 때마다 ‘단합된(United) 미국’을 강조하는 연설은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단골 레퍼토리다. 2016년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보다 득표율에서 앞서고도 선거인단 확보 경쟁에서 밀린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패배를 받아들인 것은 국가의 분열을 우려한 탓이었다. 2000년 대선에 도전한 앨 고어 전 부통령도 마찬가지다. 득표율의 근소한 우위에도 불구하고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플로리다의 재검표가 중단되면서 조지 W 부시 후보의 승리가 선언되자 정치적 혼란을 우려한 고어는 결과에 승복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달랐다. 그는 2020년 선거에서 조 바이든 현 대통령에게 패하자 대선 불복을 선언했다. 대선 불복은 지지자 수 천 명의 미 의회 의사당 난입을 불렀다. 4명이 죽고 5명이 다친 의사당 폭동의 주동자에게 징역 22년이 선고됐고, 트럼프 전 대통령도 이 사건을 선동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올해 대선에서 자신이 패배한다면 또다시 불복할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런 트럼프가 총기 피격을 당하면서 정치 테러의 희생자로 부각된 것은 모순이다. 암살을 시도한 백인 청년이 현장에서 즉사하는 바람에 정확한 범행 동기를 파악하기는 어렵게 됐지만 증오를 부추기는 미국 정치가 배후라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한국 정치에서 언젠가 기시감이 들지 모르겠다. 극한 정쟁이 나라를 분열시킨다는 우려를 낳고 있는 미국 정치가 한국에서 재연될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 0.73% 포인트 차이로 패배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현 정부 들어 5차례 기소됐다. 선거법 위반이든, 위증교사든, 대장동 비리든 어떤 혐의라도 유죄가 확정되면 그의 정치 생명은 풍전등화 신세가 될 것이다. 이 전 대표를 수사한 검사들에 대해 민주당이 무더기로 탄핵심판을 청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청문회까지 강행하는 것은 이 전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희석시키거나 원천봉쇄하려는 술수다. 총만 들지 않았을 뿐 정치적 내전이나 다름없다.
네거티브 캠페인이 극성인 국민의힘 당권 경쟁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는 비방 경쟁이 급기야 합동연설회에서 지지자들 간 폭력사태를 빚었다. 분노와 증오를 유발하는 정치인들의 말이 물리적 폭력을 부른 생생한 사례다.
정치인들이 자제력을 잃었다면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 특히 한국 교회가 정치인들에게 치유와 통합의 길로 나아가도록 설득하고 기도하면 좋겠다. 한국 교회는 일제 시절 3·1운동을 주도했고, 군부독재 시절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헌신한 전통이 있다. 분노와 증오를 부추기는 정치를 종식시키는 일에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크리스천들이 앞장서기를 희망한다.
전석운 논설위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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