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뜻밖의 손님

2024. 7. 17.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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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 다다를 무렵, 유리로 된 출입문 안쪽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서자 시야에 들어온 건 상아색 털이 복슬복슬한 포메라니안 강아지였다.

하지만 이 작고 앙증맞은 생명체가 사람의 언어로 대답할 리 없었고 낑낑대는 강아지의 언어를 내가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강아지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담요를 깔아 자리를 마련하고 인근 마트로 뛰어가 사료와 간식을 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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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작업실에 다다를 무렵, 유리로 된 출입문 안쪽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서자 시야에 들어온 건 상아색 털이 복슬복슬한 포메라니안 강아지였다. 예상하지 못한 존재의 등장에 한껏 당황했다. 놀란 마음에 “왜 여기 있어? 언제부터 있었어? 주인은 어디 갔어?”라고 질문을 쏟았다. 하지만 이 작고 앙증맞은 생명체가 사람의 언어로 대답할 리 없었고 낑낑대는 강아지의 언어를 내가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털에 엉겨 말라붙은 눈물 자국을 보니 녀석은 진즉에 자신의 처지가 잘못됐다는 걸 알아챈 모양이었다.

반려견을 애타게 찾고 있을 주인의 심정을 생각하니 한시가 급했다. 사진을 찍어 여러 사이트에 글을 올리고 큼지막하게 벽보를 만들어 건물 외벽에 붙였다. 강아지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담요를 깔아 자리를 마련하고 인근 마트로 뛰어가 사료와 간식을 사 왔다. 이른 아침에 찾아온 뜻밖의 손님을 대접하느라 정신이 없으면서도 포도알만 한 코를 밥그릇에 박고 허겁지겁 먹는 모습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조만간 떠날 녀석이기에 깊이 정들면 안 된다고 냉정한 척했으나 시선은 계속 강아지를 향했다. 작업실 구석구석을 누비며 냄새 맡는 모습, 귀를 쫑긋 세우고 꼬리를 사방팔방 흔드는 애교의 몸짓은 얼어붙은 심장도 녹일 터였다. 안정을 찾은 강아지가 앞발에 머리를 얹고 태평하게 잠을 자는 동안 휴대전화는 한 번도 울리지 않았고 내 마음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

다행히 뜻밖의 손님은 같은 건물 꼭대기 층에 살고 있었다. 주인이 무더위 탓에 현관문을 살짝 열어두고 출근했는데 녀석이 울타리를 넘고 가출을 한 것이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후문도 들었다. 모험을 즐기는 강아지가 내 품에 안겨 서러운 척 눈물지은 걸 생각하니 맹랑하기 그지없었다. 한나절 작업실을 휘젓다가 빈 밥그릇만 남기고 떠난 손님이 며칠째 눈에 아른거린다. 정이 이렇게나 무섭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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