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조정은 수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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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선생님. 지금은 제가 팔을 움직일 수는 있긴 한데 아직 많이 아파요. 청소하거나 요리할 때, 뭘 들 때도 팔을 쓰면 아프고 힘들어요."
얼핏 병원 진료실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의사와 환자의 대화 내용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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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을 좀 들어 보시겠어요? 네, 들 수는 있네요. 돌릴 수도 있고…. 좀 아프신가요? 일상생활을 할 때는 좀 어떠세요?”
“네, 선생님. 지금은 제가 팔을 움직일 수는 있긴 한데 아직 많이 아파요. 청소하거나 요리할 때, 뭘 들 때도 팔을 쓰면 아프고 힘들어요.”
얼핏 병원 진료실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의사와 환자의 대화 내용인 것 같다. 그러나 이곳은 병원이 아니라 법원의 조정실이다. 법원에서 어떻게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고 있는 것일까.
의사가 꼭 병원에서만 근무하라는 법은 없다. 대전고법에서도 의사가 의료 전문심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의료 전문심리위원은 소송에서 의료적인 내용이 쟁점이 되었을 때 전문적인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고, 조정 사건에 조정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대전고법의 의료 전문심리위원은 대학병원에서 평생 환자들을 진료하다 정년퇴임을 한 뒤 법원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아직도 10층에 있는 사무실까지 계단을 걸어서 올라간다. 역시 인생 이모작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대학병원에서 교수로 일했으니 무척 권위적일 것이라 생각하기 십상인데, 우리 전문심리위원은 참으로 다정하기까지 하다. 법원 조정실에서 소송 당사자들이 불편하고 아프다고 호소하면 “어디 한 번 볼까요?” 하고 다가앉고, 아픈 부분을 만져 주고, 꼼꼼히 말을 들어 준다.
의료 전문심리위원은 얼마 전 나에게 이런 말도 들려줬다. “조정이 수술과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수술을 하다 보면 순간적으로 상황을 판단해서 빠르게 조치해야 하지요. 조정도 기록을 읽고 어느 정도 내 생각을 가지고 들어가긴 하지만, 막상 조정을 하다 보면 그때그때 흐름에 따라 순발력 있게 대처할 필요가 있거든요.”
아하, 조정은 수술이구나! 조정실에서 막상 사람들의 말을 듣다 보면 잘 정리된 법률 서류를 읽을 때와는 달리 날것 그대로의 사건과 이들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접할 때가 많다. 긴박한 수술 현장과도 같이 조정위원인 우리도 소송 당사자들의 아픈 부위를 도려내기도 하고, 상처를 잘 봉합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일을 하는 것일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법원에서 일하는 전문심리위원이 이 분뿐이랴. 소송에서 건설 분야의 쟁점이 문제되었을 때 종횡무진 활약하는 건설 전문심리위원도 있다. 이 분은 대전법원 관할 지역인 청주, 홍성, 천안, 옥천, 금산 어디든 구석구석 현장조사를 하러 출동한다. 특히 요즘처럼 장마로 물폭탄이 쏟아지면 여기저기에서 누수 사건이 발생하기 마련인데, 누수 탐지 업체를 불러도 해결이 안 되는 문제를 신출귀몰하게 해결해 주기도 한다.
“저도 공사 현장에서 밥 좀 먹어 봤어요. 그 밥 안 먹어 본 사람은 모른다니까요?”
오늘도 건설 전문심리위원의 말에 공사 현장에서 온 원고와 피고의 찌푸려졌던 얼굴이 친한 친구를 만난 듯 환해진다. 판사나 변호사는 먼지 날리는 현장에서 그 밥 먹는 분들의 언어를 알아듣기 어렵다. 반대로 현장에서 온 분들도 맨날 서류 내놔라, 도장은 찍었냐 따지고 드는 법률가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럴 때 건설 전문심리위원이 조정에 참여하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사건이 해결되곤 하는 것이다.
전국 법원 중 서울·대전·대구·부산·광주·수원 고등법원에 의료·건축 상임 전문심리위원이 일하고 있다. 법률가들이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전문 영역의 분쟁 해결에 전문가들의 참여가 더욱 확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지현 대전고법 상임조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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