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합리한 ‘이중과세’ 개혁해 국가 경쟁력 높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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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 “국세 등 세목 25개 중 20개가 이중과세 문제”
세금 부담에 기업과 자산가의 ‘한국 엑소더스’ 우려
경제 규모가 커지고 사회가 복잡해지면 정부가 할 일도 늘어난다. 이를 위해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고, 세금은 이를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다. 그러니 갈수록 국민의 세금 부담은 커져갈 수밖에 없다. 늘어난 부담만큼이나 정부와 납세자인 국민 사이에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는 지점에는 불합리한 세제가 있다. 동일 세목 혹은 동일 과세 대상에 여러 세금을 더하는 이중과세도 그중 하나다.
이중과세 논란의 대표적 사례는 정부와 정치권에서 개편 및 폐지 논의가 진행되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다. 부동산 보유세 역할을 하는 재산세와 중복돼서다. 상속세도 이중과세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피상속인이 생전에 소득세 등을 내고 형성한 남은 재산에 대해 사망 시 세금을 매기고, 배우자 상속분에 대해 상속세를 낸 뒤 배우자 사망 시 자녀에게 또 상속세를 부과하기 때문이다.
이중과세 문제는 종부세와 상속세에 그치지 않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어제 내놓은 보고서에서 국세·지방세 세목 25개 중 20개에서 이중과세 문제가 컸다고 지적했다. 상의는 법인세 이중과세 문제도 언급했다. 기업은 매년 소득에 대해 최고 24%의 법인세를 내면서 20%의 투자·상생협력촉진세(미환류소득 법인세)를 내야 한다. 투자나 임금 등에 쓰지 않고 유보한 소득에 법인세를 추가 과세하는 것이다. 주주 배당금 이중과세 문제도 포함됐다.
과세에는 나름의 필요와 이유가 있다. 그런 만큼 경영계의 감세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중과세로 인해 복잡해진 세법과 세제는 투명성을 훼손할 수 있다. 또한 가계와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켜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국가 경쟁력도 갉아먹는다. 지난달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국가 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조세 정책 순위는 34위로 8계단 하락했다. 과도한 세금 부담 탓이다.
기업과 자산가의 ‘한국 엑소더스’도 가속화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외전출세를 신고한 상장사 대주주(26명)는 2018년보다 배로 늘었다. 영국의 컨설팅업체도 올해 한국의 고액순자산가 순유출이 12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세금 부담이 주요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비효율적인 조세 운영이 경제 주체의 의사결정을 왜곡하는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상의의 지적대로다.
낡고 불합리한 제도를 바꾸면 기업도 움직인다. 법인세 개편으로 해외 배당금에 대한 이중과세를 없애자 지난해 현대자동차그룹이 해외법인 유보금 59억 달러를 가져와 국내 전기차 투자에 나선 게 그 사례다. 세제의 비효율과 불확실성을 걷어내 기업 투자를 자극하고 해외 이탈을 막으면 세수 확대와 국가 경쟁력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세제 개편을 앞둔 정부와 국회가 염두에 둬야 할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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