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한국 핵무장론의 현실성 검토
북핵 위협에 맞서 한국도 자체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드세다. 2023년 이후 여러 기관이 독자 핵무장의 찬반을 물었을 때, 60∼75%의 우리 국민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김정은의 핵 위협이 더욱 노골화되고 북·러 밀착이 가속화됨에 따라 더 많은 국민이 핵무장을 불가피한 선택으로 판단하는 듯하다. 특히 올해 말의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커지거나 실제 당선된다면 우리도 핵을 개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질 수 있다. 여기에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시켜 정쟁의 도구로 만드는 데 탁월한 정치인들이 불을 붙이면 자체 핵 개발 이슈가 우리 사회를 자체 분열시킬 수도 있다.
■
「 자체 핵무장은 이익보다 손실 커
북·러 조약으로 편익은 떨어졌고
중국의 제재는 큰 경제 충격 될 것
핵보다 역량과 연대의 힘 길러야
」
우리는 핵 개발의 편익과 비용을 숙고해야 한다. 현재의 핵무장론은 편익을 과대 추정하고 비용을 과소 추정한다. 미국은 한국 핵무장을 허용하고 중국은 아무 행동을 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핵 개발의 직접비 외에 다른 비용은 들지 않는다고 상정한다. 또 한국이 핵을 보유하면 북핵과 ‘공포의 균형’을 이룰 수 있으므로 핵 위협은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과연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성이 있을까.
최근 러·북이 맺은 조약은 자체 핵 개발의 기대 편익을 현저히 떨어뜨렸다. 이제 우리는 북핵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엔 러시아의 핵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한국이 핵 개발에는 성공한다 해도 장거리 투발 수단은 갖지 못할 것이므로 한국 대(對) 러·북의 전력은 여전히 비대칭적이다. 러시아라는 지렛대까지 얻은 북한은 남한을 핵으로 평정하겠다고 계속 위협할 수 있다. 이 상황을 막으려면 한국은 약 4400기의 세계 최대 핵보유국인 러시아의 핵을 억지할 만큼의 핵과 투발 수단을 가져야 하지만 이는 실현 가능한 목표가 아니다. 물론 러시아가 러·북 조약대로 행동할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최악의 안보 상황을 가정해 핵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지금은 그 최악의 수준이 우리가 도달하지 못할 만큼 높아졌음은 분명하다. 만약 미국이 러시아 핵을 억지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면 그런 신뢰는 북핵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중국의 행동은 우리의 핵 개발 비용을 크게 높일 것이다. 합리적 핵무장론자들은 한국도 핵을 보유해야 한반도가 안정된다는 논리로 중국을 설득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한반도 불안정의 근원인 북한을 직접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중국이 이 논리에 설득될 확률은 아주 낮다. 오히려 한국이 흔든 핵비확산 체제가 핵 도미노를 가져와 대만이 핵 무장할 개연성을 훨씬 크게 우려할 것이다. 따라서 경제제재를 포함한 여러 수단으로 한국의 핵 개발을 저지하려 들 것이다. 사람을 살상하는 것은 무기만이 아니다. 경제위기도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다. 외환위기 이전에 한국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10명대였지만 그 후에는 20명대로 치솟았고 금융위기 이후에는 30명대로 증가했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의 경제안보 지수에 따르면 중국이 한국경제에 충격을 주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수출 품목의 수는 한국의 20배다. 이 수출 권력을 중국이 최대한 사용할 경우, 한국은 외환위기보다 더한 경제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한국의 자체 핵 개발을 지지하는 미국 전문가의 셈법도 우리의 기대와 사뭇 다르다. 한국의 방위력 증강 자체보다 미국의 부담 감소와 중국 대응에 방점을 두는 견해가 많다. 한국이 핵을 보유하면 한반도 외 지역으로의 주한미군 전개가 원활해지고, 북한 억지보다 중국 대응에 한국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이는 우리 안보나 경제에 오히려 손해일 수 있다. 한국에 핵은 있지만 주한미군이 없거나 일부만 남은 상황이 한국에 득이 될까. 한국 핵무장을 미국 주도의 대중 압박과 포위로 인식하는 중국은 어떻게 행동할까.
한국이 핵무장을 한다면 이는 미국 및 우방과의 연대에 덧셈이 되어야 한다.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핵 개발을 추진한다면 한국이 앞장서 세계 규범과 질서를 흔드는 행위다. 세계는 동맹국 한국의 핵 개발을 막지 못하는 미국을 ‘신뢰받지 못하는 패권국’으로 인식하는 수준을 넘어 ‘미국 패권 붕괴의 신호탄’으로 해석할 것이다. 이는 바로 북·중·러가 원하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의 힘은 나라를 지키겠다는 국민의 의지와 지정학적 이해 및 가치가 일치하는 국가와의 연대에 있다. 만약 푸틴이 우크라이나전에서 이처럼 고전할 줄 알았다면 전쟁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은 약소국이 아니다. 우리 역량과 우방과의 협력을 극대화해 안보를 지킬 수 있다. 오히려 우리는 핵 개발에 들어갈 재원을 과학과 기술, 인재와 미래, 그리고 친구에 투자해야 한다. 한국의 북한화가 아니라 북한의 한국화가 돼야 한다. 보이는 핵이 전부가 아니다.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우리 힘과 연대의 가치를 견고히 붙들고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경제학부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친가는 핏줄을 의심한다" 외갓집이 용돈 더 주는 이유 | 중앙일보
- "동남아서 7000원 발마사지 받고 수술…죽을 뻔했다" 무슨 일 | 중앙일보
- "RRR이면 무조건 사라"…중소기업맘 30억 아파트 쥔 비결 | 중앙일보
- "당장 금메달 줘야한다" 몽골 올림픽 단복 극찬…어땠길래 | 중앙일보
- 카페 음료에 이물질 테러…"체액 맞다" 열흘 만에 자수한 20대 | 중앙일보
- 서세원 딸 서동주 "너 잘못 걸렸어"…부모 비방한 유튜버 고소 | 중앙일보
- 방콕 유명 호텔서 6명 숨진 채 발견…'7번째 투숙객' 추적 중 | 중앙일보
- "계란말이 먹고 9억 저축, 비참하다" 조기은퇴 꿈 무너진 남성, 왜 | 중앙일보
- 드라마서 전처 김보연과 재회…전노민 "합의된 내용 아니었다" | 중앙일보
- '황희찬 인종차별' 구단 적반하장…"재키 찬이라 불렀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