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원의 시선] 한국 축구, 새판을 짜야 한다

정제원 2024. 7. 1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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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원 문화스포츠 디렉터

축구 스타 박지성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한국 대표팀은 역사상 가장 좋은 멤버를 갖췄다. 이 시기에 이런 상황이 안타깝다. 축구협회장 스스로 (사퇴 여부를) 선택해야 한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새 사령탑으로 선임된 홍명보 감독이 15일 오전 자신을 보좌할 외국인 코칭스태프 선임 관련 업무를 처리하고자 유럽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연합뉴스

대한축구협회가 최근 홍명보 감독을 축구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한 이후 후폭풍이 거세다. 박지성은 물론 이영표·박주호·이천수 등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났다. 이들은 대한축구협회의 일방적 감독 선임은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됐다면서 문제를 제기했다.

「 대표팀 감독 뽑는 데 5개월 허비
국민 정서는 부글부글 끓는데
대한축구협회 행정은 오락가락

대한민국 축구가 위기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지난 2월 아시안컵에서 요르단에 졌다. 올림픽대표팀은 지난 4월 인도네시아에 덜미를 잡혀 탈락했다. 경기력뿐만 아니라 축구 행정도 낙제점 수준이다. 외국 감독을 뽑는다더니 5개월을 허비한 끝에 갑자기 방향을 틀어 국내파 지도자를 선임했다. 박지성 선수의 지적대로 한국 축구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 축구의 위기는 어디서 비롯됐는가. 리더십의 붕괴가 가장 큰 문제다. 현재 대한축구협회엔 구심점이 없다. 축구협회장도, 전력강화위원장도, 대표팀 감독도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린다.

U-23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4월 25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 8강전 대한민국과 인도네시아의 경기에서 패배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대한축구협회장은 10회 연속 올림픽 진출을 노리던 한국 축구가 예선에서 탈락해 파리올림픽 출전이 좌절됐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축구협회 홈페이지에 짧은 사과문을 올린 게 전부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국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입을 꾹 닫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 축구의 뿌리를 다지는 동시에 미래를 설계하는 임무를 맡은 전력강화위원장은 유고 상태다. 6월 말 갑자기 사의를 표명하고 자취를 감췄다. 지난 3월 황선홍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끌어올려 A대표팀 임시감독에 앉힌 뒤 “문제가 있으면 책임지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던 바로 그분이다. 한국이 올림픽 예선에서 탈락했을 때는 꿋꿋이 자리를 지키더니 차기 감독 인선이 한창이던 지난달 갑자기 사표를 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대한축구협회는 돌고 돈 끝에 축구대표팀 사령탑으로 홍명보 감독을 뽑았다. 차라리 처음부터 국내에서 감독을 뽑겠다고 했으면 큰 문제가 없었을 텐데 외국인 감독을 고집하다가 5개월을 허비했다. 축구 팬들은 외국인 감독을 뽑겠다며 의욕을 보였던 축구협회가 왜 갑자기 입장을 바꿔 국내 지도자를 뽑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전임 클린스만 감독 역시 리더십에서 큰 약점을 드러냈다. 지난 2월 카타르 아시안컵 기간 2001년생 이강인이 주장 손흥민에게 주먹을 날린 사건은 클린스만 감독의 리더십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강인의 주먹질 파동으로 대표팀의 팀워크는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다. 바로 다음 날 한국은 한 수 아래의 요르단에 덜미를 잡혀 탈락했다. 클린스만 감독이 선수단을 제대로 장악했더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한국 축구의 부흥을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히딩크 감독이 이끌었던 대표팀에서 후배가 선배에게 주먹을 날렸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이임생 대한축구협회(KFA) 기술본부 총괄이사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과 관련한 브리핑을 했다. 축구협회는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준비하는 축구대표팀의 새 사령탑에 홍명보 울산 HD 감독을 선임했다. 계약기간은 2027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 아시안컵까지로, 홍 감독은 2014 브라질 월드컵 이후 10년 만에 다시 대표팀을 지휘하게 됐다. 뉴스1

한국 축구가 위기를 맞은 두 번째 이유를 꼽으라면 시스템의 부재다. 대한축구협회는 신임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허점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체계적인 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판단과 결정에 의존하다 기회를 날렸다. 대표선수 출신인 박주호 전력강화위원은 감독 선임 과정에서 강화위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전력강화위원장이 사표를 내자 기술총괄이사가 그 자리를 대신한 것도 석연찮다. 느닷없이 전력강화위원장 역할을 맡은 기술이사는 유럽으로 날아가 2명의 외국 지도자와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는 귀국하자마자 홍명보 감독의 집으로 달려가 불쑥 대표팀 감독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그는 지난 8일 홍 감독 선임을 발표하면서 이 결정은 전적으로 본인의 판단이라는 사실을 수차례 강조했다. 대한축구협회장은 허수아비인가. 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이 이렇게 허술해도 되는 건가.

일본은 지난 2022년 30년 후의 미래를 내다보고 ‘저팬즈 웨이(Japan’s Way)’를 선포했다. ‘2050년 월드컵 단독 개최 및 우승’이 일본의 목표다. 한국은 어떤가. 당장 대표팀 감독도 제대로 뽑지 못해 쩔쩔매는 게 대한축구협회의 현실이다. ‘K엔터테인먼트’와 ‘K푸드’는 세계 곳곳에서 찬사를 받는데 ‘K축구’는 왜 이 모양인가. 감독 선임 과정에서 드러난 대한축구협회의 일 처리 수준은 코리아의 국격에도 맞지 않는다. 새판을 짜지 않으면 한국 축구의 미래는 없다.

정제원 문화스포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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