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MB표 버스 준공영제 20년…속도저하, 재정부담 난제 풀어야
전국 최초로 서울에서 시행한 시내버스 준공영제가 지난 1일로 만 20년이 됐다.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도입을 결정했다. 준공영제는 버스운영을 민간 자율에 맡기는 민영제와 버스회사를 지자체 또는 공기업에서 직접 경영하는 공영제의 장점을 합친 형태다.
준공영제가 도입될 시기의 시내버스 상황은 열악했다. 승용차가 도로의 70% 넘게 차지하면서 교통 혼잡은 극심했고, 경쟁에서 밀린 버스의 통행수단 분담률은 26%(2002년 기준)에 불과했다.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버스 회사가 여럿이었고, 난폭 운전·들쑥날쑥한 배차 간격 탓에 시민 불만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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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회사 수입구조 안정화 효과
난폭운전 줄고 속도 향상 등 기여
객 감소, 서울시 재정지원 급증
“노선 조정·전용차로 확대 필요”
」
하지만 버스는 지하철보다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대량 운송수단이었다. 서울시 도시교통실장을 지낸 황보연 서울시립대 초빙교수는 “여러모로 심각했던 시내버스의 위기 상황에서 나온 해법이 준공영제였다”고 말했다.
버스전용차로·통합환승할인 시행
준공영제 하에선 모든 버스회사의 운송수입금을 공동 관리하고, 매년 일정 절차를 거쳐 확정되는 표준운송원가에 따라 산정된 총비용에서 총수입을 제외한 부족분을 서울시가 예산으로 메워준다. 버스회사로선 수입 구조가 안정돼 무리한 운행을 할 이유가 줄었다. 기존 지하철 노선과 신설 노선 등을 고려해 비효율적이던 버스노선도 확 바꿨다. 노선별 기능에 따라 간선·지선·순환·광역버스로 나눠진 것도 이때다.
꽉 막힌 도로에서 버스 속도를 높여주기 위해 도로 한가운데에 ‘중앙버스전용차로(이하 전용차로)’를 도입했다. 천호대로를 시작으로 도봉 미아로, 강남대로 등에 속속 설치되면서 속도가 빨라졌다. 도봉 미아로는 전용차로 시행 전인 2004년 6월 평균 운행속도가 시속 11㎞에서 그해 12월엔 시속 20.3㎞로 85% 가까이 증가했다. 교통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버스·지하철 간 통합환승할인도 함께 도입됐다.
물론 준공영제라는 낯선 제도를 놓고 처음엔 버스회사와 노조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 버스회사는 노선권 박탈을, 버스노조는 일자리 상실 등을 걱정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준공영제의 위력은 상당했다. 난폭 운전이 줄면서 교통사고가 대폭 감소했고, 배차 정시성이 향상됐으며 승객 만족도도 높아졌다. 준공영제는 부산·대구·대전·광주·인천 등 국내 주요 도시로 퍼졌고,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버스 통행수단 분담률 크게 하락
그러나 20년이 흐른 지금 준공영제는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무엇보다 전용차로의 속도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서울시가 발간한 ‘2023 서울시 차량 속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용차로의 평균 속도는 시속 18.0㎞로 2007년(시속 22.3㎞)보다 20% 가까이 느려졌다. 경기도를 오가는 버스 등이 늘면서 통행량이 증가한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승용차는 도심 구간을 기준으로 2007년에 시속 14.4㎞이던 것이 지난해에는 18.6㎞로 오히려 빨라졌다. 속도 저하는 승객 감소로 이어져 버스의 통행수단 분담률이 2009년 27.8%에서 2022년에는 20.1%로 크게 떨어졌다. 같은 기간 지하철은 35.2%에서 43.5%로 뛰었다.
이렇게 승객과 요금 수입이 줄었지만, 인건비·유류비 등 운영비용은 계속 증가하면서 서울시의 재정지원 부담도 크게 늘고 있다. 준공영제 시행 이후 2020년까지 1600억~2900억 원대를 대체로 유지하던 재정지원금은 코로나19로 승객이 급감한 탓에 2021년 4561억원, 2022년 8114억원, 지난해는 8915억원까지 치솟았다. 올해는 이보다 줄었지만, 예년보다 많은 3400억원가량으로 전망된다.
“시대변화 맞게 개선” 목소리 높아
이 때문에 전문가와 버스업계 안팎에서는 준공영제를 시대 변화에 맞게 대폭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버스노선 전면 개편이 우선 손꼽힌다. 박동주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지난 20년간 수많은 도시철도와 광역철도가 신설되고, 신도시가 들어섰지만 버스노선 변화는 단순 짜깁기에 지나지 않았다”며 “타 교통수단과 중복도가 높은 노선을 조정하고, 환승 편리성과 노선 다양성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승모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과 교수도 “버스전용차선의 용량과 신설 지하철 및 경전철 노선, 변화된 통행 패턴을 고려한 대대적인 버스노선 개편이 요구된다”며 “노선 개편 및 배차 간격 조정으로 운행수입을 현재보다 11.5%까지 늘릴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버스업체 경영진도 “20년 동안 도시 환경이 확 바뀌었는데도 노선 조정 권한을 가진 서울시가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버스산업의 상품인 노선망을 재점검해 현재 상황에 맞게 재설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버스 속도 향상도 과제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승객을 다시 늘리려면 버스 경쟁력의 핵심인 속도를 높여야 하고, 이를 위해선 버스전용차로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며 “편도 2차로 구간도 필요하면 전용차로를 설치하고, 중앙버스전용차로에서는 교차로에 버스 우선 신호를 도입해 속도를 높여줘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자율주행 등 첨단기술과 버스의 접목도 요구된다.
또 재정부담 완화를 위해 적정한 수준의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현 한국교통대 교통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2009년 이후 인건비와 유류비 등 유지보수비 증가율이 버스요금 인상률보다 높아졌다”며 “버스요금의 현실화를 통해 서울시의 재정부담을 줄이는 것도 대안”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보면 20주년을 맞은 MB표 버스 준공영제는 획기적인 변신이 절실한 시점인 듯싶다. 서울시와 중앙정부, 버스업계 노사 대표, 그리고 전문가들이 서둘러 머리를 맞대고 보다 지속가능한 버스 준공영제의 대대적인 개혁 방안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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