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일자리를 등진 먹사니즘

박수련 2024. 7. 1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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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련 산업부장

한달 새 미국 주지사 3명이 한국을 찾았다. 14일 서울에 도착한 앤드루 베시어 켄터키 주지사는 출발 전 SNS에 “좋은 일자리를 켄터키주에 가져올 비즈니스 파트너를 발굴하러 일본과 한국에 간다”고 했다.

지난 9일엔 그렉 애벗 텍사스 주지사가 삼성전자 평택 팹(반도체 공장)을 둘러보고는 “삼성의 테일러 신규 팹은 AI 전용 칩을 위한 기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테일러 시에 4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할 삼성 외에도 270개 한국 기업이 텍사스주에 투자했다. 지난달엔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가 현대차·기아,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을 줄줄이 만나고 갔다. 조지아주는 지난 10년간 한국 기업들로부터 32조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들은 ‘좋은 일자리’가 곧 정치적 자산임을 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지난 8일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었다. [뉴시스]

동남아, 중동, 유럽에도 한국 기업 오라는 곳은 많다. 동남아로 생산기지를 옮긴 대기업 CEO는 최근 만난 자리에서 씁쓸한 표정으로 “원가 경쟁력도, 규제 환경도, 시장 규모도 매력적이지 않은 한국은 이제 ‘마더 팩토리(표준 공장)’ 말고는 투자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모르는지, 일부 대기업 노조는 자기만의 희망 회로에 빠져 있다. 텍사스 주지사가 평택을 다녀간 다음 날 삼성전자 노조는 “무기한 파업”을 선언했다. 평균 연봉 1억2000만원을 받는 이들이 임금 인상, 성과급 제도 개편을 위해 ‘생산 차질’을 일으키겠다고 벌인 행동은 외신을 탔다. 삼성전자가 대만·일본·미국 기업들과 힘겨운 경쟁 중의 파업이라 세계가 주목했다.

더한 건 국회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노조가 불법 파업을 해도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국내 최대 산별노조인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이 법을 통과시키라며 총파업을 벌였다. 이 법의 수혜자가 누구인지 보여준 것이다.

이 당의 전 대표는 대표직 출마를 선언하며 ‘먹사니즘’이 자신의 이념이라고 했다. 일자리를 등진 먹사니즘은 뭘 말하는 걸까. ‘반도체 특별법’도 내놨다지만 삼성전자 노조 파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이 당에서 나왔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한 정보기술(IT) 대기업 임원은 “중국 대신할 투자처를 찾는 벤처자본이 한국을 ‘패싱’한다”며 혀를 찼다. 올 상반기 주식 시장 외국인 순매수액의 66.6%(15조2551억원)는 여전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세 곳에 쏠렸다. 2000년 이후 시총 1위가 그대로인, 정체된 한국이 신산업을 키워낼 수 있을까. 강성 귀족노조의 이기주의와 그에 기댄 거야의 포퓰리즘이 주름잡는 동안 산업 현장은 늙고 쪼그라들 것이다. 이 나라보다 더 빠르게.

박수련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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