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고은의 모서리를 접는 마음] 문장 카펫
집에서 쉴 때 무엇을 하느냐고 운동 코치가 물었다. 드라마 보세요? 아뇨. 게임? 아뇨. 책 읽으세요? “아뇨!” 그러자 코치가 하는 말. “그러면… 주로 누워 계세요?” 순간 두 사람을 휘감은 폭소! 코치는 “이왕이면 이런 자세로 쉬면 좋을 것”이란 의도로 이야기를 꺼낸 거였다. 너무 정곡을 찔려서 그랬나, 나는 얼결에 “아뇨!”라고 부인하고서 묘한 쾌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책 관련 라디오 프로그램을 5년째 진행하다 보니 책을 촘촘한 간격으로 일상에 들여놓게 됐다. 이른바 독서황금기가 시작된 것이다. 완독하는 책은 일주일에 세 권 정도로, 부분 접촉은 그보다 많다.
라디오 오프닝을 책의 한 대목으로 시작하는데, 그 한 대목을 고르는 것이 내 일인 동시에 쉼의 방식이기도 해서 틈날 때마다 책을 여닫는다. 책을 들고 앉았다 일어나, 쪼그렸다가 엎드려, 서가에 꽂으려다가 읽어, 읽으려다가 꽂아… 동선이 짧아도 전신운동이다.
1~2분 읽을 분량으로 책의 한 대목을 고르면 구성작가가 출판사에 연락해 허가를 받는다. 음악감독과 프로듀서가 거기 어울리는 선곡을 하고, 온에어 사인 아래서 나는 그것을 낭독한다. 매일 한 편, 1년 365일의 오프닝이 그렇게 탄생한다. 프로그램 입구에 ‘어서 오십시오’의 마음으로 깔아두는 문장 카펫이랄까.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마침내 ‘라디오’가 된 ‘책’이 듣는 사람을 잠시 흔들어두는 상상을 하면 짜릿하다. 우리에겐 그렇게 흔들릴 순간이 필요하고, 책은 끊임없이 노크하는 존재니까.
독서 근육에 대해 많이 말하지만, 모두가 근육질이 될 필요는 없고, 그보다는 눈 맞춤이 먼저다. 한 문장, 한 페이지로도 우리는 사랑에 빠질 수 있다. 그러면 자연히 더 알고 싶어질 테고. 내가 낭독할 대목을 고를 때 종종 절단 신공을 발휘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뒤가 궁금해질 순간에 딱 끊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윤고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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