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바둑의 ‘품격’ 하루 1만원이면 누릴 수 있는데…

2024. 7. 1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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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리그에서 우승한 ‘바둑의 품격’ 멤버들.

KB바둑리그가 메이저리그라면 챌린지리그는 마이너리그에 해당한다. 이곳 2024 챌린지리그에서 ‘바둑의 품격’ 팀이 우승했다.

야구의 마이너리그와 달리 바둑의 챌린지리그는 흘러간 스타, 김은지, 오유진 등 여자기사, 아마추어 최강들이 등장하는 복합 무대라 시작부터 궁금증을 자아냈다.

16개 팀이 치른 정규 시즌에서 ‘부산 이붕장학회’의 안정기(랭킹 41위)가 7전 7승으로 다승상을 받으며 스타가 됐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에서는 가슴 아픈 사연의 주인공이 됐다. ‘바둑의 품격’과의 준플레이오프, 1대1 상황의 마지막 릴레이 대국에서 공배를 메우다 자충으로 들어가 4점을 따먹혔다. 1집 반 이긴 바둑을 4집 반 졌다. 프로기사들은 일반의 상상 이상으로 조심스러운 사람들인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지옥 입구에서 살아 돌아온 ‘바둑의 품격’은 ‘교육도시 춘천’을 꺾고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한다. 바둑의 품격 팀은 랭킹 89위의 한웅규가 27위의 심재익에 역전 반집승을 거두며 행운을 이어갔다.

반대편에서는 최강 ‘사이버오로’가 정규시즌 1위 ‘경북바둑협회’를 꺾었다. 강승민(26위), 나현(30위), 안국현(38위)으로 이어지는 사이버오로는 대회 출범 때부터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이에 반해 바둑의 품격팀은 반집의 승부사 안조영(78위),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목진석(60위), 그리고 한웅규다. 랭킹만 본다면 큰 차이였으나 승리의 여신은 끝내 ‘바둑의 품격’을 점지했다.

첫판 강승민이 목진석을 꺾자 한웅규가 나현을 제압, 1대1을 만들었다. ‘바둑의 품격’은 릴레이 대국에서 발군의 팀웍으로 승리했다. 포스트시즌 전승(3승)의 한웅규는 대회 MVP가 됐다.

‘바둑의 품격’은 멤버십 회원제로 운영되는 바둑클럽의 이름이다. 프로와 아마추어가 함께 만들어가는 고급 바둑문화공간을 꿈꾸며 프로기사 윤영민, 하호정, 송태곤이 의기투합하여 만들었다. 여기에 하호정의 남편 이상훈과 이정우 그리고 여자기사 이영주, 박소현이 힘을 보태 2016년 서울 서초동에서 오픈했다.

시작은 야심 찼다. 입문부터 고급까지 여러 강좌를 만들고 프로들과의 대국과 복기, 이창호의 토크 콘서트, 프로와 함께 하는 바둑 여행, 여자기사와 회원들의 페어 대회 등 온갖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곧 난관에 봉착했다. ‘돈’이 문제였다. 지출은 컸고 수익은 작았다.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었다. 그러나 바둑 공간에 기꺼이 비용을 쓰려는 애기가는 적었다”고 윤영민은 말한다.

송태곤, 이영주, 박소현이 빠지고 윤영민과 하호정만 남았다. 하호정은 솔직하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했는데 오만 무지했나 봐요. 반대하는 결혼을 했으니 고생도 혼자 감내한다는 기분이었는데 이젠 눈물도 말랐어요. 우리 낭만여행은 현실에 좌절했지만, 그래도 8년간 고생하며 조금 내공이 생겨난 걸로 위안합니다.”

낙원동, 종로 일대에는 기료 4000원의 기원이 많다. 커피도 제공하고 온종일 있어도 된다. 손님이 꽉 찬다. 가장 비싼 강남에 가면 기료는 7000~8000원이고 1만원까지 받는다. 바둑은 고고하다가도 돈 얘기만 나오면 힘들어진다.

바둑의 품격은 한달 30만원 정도니까 꽤 세다. 그렇다 하더라도 프로기사들이 무료 봉사하듯 뛰어도 운영이 어렵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요즘 당구장 이용 요금은 10분에 2300~2500원까지 올라갔다). 바둑은 산업이 없어서 가난이 숙명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바둑이 지구상에서 가장 지적인 게임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바둑이 크게 고급도 아니고 조금 고급의 클럽도 갖지 못한다는 것은 은근히 서러운 일이다.

이번 챌린지리그 팀은 회원들의 힘으로 꾸렸다. 경영이 하도 힘들어 눈물도 말랐다지만, 그래도 회원들이 팀을 꾸렸고 기사회생 끝에 깜짝 우승했다. 클럽 ‘바둑의 품격’도 역경을 딛고 바둑팬들이 사랑하는 멋진 공간으로 우뚝 서기를 기대해본다.

박치문 바둑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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