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말 한마디 않고 할말 다했다…“완벽히 짜인 트럼프쇼”

강태화 2024. 7. 1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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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15일 피격 후 첫 공식 석상인 공화당 전당대회에 등장했다. 그는 이날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됐다. [로이터=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오후 8시58분. 대표적 경합주(Swing State)인 위스콘신주 밀워키 공화당 전당대회장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등장곡으로 애용되는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the USA)’가 울려퍼졌다. 대형 전광판엔 피격 이후 처음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모습이 비쳤다. 경기를 앞둔 복싱선수가 복도에서 대기하는 바로 그 장면이었다. 화면 속 ‘선수’의 오른쪽 귀엔 큰 거즈가 붙어 있었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지지자들은 모두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트럼프는 3분가량 그대로 서 있다가 오른손을 들어 보이며 행사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에스에이(USA)”를 연호하던 환호성은 이내 “파이트(Fight)”로 바뀌었다. 지난 13일 피격 직후 귀에 총을 맞고 일어난 트럼프가 외쳤던 말이다.

이날 트럼프는 57분간 행사장에 머물렀지만, 마이크를 한 번도 잡지 않았다. 유권자들의 관심을 18일 대선후보 수락연설 때까지 계속 고조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대신 이번 대선 핵심 이슈에 대한 5명의 찬조 연설자와 영상을 통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할 말을 모두 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트럼프가 이날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JD 밴스 상원의원과 귀빈석에 앉아 있는 동안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는 미시간의 평범한 가장, 펜실베이니아 출신 모델이자 한 아이를 키우는 흑인 여성, 네바다에 사는 남미 출신 이민자 여성, 노조 대표, 중동 출신 여성이 연이어 단상에 올랐다. 이들은 각각 물가, 교육, 소수자, 이민, 노조, 중동 문제 등 트럼프가 조 바이든 대통령을 공격해 왔던 단골 이슈를 꺼냈다.

이 중 가장 강력한 메신저는 조합원 130만 명의 미국 최대 트럭운전사 노조 ‘팀스터즈’의 숀 오브라이언 대표였다. 그는 “우리가 어떤 정당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나는 전임자가 했던 것과 같은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바이든의 최대 우군으로 꼽혔던 노조의 지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을 극명하게 드러낸 연설이었고, 트럼프는 연설 내내 박수로 화답했다.

공화당 전당대회 첫날 일정은 트럼프의 깜짝 등장을 위한 ‘예고편’에 가까웠다. 공화당전국위원회(RNC)는 이날 전국에서 운집한 대의원 2400여 명의 투표 결과를 주별로 발표하게 했다. 그러다 트럼프의 차남 에릭이 자신이 주(州) 대표를 맡은 플로리다의 투표 결과를 발표하자 트럼프가 후보 선출을 위한 과반 득표를 넘어섰다. 아버지의 후보 확정 발표를 맡은 차남 옆에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와 딸 티파니가 활짝 웃는 모습이 대형 화면을 가득 채웠다.

특이한 점은 이날 오전과 오후 일정의 시작과 끝을 비롯해 중요한 순간마다 대의원 전원이 함께 기도하는 시간이 마련됐다는 점이다. 스테픈 슈밋 아이오와주립대 교수는 중앙일보에 “암살 기도 사건을 계기로 ‘신이 돕는 영웅’의 귀환을 부각하기 위해 완벽히 짜인 각본을 만들어 트럼프 특유의 ‘쇼’를 완성한 것 같다”며 “최연소 밴스 상원의원 발탁 역시 고령 논란에 시달리는 바이든을 겨냥한 영리한 인선”이라고 평가했다.

밀워키=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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