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보험금만 주나요? 치료·간병·요양비까지...
“10억원을 받았습니다.”
과거 화제를 모았던 한 생명보험사 TV 광고 장면 중 일부다. ‘자극적’이라는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종신보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문구로 여전히 회자된다. 종신보험의 기본은 ‘사망보험금’이다. 소득을 책임지는 이가 사망할 경우 유가족 안정을 돕는 보험 상품으로, 오랜 시간 생명보험사 주력으로 활약해왔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종신보험에 대한 관심도가 부쩍 떨어졌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생보사 종신보험 신계약 금액은 지난해 말 약 65조5000억원으로 2020년 대비 19조원 넘게 쪼그라들었다. 사회 구조 변화로 사망보험금 수요가 점점 줄어든 탓이다. 1인 가구가 늘며 유가족 개념이 희미해진 데다, 평균 수명 연장과 소득 감소로 사망 이후보다는 살아 있는 동안 쓸 수 있는 돈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커졌다.
종신보험 평균 보험료는 비슷한 수준의 진단금을 보장하는 암 보험과 비교하면 10배 가까이 비싼 편이다.
시대 변화에 맞춰 요즘 종신보험은 변신을 꾀하고 있다. 사망보험금에 더해 암 같은 주요 질병 치료비나 간병비 등을 보장하는 형태로 달라지는 중이다. 가입 시 ‘요양원 우선 입소권’을 주거나 보험금을 ‘달러’로 주는 참신한 시도도 눈길을 끈다.
한화생명, 암 진단 시 보험금 4배
최근 보험업계에선 종신보험에 암 보험을 추가하는 방향이 대세다.
한화생명이 올해 6월에 선보인 ‘암플러스 종신보험’은 이름부터 알 수 있듯 암 보험을 결합했다. 고객이 암에 걸렸을 때 사망보험금 액수를 올려주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암 진단 시 최대 4배 이상까지도 보험금이 늘어난다. 가입 후 2년 경과 시점부터 사망보험금이 매년 20%씩 늘어나 최대 5년간 100%까지 증가한다. 여기에 암 진단까지 받으면 사망보험금이 또 2배 커진다.
예를 들어 최초 사망보험금이 2500만원이라면 7년 뒤에는 보험금 5000만원, 암 진단 시에는 최대 1억원이 된다. 5~10년 경과 시점에 지급되는 장기유지보너스금액까지 추가하면 최종 사망보험금은 1억2300만원까지 뛴다. ‘암케어특약’ 가입 후 암 진단을 받으면 주계약 보험료 납입이 면제될 뿐 아니라 그동안 냈던 보험료 전액을 암 진단 자금으로 받을 수 있다.
한화생명뿐 아니다. 질병 진단 시 지금까지 낸 보험료를 치료비로 돌려주고 납입료를 면제해주는 종신보험 상품이 계속 쏟아져 나온다.
KDB생명이 최근 선보인 ‘더블찬스 종신보험’도 비슷하다. 암 진단 또는 상해·질병으로 50% 이상 후유 장애를 입으면 그동안 낸 보험료를 모두 돌려받는다. 또 앞으로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계약이 유지된다. 병에 걸리지 않아도 계약을 오래 유지만 한다면 고객 입장에서 손해는 없다. 10년 후 환급률이 100%를 넘기 때문이다. 5년에서 7년 동안 보험료를 내고 10년 시점에 계약을 해지하면 낸 보험료 약 120%를 돌려준다.
예를 들어 7년납 상품에 가입해 매월 100만원을 내는 40대 남성이 있다고 해보자. 5년 뒤 암에 걸리면 그동안 낸 보험료 6000만원을 먼저 돌려받는다. 또 앞으로 2년간 내야 할 보험료 2400만원은 납입 면제다. 3년이 지나 10년째 계약을 해지할 경우 1억원이 넘는 돈을 해약환급금으로 받는다. 암에 걸리면 실질 총 납입 보험료는 0원, 받게 되는 돈은 1억원이라는 얘기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영업 현장이나 커뮤니티에서는 요즘 종신보험을 놓고 ‘암테크’라는 웃지 못할 말이 나올 정도”라며 “암에 걸리지 않더라도 10년 환급률이 120%에 육박하는 덕분에 관심이 크다. 지난해 말부터 관심이 계속돼온 단기납 종신보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고 봐도 된다”고 설명했다.
교보생명이 올해 7월 내놓은 ‘교보암·간병평생보장보험’은 암뿐 아니라 치매 같은 ‘장기 간병 상태’로 진단받을 때도 보험료를 100% 돌려주고 납입도 면제한다. 주계약 납입 보험료를 전액 환급받아 치료비와 간병비로 활용할 수 있다.
KB는 요양원 입소 우선권 검토도
종신보험 변화는 암 치료비와 간병비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요양원 입소 우선권’을 주겠다는 종신보험 상품이 화제를 모았다.
KB라이프생명은 상품 가입 후 3년이 경과하거나 장기요양등급 4등급 이상 판정을 받은 피보험자를 대상으로 KB라이프 요양 전문 자회사 KB골든라이프케어 요양시설에 빠른 입소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만든 상품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현행법에 저촉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지난 6월, 입소 우선권을 제외한 종신보험으로 개정 출시했다. 대신 계약 해지 없이 사망보장을 유지하면서도 요양원 입소비용 등 노후생활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사망보험금을 담보로 ‘역모기지 지급액’을 신청하면 된다. 단, 역모기지 수령 금액만큼 사망보험금은 감소한다. 역모기지 원리금 전액 상환 시 최초 사망보험금으로 복구되는 방식이다.
사망보험금 실질 가치 하락을 방어해주는 상품도 여럿 나왔다. 미래에셋생명이 유병력자와 고령층까지 가입 가능한 기존 ‘헤리티지 종신보험’에 추가한 ‘납입보험료플러스형’이 대표적이다. 사망 시, 가입 금액에 더해 추가로 이미 납입한 보험료를 돌려주는 구조다. 사망보험금 액수가 정해져 있지 않고 납입 기간 동안 매년 보험금이 증가하는 구조다. 상속세 부담을 줄이고자 하는 중장년층 사이에서 특히 관심이 많다는 평가다.
메트라이프생명은 ‘달러 종신보험’을 선보이며 차별화에 나섰다. ‘백만인을위한종신보험PLUS’가 주인공이다. 보험료 납부와 보험금 수령을 달러로 계산하는 상품이다. 달러는 변동성이 클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안전자산 중 하나다. 최근 달러 가치가 강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사망보험금을 달러로 지급받을 수 있어 선호도가 높다는 설명이다.
종신보험 경쟁은 계속된다
보험사 실적에 유리…비과세도 유효
생명보험업계 종신보험 경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지난해 새 회계제도가 도입되면서, 종신보험을 많이 팔수록 보험사 실적에 유리해진 덕분이다. 종신보험은 특성상 보험사 장기 수익성을 가늠하는 척도로 떠오른 ‘보험계약마진(CSM)’ 확보에 좋다. 차별화된 종신보험 상품으로 고객을 확보해야 할 유인이 확실한 셈이다.
최근 정부가 “단기납 종신보험은 비과세가 원칙”이라는 유권 해석을 내린 것도 호재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이후 130%가 넘는 환급률을 앞세워 과열 경쟁 양상을 띤 단기납 종신보험 과세에 대해 “비과세 해당 여부는 개별 보험 상품의 해지 환급률과 보험료 납입 규모, 특약 유형 등을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순수 보장성 종신보험일 경우에는 과세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과세 리스크’가 사라진 보험사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해석이다. 앞으로도 과도한 환급률을 제시하거나 월 납입료를 요구하지 않을 경우, 다양한 종신보험 실험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한동안 저조했던 종신보험 시장이 최근 변화에 힘입어 다시 활성화되고 있다”며 “특히 종신보험 핵심인 비과세 관련 리스크도 일정 부분 해소되면서 더 다양한 상품이 경쟁적으로 나올 수 있는 판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8호 (2024.07.10~2024.07.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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