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간 만에 등장한 '탈시설'... 두 번의 약속 받아냈다
[복건우 기자]
서미화 민주당 의원 : "탈시설은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가 명시한 장애인의 '권리'입니다. 그런데 복지부는 어떠한 입장도 내지 않았어요.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 흐름에 역행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습니다. 복지부 입장이 있어야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 "그렇지 않습니다."
서미화 민주당 의원 :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권고대로 이 성명을 지자체에 배포하세요. 탈시설은 장애인의 권리예요. 많은 시민들이 오해하는 탈시설이 무엇이라고 확실하게 설명하세요."
16일 오후 국회 본관에서 열린 보건복지위 제1차 전체회의에서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분이란 짧은 시간에 조 장관의 약속을 두 번 받아냈다. 조 장관은 탈시설 권리를 담은 유엔 공식 성명을 전국 지자체에 배포하고, 많은 시민들의 오해를 받는 탈시설이 유엔에서 명시한 권리임을 확실히 설명하겠다고 답했다.
▲ 1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질의하고 있다. |
ⓒ 서미화 의원실 |
국회 보건복지위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전체회의를 열어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등 관련기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은 뒤 조 장관에게 현안 질의를 진행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료 같은 의료개혁 이슈들이 주로 다뤄졌다. 시각장애인 당사자이기도 한 서 의원은 회의 시작 7시간여 만인 오후 4시 50분부터 진행된 2차 현안 질의에서 조 장관에게 장애인 탈시설에 대한 복지부 입장을 물었다.
서 의원은 먼저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가 지난달 21일 발표한 공식 성명서를 언급하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탈시설에 천문학적 예산이 들어간다고 왜곡하고 장애인이 시설에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위원회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라며 "여기에 복지부가 어떠한 입장도 내지 않았다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이에 조 장관이 "장애인들의 자립 지원과 지역 정착에 대해 위원회와 소통해 보겠다"라고 답하자 서 의원은 "최소한의 이행으로 지자체에 이 성명을 광범위하게 배포할 수 있느냐"라고 되물었다. 조 장관은 "(각 지자체에) 연락하도록 하겠다"라고 답했다. 서 의원이 받아낸 첫 번째 약속이었다.
이어 서 의원은 지난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권익위원회와 주호영 의원실 주최로 열린 '발달장애인의 맞춤형 돌봄 지원 방안 제도개선 공개 토론회'를 문제 삼았다. 발달장애인 돌봄을 주제로 했지만, 정작 탈시설로 심각한 인권침해가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하는 토론회였다.
서 의원은 "해당 토론회에서 탈시설에 대한 허위 사실이 유포됐고 중증장애인 사진이 당사자 동의 없이 촬영되고 무단 사용됐다. 권익위가 장애인의 개인정보를 누출한 위법 사항에 대해서도 복지부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조 장관이 "보고받은 적이 없어서 상황을 파악해 보겠다"라고 답하자마자 발언 시간 종료로 서 의원의 마이크가 꺼졌다. 하지만 서 의원은 마이크 없이 육성으로 마지막 발언을 이어갔다.
"장애인도 국민인데, 장애인에게도 국가가 있고 권리가 있다는 걸 알아야지. 탈시설은 권리예요. 정말 많이들 오해하고 있어요. 탈시설은 장애인 자녀의 돌봄을 부모가 책임지게 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라고, 장관이 확실하게 설명하십시오."
처음엔 "장애인 가족 중에도 탈시설 용어에 반대하는 분들이 있다"라고 대답하던 조 장관은 서 의원의 거듭된 촉구에 "네"라고 짧게 답했다. 서 의원이 받아낸 두 번째 약속이었다.
지난달 21일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탈시설 정책과 전략 이행을 위한 지방정부의 역할'이라는 공식 성명서를 냈다. 우리나라는 2008년 탈시설을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로 인정하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가입했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이 취임한 뒤부터 지켜지지 않는 약속들이 생겨났다. 탈시설에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던 오 시장을 따라 '중증장애인을 보호하려면 시설이 필요하다'는 탈시설 반대 입장이 세를 키웠다(관련 기사: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성명, 오세훈의 탈시설 거짓 선동 증거" https://omn.kr/29cfv).
탈시설은 장애인이 집단 거주시설에서 나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생활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우리나라가 2008년 비준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와 이 협약에 관한 일반논평 5호 및 탈시설 가이드라인에서 규정하는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다. 협약 가입 이후 위원회가 우리나라 정부에 관한 성명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신장애 비하' 지적했던 김예지 "정신질환자 국가지원 확대돼야"
이날 전체회의에선 의료 이슈들에 견줘 많지는 않았지만, 장애 이슈를 지적하는 목소리들은 틈틈이 이어졌다.
앞서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정신질환자 인권침해 문제에 주목했다. 서 의원과 마찬가지로 시각장애인 당사자인 김 의원은 최근 보도로 알려진 춘천 정신병원 내 불법 격리와 강박 사례를 언급하면서 "환자분이 290여 시간 격리실에 강박돼 사망했다"라며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격리 강박 사건 결정례만 보더라도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총 22건이었고, 그때마다 인권위는 정부에 시정조치를 내렸지만 적극적인 조치 없이 지나갔다. 최근 언론에 크게 보도되고 나서야 복지부는 격리와 강박 실태조사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라고 했다.
정신병원에선 외부와의 소통이 끊어져 정신질환자들이 인권침해를 신고할 기관이 마땅치 않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김 의원은 "2021년 발표된 정신의료기관 환경실태조사를 보면 전체 정신병원의 절반 이상(55.2%)이 휴대전화를 이용한 외부와의 통신을 제한했고, 환자들은 어렵게 수화기를 들어도 마땅히 신고할 곳이 없어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라며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학대 같은 인권침해가 발생하면 신고상담 연락처(1644-8295)로 전화해 수사와 구제 절차가 진행되지만 정신질환자들은 아무런 신고를 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 밖에도 김 의원은 정신병원에서 일어나는 불법 입·퇴원과 가혹행위 등 수많은 인권침해를 국가가 나서서 막아야 한다는 근거로 우리나라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과 고문방지협약 비준국이라는 점을 들었다. 김 의원은 "지난주 제네바에서 열린 제6차 유엔 고문방지협약 심의에서 위원회는 우리나라 거주시설에 사는 정신질환자들이 폭행과 학대를 당하는 등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며 피해자 구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정부에 우려를 표했다"라며 조 장관의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했다.
그러자 조 장관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국가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라며 "최근 정신질환자가 급증하기 때문에 정신 지원은 필요한데 격리나 강박에는 세부적 지침이 있지만 통신이나 면회 제한에는 구체적 지침이 없다. 이를 구체화하고 인권위 권고 등을 고려해 제도를 개선하겠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정신질환자 인권은 김 의원이 평소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의 연장선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 2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당 의원들을 향해 "정신 나간 국민의힘"이라고 말한 데 대해 "정신 나갔다는 표현은 정신장애인을 비하하고 차별을 조장하는 표현"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국회의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공적인 존재인 만큼 이들이 본회의장이라는 공적인 공간에서 행사하는 발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김 의원은 이날 조 장관의 답변에 대해 "격리 강박 지침이 있지만 모니터링이 되고 있지 않아서 해당 환자는 290시간 가까이 강박됐다가 숨졌다. 지침이 있었으나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도록 장관이 잘 챙겨주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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