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협의체 일부 위원, 게임이용장애 등재 기정사실화”
“민관협의체에서 논의한 연구 결과, 내용 충분치 않아”
“협의체가 좀 더 타이트한 회의체로 운영되어야”
게임이용장애 도입을 판가름하기 위해 2019년 꾸린 민관협의체 소속 정신의학계 위원들이 게임이용장애 국내 도입을 기정사실화한 채로 도입 방법과 절차에 대한 논의를 종용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민관협의체 소속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16일 서울 서대문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제1회 세계보건기구(WHO) 게임이용장애 등재 쟁점 연속토론회’에서 “일부 정신의학계 위원이 ‘한 번도 WHO 질병코드를 국내에서 거부한 사례가 없으므로 등재는 기정사실화된 거고 어떻게 도입할 건지 방법과 절차를 따지자’는 의견이 나와 강하게 반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관협의체를 만든 기본적인 원칙은 게임질병코드 등재가 될지 말지를 결정하는 문제를 논의하는 거다. 게임질병코드 등재를 기정사실로 하고 도입 방법을 논하는 건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국무조정실은 2019년 7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을 두고 게임산업계와 보건의료계가 팽팽하게 맞서자 민관협의체를 구성했다. 이 협의체는 질병코드 국내 도입 문제와 관련해 게임업계 우려를 최소화하면서도 건전한 게임이용 문화를 정착시킬 방안을 찾는다는 취지로 출범했다. 협의체 위원은 의료계·게임계·법조계·시민단체 관련 전문가 등 각계를 대표하는 민간 위원 14명과 정부위원 8명 등 총 22명으로 구성됐다.
이후 민관협의체는 국내 도입 적절성을 판단하기 위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과학적 근거 분석’ ‘게임이용장애 실태조사 기획 연구’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파급효과 연구’ 등 3개 주제로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그러나 협의체에서 논의한 연구 결과들은 과학적 근거, 진단방법과 도구, 파급효과 관련한 연구보고서의 내용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나오고 있다.
이 교수는 “협의체의 주요 활동이 연구용역 관련 자문 정도여서 게임이용 장애 국내 도입과 관련해 협의체 내부에서 충분한 토론과 의견 조율 과정이 부족했다”면서 “현재로서는 협의체 내에서도 합의된 결론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민관협의체는 2019년 7월 23일 첫 회의를 시작하고 이후 11차례에 걸쳐 회의를 진행했다. 민관협의체 조직 후 5년여 동안 연 2회 가량 개최한 셈이다. 이 교수는 “협의체 활동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당사자 간의 치열한 토론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민관협의체의 내부 회의 체제도 느슨하다면서 “협의체 안에 있는 정신의학계 위원이 ‘게임 중독이 있는 건 맞으나 지금까지 나온 치료 방법으로도 대응 가능하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정신의학계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린다”고 밝혔다.
이 교수에 따르면 민관협의체는 늦어도 2026년에 게임질병코드 국내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목표로 운영 중이다. 이 교수는 “논의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현재 협의체 회의체제로는 결정 시기까지 프로세스를 충분히 수렴하기 어렵다”면서 “적어도 내년까지는 과학적 근거, 합의 가능한 진단 도구 도출, 진단 도구 결정에 따른 실태조사, 도입 여부에 따른 경제·사회·문화적 파급 효과와 객관적 정량수치 도출, 도입 여부와 관련한 공청회 등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협의체가 좀 더 타이트한 회의체로 운영되면서 새로운 논의 구조가 마련되고 국내 도입과 관련해서 임상적이고 학술적인 연구가 보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종현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에 따른 법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ICD는 WHO 회원국에 대해 강제가 아닌 권고 사항”이라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지금까지 국제표준인 ICD의 내용을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관례적으로 수용해왔다. 다만 현재로선 WHO의 결정을 수용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 상당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국내에선 통계법 조항상 ‘국제표준분류를 기준으로’라는 문구에 대한 경직된 해석에 따라 보건정책에서의 중요한 결정을 맹목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게임이 갖는 사회적·문화적 함의에 대한 고유의 논의 없이 통계법 조항의 형식적 해석에 따라 ICD-11의 게임이용장애를 기계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화는 규제로 작동해 자의적인 기준을 마련하면서 기본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통계 표준 등의 형식적인 것을 정한다는 명목 하에 기본권 침해적 규제를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행정부처가 자의적으로 정한다는 건 헌법적으로 수용되기 어렵다. 국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설정된 해외 기구의 결정을 기계적으로 수용하는 건 국민주권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최승우 한국게임산업협회 정책국장은 현시점에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이르다면서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자료가 더 축적되어야 한다. 또한 WHO 회원국 중 ICD-11를 도입하는 나라는 어디인지 충분히 객관적인 자료로 검토해야 하고 한국이 왜 게임 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앞장서서 진단 척도를 제공하려 하는 것인지 명확한 견해를 밝혀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지윤 기자 merr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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