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까지... 우리는 이미 다문화를 살고 있습니다
[이정희 기자]
지난 7월 11일 발표한 OECD '2024 한국경제 보고서' 월드 챔피언이 된 우리나라의 출생률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가임기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이 0.72명이랍니다.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노동시장, 높은 집값, 지나친 교육열 등의 근본적인 원인이 있겠지요. 그런데 출생률의 저하는 선진국에 들어선 국가들의 공통적인 통과 의례인 측면도 있어요.
여기서 주목해야할 건 같은 시기 조사에 따르면 일본 1.12명, 독일 1.6명, 프랑스 1.7명 등으로 이들 국가들은 최근 1%를 상회하며 출생률을 회복해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경기 호조를 보이고 있는 일본을 차치하고, 유럽 각국의 출생률 상승에 전문가들은 그들이 수용한 이민자들의 출생 증가에서 원인을 찾고 있습니다.
어디 출생률 뿐인가요, 최근 경기 침체로 고민을 겪는 영국의 경우, 그 원인 중 하나로 이민자 수용에 대한 비타협적 정책이 원인으로 꼽힌다고 합니다. 이처럼, 이제 세계는 '다문화의 시대'로 접어들며, 그들 통해 각 국가의 생산과 경제를 견인해 가고 있는 중입니다.
▲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 유족들이 4일 오후 경기 화성시 화성시청 1층 합동분향소에 고인들의 위패와 영정을 안치했다. |
ⓒ 김화빈 |
생산 현장이든, 농촌이든, 식당, 심지어 의료 현장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곳에 이주민들이 한 몫을 해내며 한국 사회를 견인해내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한국 사회를 이렇게 힘차게 견인해 내고 있는 만큼, 사회의 일원으로도 당당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을까요?
다문화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현재 다문화 학생들이 우리 사회에 안착할 수 있도록 '한글' 등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나는 학생들의 국적은 다양합니다. 예전에는 중국에서 온 동포들이 많았다면 요즘은 베트남, 우즈벡, 몽골 등 여러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파파고'로 러시아어를 운용하다, 내일은 다시 몽골어로, 다음 날은 중국어로 멀티태스킹을 해야하는 처지입니다. 그 아이들은 모두 능통한 자신의 모국어와 익숙한 자국의 문화 대신 어려운 한국어와 낯선 한국 문화를 배우며 어떻게든 한국 사회에 적응해 가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 방귀차 |
ⓒ 웅진주니어 |
2017년 웅진 주니어가 출간한 김준철 작가의 <방귀차>는 짧고 명징한 이야기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림책입니다.
"방귀차가 이 골목 저 골목 뿡뿡/ 방귀를 끼고 다닌다.
와! (중략) 아이들이 몰려들고 나도 신나게 뛰었어"
예전에는 아이들이 방역차가 등장하면 신이 나서 그 연기 속으로 뛰어들었지요. 이제는 방역차가 나타나면 혹시나 그 유해한(?) 소독약이 집으로 들어올까 문을 닿고 환경 오염을 우려하는 시절이 되었다지만, 1970년대 산업화가 시작되던 시절에는 머리에 이가 있다고 살충제를 뿌리기도 했으니까요.
▲ 방귀차 |
ⓒ 웅진 주니어 |
그런데 주인공 아이가 방귀차를 따르는 이유는 따로 있어요. '방귀차가 연기를 내뿜으면 모든 게 방귀 연기 쏙에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를 노려보며 튀기 새끼라고 손을 내젓던' 어른도 사라지고 돌 던지던 아이들도 이때만큼은 나를 끼워주니까요.
'혼혈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인 이 '튀기'라는 단어는 이제는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기억 속으로 사라져가는 역사적 용어입니다. 하지만, 새삼 이 <방귀차>를 통해 그 단어를 마주하고 보니, 어쩌면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다문화'였구나 하고 깨닫게 되네요.
그리고 70년대의 풍경을 재현했지만, 그 풍경 속을 내달리는 아이의 소망, '연기 속을 신나게 달리면 나도 이 동네 사람이 된 거 같으니까'는 더는 70년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 '다문화'라는 용어 속에 용해되지 않은 우리 사회의 딜레마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 두 도시 아이 이야기 |
ⓒ 바둑이 하우스 |
"엄마, 나 학교 가기 싫어
(중략) 학교 가는 길은 지루하고 무서워/ 어떤 사람은 힐끔거리고/ 어떤 사람들은 수근댔어
나도 알아/ 나와 엄마가 조금 다르게 생겼다는 걸"
부끄러운 마음에 엄마 뒤에 꽁꽁 숨어서 걸어갔던 아이는 학교에서도 말 걸어주는 아이 한 명도 없이 외롭고 심심하고 슬픕니다. 그래서 '내일은 정말로 학교에 오지 않'겠다라고 다짐합니다.
그런데 <두 도시 아이 이야기>는 독특합니다. 제목에서처럼 두 도시, 서울과 다낭에서의 이야기가 앞과 뒤에서 펼쳐지고 '한강'에서 만납니다. 두 도시에는 모두 '한강'이 흐릅니다.
1960년대 서울이 확장되며 서울로 편입된 한강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처럼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하천입니다. 그런데 베트남에도 꽝남 성에서 발원하여 남중국해로 흐르는 한강(Sông Hàn, 또는 Hàn giang; 瀚江)이 있습니다.
▲ 두 도시 아이 이야기 |
ⓒ 바둑이 하우스 |
한국의 불고기와 베트남 넴루이(돼지 고기 완자를 불에 구은 요리로 쌀종이에 싸서 먹는다)만큼이나 서로 다른 문화. 먹기엔 불고기도 넴루이도 맛있지만, 막상 이방의 문화 속에 던져진 아이, 두 문화 속 아이의 고립감은 극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그림책은 용기를 낸 아이로 인해 한 발 더 나아가는 희망적인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20세기의 아이가 방귀차 연기 속에서 잠시나마 하나가 되고픈 소망은 21세기에도 유효합니다.
<두 도시 아이 이야기>는 우리의 울타리 안에서 그들이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대신, 우리 역시 어느 곳에선가는 또 다른 '다문화'의 주인공임을 말하며, '역지사지'의 지혜를 일깨워줍니다.
요즘 제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은 뉴진스의 하니입니다. 며칠 전에도 그녀가 일본 도쿄돔 공연에서 불렀다는 '푸른 산호초'를 영상을 아들과 함께 보았습니다. 하니는 본디 베트남인이지만 호주에서 자랐으며, 우리나라 걸그룹 뉴진스로 활동하고 있습니다(이중 국적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더구나 뉴진스는 이른바 'K팝'의 선봉대입니다. 바로 이게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다문화'입니다. 너와 나의 다름이 무색한 시절, 그들이 우리가 될 수 있게 보다 너른 시야와 그에 걸맞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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