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에 경주 토함산 움직였다" 산사태보다 100배 무서운 '땅밀림'
15일 경북 경주시 황용동 토함산 국립공원. 945번 국도에서 산 계곡을 따라 350m가량 오르자, 나무도 풀도 없이 허옇게 파인 경사지가 나타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땅이 주저앉으면서 나무뿌리가 위태롭게 땅 밖으로 노출돼 있었다.
동행한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땅밀림 진행으로) 땅에 1.5m가량 단차가 생기면서 찢어진 부분”이라며 “여긴 하단부인데, 상단부에도 땅밀림이 진행된 흔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불국사와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 국립공원에서 땅밀림으로 인한 산사태 현상이 관찰된 건 이곳 뿐만이 아니다. 국립공원공단 경주사무소와 녹색연합 등이 올해 대규모 산사태 피해가 확인된 토함산 일대를 공동 조사한 결과, 3곳에서 땅밀림 현상이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일반 산사태보다 위력 100배…대형 재난 유발”
이 가운데 기자가 방문한 산 116번지 지점은 땅밀림 진행 면적이 3700평(1만2231㎡)으로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조사에 참여한 박재현 경상국립대 환경산림과학부 교수는 “(산 116번지 지점은) 경사가 35도 이상으로, 국내 땅밀림 현장 중에서도 이례적으로 경사가 매우 급한 곳”이라며 “여기서 폭우가 더 내려 땅밀림이 심해지면 통째로 이동하는 산을 따라 쏟아져 내리는 토석류가 도로를 덮치는 데 1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2018년 10월 경주시 양북면에서는 집중호우로 땅밀림이 발생한 탓에 도로가 땅에서 20m가량 들리며 파괴됐다. 당시에는 차량이 지나가지 않아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인가를 덮칠 경우 큰 피해가 나타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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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포함 전국 265개소서 땅밀림 진행”
특히 올해에는 장마철에 많은 비가 집중되면서 땅밀림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부의 경우 이미 평년 강수량(남부 341.1㎜)을 훌쩍 넘길 정도로 폭우가 연이어 쏟아졌다. 전북 익산은 지난달 19일 이후 누적 강수량이 627.5㎜에 달하고, 그 밖의 남부와 충청의 많은 지역에도 400~600㎜ 수준의 비가 내린 상태다. 정체전선이 북상하면서 중부 지방에도 18일까지 최대 250㎜ 이상의 비가 더 내릴 것으로 예고됐다.
박재현 경상국립대 교수팀은 자체 조사결과 전국 265개소에서 땅밀림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대부분 남부에서 땅밀림 징후가 포착되고 있지만, 서울을 포함한 중부 지방에도 50개소가량에서 땅밀림이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했다. 이 중에는 마을과 인접한 곳들도 적지 않아 대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땅밀림이 진행되는 곳 가운데 산 하단부에 마을이 위치하고 있는 경우도 더러 있다”며 “경북 영주시의 한 마을 인근에서는 땅밀림이 진행되며 토사 노출지가 생겼는데, 비닐로 가려놓는 등 응급 처치는 했지만, 사방댐(토석류를 막는 소규모 댐) 같은 일차적인 방어 구조물이 아직 설치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종근 산림청 대변인은 “매년 2000개소를 대상으로 땅밀림 우려지 실태 조사를 하고 있고, 현재 땅밀림 우려지는 184개소로 파악하고 있다”며 "땅밀림 위험지도 제작을 위해 잠재위험도 평가 등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경주=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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