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 없이 미소로만 답했다...유세장 57분 환호성 '트럼프쇼'

강태화 2024. 7. 1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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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현지시간) 오후 8시 58분. 미국 밀워키 공화당 전당대회장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등장곡으로 애용되는 ‘갓 블레스 더 유에스에이’(God Bless the USA·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가 울려퍼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 입장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입장 전 복싱 선수가 경기전 대기하는 듯한 모습으로 3분여를 기다리다 오른손을 들어올리며 행사장에 들어왔다. 대의원들은 일제히 "싸워라(Fight)"를 외쳤다. AP=연합뉴스

대형 전광판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모습이 비춰졌다. 경기를 앞둔 복싱 선수가 복도에서 대기하는 바로 그 장면이었다. 화면 속 ‘선수’의 오른쪽 귀 총상 부위엔 큰 거즈가 붙어 있었다.


“싸워라” 환호에도…미소로만 답했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지지자들은 모두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트럼프는 환호성을 들으며 3분가량 그대로 서 있다가 오른손을 들어보이며 행사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에스에이(USA)”를 연호하던 환호성은 이내 “파이트(Fight)”로 바뀌었다. 지난 13일 유세장 암살 미수 사건 직후 귀에 총을 맞고 일어난 트럼프가 외쳤던 말이다.

피격을 당한 트럼프가 대중 앞에 나타난 건 이날이 처음이다. 테러 이후 그는 자신이 “괜찮다”고 밝혔지만,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 때도 사진 촬영을 거부해 대중의 궁금증을 키웠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 입장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입장 전 복싱 선수가 경기전 대기하는 듯한 모습으로 3분여를 기다리다 오른손을 들어올리며 행사장에 들어왔다. 대의원들은 일제히 "싸워라(Fight)"를 외쳤다. AP=연합뉴스

이날 전당대회에 등장한 트럼프는 건재함을 과시하면서도, 행사장에 머문 57분간 한 번도 마이크를 잡지 않다. 유권자들의 관심과 궁금증을 18일로 예정된 대선후보 수락 연설 때까지 계속 고조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는 전날 인터뷰에서 “암살 미수 이후 연설문을 완전히 새로 썼다”고 밝힌 상태다.


말 ‘한 마디’ 없이 ‘할 말’ 다했다

대신 트럼프는 선거 핵심 이슈에 대한 5명의 찬조 연설자와 영상을 통해, 자신은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할 말을 모두 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트럼프가 귀빈석에 앉아 있는 동안 인플레이션으로 시름하는 미시건의 평범한 가장, 펜실베이니아 출신 모델이자 한 아이를 키우는 흑인 여성, 네바다에 사는 남미 출신 이민자 여성, 노조 대표, 중동 출신 여성이 연이어 단상에 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해 찬조연설자들의 연설을 듣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들이 각각 연설한 물가, 교육, 소수자, 이민, 노조, 중동 문제 등은 트럼프가 바이든 대통령을 공격해왔던 단골 이슈다. 동시에 연설자들의 출신지 미시건·펜실베이니아·네바다 등은 오는 11월 치러질 대선의 승패를 좌우할 대표적 경합주(Swing State)로 꼽힌다.


숨겨진 ‘펀치’…공화당에 나타난 노조 대표

이 중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찬조 연설자 중 한 명으로 나선 미국 트럭운전사 노조 ‘팀스터즈’의 숀 오브라이언 대표였다. 조합원 130만명의 미국 최대 운송노조를 이끄는 그는 “우리가 어떤 정당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나는 전임자가 했던 것과 같은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15일(현지시간) 밀워키 피서브 포럼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 첫날에 미국 최대 운송노조 '팀스터즈'를 이끌고 있는 숀 오브라이언 대표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찬조연설을 하고 있다. 노조는 바이든 대통령의 최대 우군으로 평가돼 왔다. AFP=연합뉴스

이어 “미국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라며 “사람들이 트럼프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지난주 일어난 일로 트럼프가 정말 ‘강인한 놈(SOB)’이라는 것이 증명됐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측 입장에선 바이든의 최대 우군으로 꼽혔던 노조의 지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을 극명하게 드러낸 연설이었다. 바이든이 노조의 지지를 잃을 경우 미시건·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 등 사활을 걸고 있는 이른바 ‘블루월(Blue Wall·민주당 강세지역)’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앞서 블룸버그는 지난 1월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던 전미자동차노조(UAW)의 숀 페인 회장이 최근 바이든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고 보도했다.

오브라이언의 연설은 다른 연사에 비해 2배 이상 길었고, 트럼프는 20분 가까이 진행된 연설 내내 기립해 계속 박수를 보냈다.


차남이 직접 “후보 확정” 발표

공화당 전당대회 첫날의 모든 일정은 마지막에 배치된 트럼프의 깜짝 등장을 위한 ‘예고편’에 가까웠다.

공화당 대선 후보이자 전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가 15일(현지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피서브 포럼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RNC) 1일차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J.D. 밴스 후보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공화당전국위원회(RNC)는 이날 전국에서 운집한 대의원 2400여명의 투표 결과를 주별로 차례로 발표하게 했다. 그러다 트럼프의 차남 에릭이 자신이 주(州) 대표를 맡은 플로리다의 투표 결과를 발표하자 트럼프가 후보 선출을 위한 과반 득표를 넘어섰다.

아들이 직접 아버지의 세번째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을 발표할 수 있도록 순서를 조정한 것으로 보인다. . 아버지의 후보 확정 발표를 맡은 차남 옆에는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와 딸 티파니가 활짝 웃으고, 이들의 모습이 행사장 대형 화면을 가득 채웠다.


“잘 짜여진 각본 따른 ‘트럼프 쇼’”

트럼프는 후보 지명 직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J D 밴스(39) 공화당 상원의원(오하이오)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예정보다 1시간 이상 빠른 지명이자, 트럼프 특유의 SNS 소통을 통해 자신의 귀환을 알렸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피서브 포럼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RNC) 1일차 행사에서 한 사람이 트럼프를 영웅으로 묘사한 책을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날 전당대회는 오전과 오후 일정의 시작과 끝을 비롯해 중요한 대목마다 대의원 전원이 함께 기도를 하는 일정이 마련됐다. 기도는 트럼프의 조속한 쾌유와 펜실베이니아 총격 사건으로 희생된 시민을 애도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트럼프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될 무렵 RNC는 “트럼프가 오후 마지막 일정 중 행사장에 올 수 있다”는 공지를 배포했다.

스테판 슈미츠 아이오와 주립대 교수는 이날 중앙일보에 “일종의 시련에 해당하는 암살 기도 사건을 계기로 트럼프와 그의 참모들은 ‘신이 돕는 영웅’의 귀환을 부각하기 위한 완벽히 짜여진 각본을 만들어 트럼프 특유의 ‘쇼’를 완성한 것 같다”며 “최연소 밴스 상원의원의 발탁 역시 고령 논란 등을 겪는 바이든을 겨냥한 상당히 영리한 인선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밀워키=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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